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김민덕 한섬 대표이사가 '프리미엄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실적에 부담을 줄 가능성이 큰 '높은 재고 비중'과 '느린 판매 회전 속도'를 상쇄하기 위한 대응책으로 보이는데 이 전략으로 얼마나 성과를 내느냐가 실적 반등 흐름의 유지 여부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 ▲ 김민덕 한섬 대표이사(사진)가 프리미엄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
16일 패션업계 동향을 종합해보면 한섬은 2025년 약 3년 만에 매출 반등에 성공했음에도 여전히 적지 않은 재고 부담에 놓여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섬은 2025년 연결기준으로 매출 1조4917억 원, 영업이익 521억 원을 거뒀다. 2024년과 영업이익은 17.8% 줄었지만 매출은 0.4% 늘면서 외형 유지에 성공했다.
한섬 매출이 2022년 1조5422억 원, 2023년 1조5286억 원, 2024년 1조4852억 원으로 최근 4년 동안 꾸준히 감소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적에서 선방한 셈이라 할 수 있다.
분기로 보면 한섬은 지난해 4분기 11개 분기 만에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증가하는 성적을 거뒀다. 실적 반등의 주요 원인으로는 국내 소비 회복이 꼽힌다.
유정현 대신증권 연구원은 "한섬은 최근 3년 동안 할인 판매 증가에도 불구하고 매출이 부진하고 이익이 급감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기업들의 호실적과 주식시장 상승에 따른 국내 소비가 유의미하게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한섬의 재고 구조를 보면 눈에 띌만한 체질 개선 성과가 나타났다고 보기 어려운 지점이 많다.
한섬은 매출 대비 재고자산의 비율이 높은 편에 속한다. 통상 패션기업에서 재고 자산의 비중이 높으면 할인 판매로 이를 소진해야 하기 때문에 수익성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구조적 부담 요인으로 지적된다.
최근 4년 동안의 한섬의 매출 대비 재고자산 비율은 2022년 36.49%, 2023년 39.94%, 2024년 42.03%로 꾸준히 상승했다. 2025년에는 41.57%로 소폭 낮아졌는데 이는 지난해 4분기 과년차 재고를 소진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다만 한섬이 기록하고 있는 재고자산 비율 40%대는 동일 업종 가운데 높은 수준으로 평가된다. 대표적으로 경생사인 LF의 매출 대비 재고자산 비율은 2022년 33.07%, 2023년 35.55%, 2024년 31.06% 등 평균 30% 초반을 유지하고 있다.
재고 비중이 높은 구조는 재고자산평가손실 위험을 키운다는 점에서도 부담 요인으로 지적된다. 재고 가치가 떨어지면 이를 손실로 반영해야 하기 때문에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돼 순손실 구조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재고 소진 속도를 보면 한섬의 구조적 취약성이 좀 더 잘 드러난다. 2023~2025년 3년 동안 한섬의 재고회전율은 3회, 재고회전일수는 345일로 나타났다.
한섬은 입고된 제품을 1년에 약 3회 판매하며 입고된 상품이 평균 1년 가까이 팔리지 않고 쌓여있다는 의미다. LF의 2022~2024년 재고회전율이 6회, 재고회전일수가 180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2배가량 차이가 나는 셈이다.
김민덕 사장은 한섬의 '프리미엄 전략'을 강화하는 쪽으로 대응 방향을 잡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매출 대비 재고자산 비율을 낮추려면 매출 증가 속도를 높이거나 재고가 쌓이는 속도를 줄여야 한다. 김 사장은 이 가운데 프리미엄 이미지를 강조해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매출을 큰 폭으로 확대하는 전략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최근 국내 매장에서는 이러한 전략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 ▲ 김민덕 사장은 재고자산이 여전히 부담 요인으로 남아있음에도 프리미엄 전략을 강화해 매출을 큰 폭으로 올리는 쪽으로 대응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한섬> |
한섬은 최근 서울 강남 대치동에 콘셉트스토어인 '더한섬하우스'를 열었다. 이는 교육열이 높은 대치동의 중산층·상위 소비층을 겨냥해 매장을 '생활형 공간' 객단가를 높이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이러한 전략은 효과를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매장은 오픈 이후 30일 동안 목표 대비 120% 수준의 매출을 달성하며 호조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서울 청담동에 자체 여성복 브랜드 '타임'의 단독 플래그십스토어(주력매장)를 열었다. 청담동 명품거리에 건물 전체를 임차해 대형 매장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브랜드의 고급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한 상징적 매장으로 평가된다.
한섬은 해외 시장에서도 프리미엄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한섬은 자체 브랜드 '타임'이 2026 가을·겨울(FW) 파리패션위크 공식 캘린더에 등재됐다는 소식을 최근 전했다. 국내 여성 기성복 브랜드 가운데 공식 캘린더에 이름을 올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파리패션위크는 런던·밀라노·뉴욕과 함께 세계 4대 패션위크로 꼽히며 패션 본고장인 프랑스 파리에서 열려 최종 관문으로 불린다. 한섬은 이번 등재로 글로벌 패션 시장에서 브랜드 위상을 높이고 유럽 시장 확장의 발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과년차 재고를 일부 소진한 것을 계기로 실적 개선 흐름이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한섬의 재고자산은 2024년 6243억 원에서 2025년 6200억 원 수준으로 낮아졌다.
정지윤 농협증권 연구원은 "한섬은 2025년 4분기를 기점으로 과년차 재고(출시 이후 1년이 지난 상품)를 모두 소진했다"며 "타임과 마인과 같은 자체 브랜드 매출이 늘어나면 실적에서 지렛대 효과(레버리지)가 나타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조수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