[비즈니스포스트] 은행권을 향한 돈 잔치 비판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3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은행의 돈 잔치’를 강하게 지적한
윤석열 대통령 역시 지난해 대선에서 예대마진(예금과 대출금리 차이) 확대에 따른 은행권의 과도한 수익성을 비판했다.
▲ 1월3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국내 금융산업 주요 인사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금융위 업무보고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대통령실> |
당시 이를 위한 맞춤 공약으로 예대마진 공시제도 도입도 약속했다.
하지만 1년 뒤 은행은 또 다시 최대 실적을 냈고 과도한 성과급 비판을 마주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지난 1년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많은 일을 했다.
윤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건 새로운 예대마진 공시제도를 도입했고 금융소비자의 금리인하 요구권을 강화했다.
금융당국 수장들은 고금리시대 금융소비자의 이자부담이 급격히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대출금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직간접적 발언을 이어가며 관치금융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국회도 관련 법안을 부지런히 발의하며 은행권을 압박했다.
현재 21대 국회에는 예대금리차 공시와 금리인하 요구권 강화 등 금융소비자의 이자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은행법 일부개정안' 10건이 계류돼 있다. 10건 모두 2022년 1월 이후 발의됐다. 법안을 대표 발의한 의원도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은행을 향한 금융당국과 국회의 압박은 통하지 않았다. 은행이 사상 최대 실적을 내고 과도한 성과급 비판을 받는 모습은 1년 전 그대로다.
대통령까지 나서 강한 대책 마련을 주문한 만큼 시중은행은 한동안 바짝 낮은 자세를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언제나 그랬듯 도돌이표처럼 시중은행을 향한 돈 잔치 비판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인터넷에서 은행의 성과급 잔치를 비판하는 뉴스를 검색하면 2000년대 초반부터 관련 기사가 연례행사처럼 줄줄이 나온다.
이번에야 말로 은행의 돈 잔치를 막기 위한 금융당국의 정교한 제동장치가 필요한 이유다.
금융당국에서는 현재 은행권의 충당금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특별대손충당금 추가 적립을 요구하는 제도 도입 등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충당금은 미래에 실현 가능성 높은 손실을 미리 인식하는 회계상 비용이다.
시장에서는 현재 수면 위로 나타난 부실채권 외에 코로나19에 따른 만기연장으로 아직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부실채권 규모도 상당하다고 보고 있다.
특별대손충당금 추가 적립제도의 요건을 세심히 짠다면 코로나19 혹은 고금리시대와 같은 특수 상황에서 은행의 수익성을 낮추고 건전성을 높이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
국회에 발의된 다수의 법안처럼 대출금리의 투명성을 강화해 금융소비자의 선택권을 강화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금융소비자가 대출을 받을 때 은행은 여전히 갑의 위치에 있고 관련 정보는 제한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금융소비자가 은행별 대출금리 수준과 산출 과정을 선제적으로 투명하게 비교할 수 있다면 은행의 대출금리 인하 요인으로 작용해 예대마진 축소에 기여할 수 있다.
지배구조 문제 측면에서 사외이사를 통한 감시체계를 강화하는 것도 은행의 공공성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
사외이사는 은행의 주요 의사결정을 내리지만 대표이사 등 사내이사와 달리 단기 실적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 사외이사가 이사회에서 활동하며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경영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면 은행의 탐욕은 자연스럽게 줄어들 수 있다.
이와 관련해 공공성을 강화하는 노력을 하는 은행에 특화한 인센티브를 마련하는 정책을 도입하는 방안도 추진할 만하다.
정부 정책만큼이나 은행업계 자체적인 자성적 움직임도 중요하다.
금융당국이 아무리 은행의 공공성을 강조한다해도 민간기업인 만큼 정부의 정책적 개입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시중은행은 현재 돈 놀이 비판에 다소 억울하다는 입장도 내보이고 있지만 전향적 태도가 필요해 보인다.
금융소비자들 역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이자비용이 늘어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를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한 사람당 수억 원의 퇴직금을 지급하고 외국인 주주에게 조 단위의 배당금을 안겨주는 것은 반가운 일일 수 없다.
지금 상황이 이어진다면 야권에서 주장하는 횡재세 도입을 향한 압박은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다.
이는 전날 윤 대통령이 직접 은행의 돈 잔치를 운운하며 은행권을 향한 대책 마련을 지시한 이유이기도 하다.
윤 대통령이 민간기업인 은행의 수익 구조에 정부 차원의 제동이 필요하다고 보는 이유는 명확하다. 은행이 공공재적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1월 말 금융위 업무보고에서 은행의 공공재적 성격을 놓고 이렇게 말했다.
“민간은행도 손실 나고 문제가 생기면 결국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은행이 완전한 사기업하고 분명히 구별되는 공공재라는 점은 우리 모두 공유해야 한다.”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