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회장이 롯데그룹의 전문경영인 부회장단 시대를 열었다.
그동안 롯데그룹에서 부회장은 그룹의 2인자, 총수의 최측근으로 통했으나 이제 각자의 영역에서 30년 넘게 근무한 전문경영인들로 부회장이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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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
신동빈 회장이 신격호 총괄회장의 ‘손가락 경영’으로 대표되는 황제경영에서 탈피하고 과거와 단절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풀이된다.
23일 롯데그룹에 따르면 송용덕 호텔롯데 사장이 호텔 및 기타부문 BU장으로 자리를 옮기며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전날 나란히 부회장으로 승진한 이원준 유통BU장과 이재혁 식품BU장을 더하면 롯데그룹 부회장은 모두 3명으로 늘었다.
이전까지 롯데그룹에서 오너 일가를 제외한 부회장은 이인원 전 부회장이 유일했다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어서 부회장 승진에서 제외된 황각규 사장, 소진세 사장, 허수영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할 경우 롯데그룹 부회장은 모두 6명까지 늘어난다. 이들은 아직 부회장이 되지 못했지만 롯데그룹에서 사실상 부회장 대우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롯데그룹이 국내 주요그룹 가운데 현대차그룹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전문경영인 출신 부회장을 거느리게 된다.
현대차그룹 부회장은 모두 9명인데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사위인 정태영 부회장과 아들인 정의선 부회장을 제외한 7명이 전문경영인 출신이다.
롯데그룹 부회장단이 현대차그룹처럼 각 분야 전문가들로 이뤄진 점도 주목된다.
현대차그룹에서 김용환 현대차 부회장만 참모형 부회장으로 분류될 뿐 나머지 부회장들은 모두 각자의 영역에서 철저한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
윤여철 부회장은 경력 대부분을 노무 관련 부서에서 쌓은 노무 전문가이며 김해진 부회장, 양웅철 부회장, 권문식 부회장은 모두 기계공학을 전공한 연구개발 전문가다.
롯데그룹 역시 이원준 부회장은 입사 이래 유통 계열사를 두루 거치며 30년 이상 유통분야에 몸담아 왔다. 이재혁 부회장도 서울대 식품공학과를 졸업하고 롯데리아와 롯데칠성음료 등에서 경력을 쌓았다.
송용덕 부회장은 롯데호텔이 문을 연 1979년 호텔롯데에 입사해 지금까지 롯데그룹의 호텔사업을 이끌어온 대표적 호텔전문가다.
허수영 사장 역시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롯데케미칼의 전신인 호남석유화학에 입사해 지금까지 한우물만 팠다.
신동빈 회장이 수십년 동안 계열사에서 실무를 봤던 전문가들을 대거 부회장으로 발탁한 이유는 각 분야마다 전문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의도도 있지만 신격호 총괄회장의 ‘손가락 경영’으로 대표되는 롯데그룹의 황제경영 이미지에서 탈피하기 위한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근 몇년 동안 경영권 분쟁, 비리의혹 등을 겪으면서 롯데그룹의 불투명하고 견제장치없는 의사결정구조가 그대로 드러났다.
신 총괄회장이 2015년 7월 신동빈 회장을 비롯한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 6명을 일일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해임을 지시한 일은 유명하다.
이 때문에 롯데그룹은 그동안 폐쇄적이고 전근대적인 의사결정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신 회장이 롯데그룹의 지주사체제 전환에 속도를 내고 정책본부를 대폭 축소한 일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롯데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광윤사와 일본 롯데홀딩스는 최근까지 지분구조가 철저히 가려져 있었다.
신 회장은 검찰수사가 끝난 뒤 지난해 10월 열린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에서 “복잡한 지배구조와 권위적 의사결정구조로 국민의 눈높이와 사회적 기대를 만족시키는 데 많은 부족함이 있었다”며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