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철 기자 dckim@businesspost.co.kr2024-05-03 14: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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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정부와 여당에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해병대 채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검법(채상병 특검법)'에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가 필요하다는 시각이 나온다.
정부와 여당은 ‘여야 합의’와 ‘공수처 및 경찰 수사’가 우선이라는 점을 거부권 행사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채상병 사건에 대통령실이 관여한 의혹이 불거진 상황을 고려할 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제52회 어버이날 기념식에서 축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 대통령이 실제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총선 이후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지지율 반등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3일 정치권의 말을 종합하면 많은 비판에도 정부와 여당이 채상병 특검법을 수용하지 못하는 이유는 대통령실이 직접 특검 수사를 받게 돼 윤 대통령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전날 국회 본회를 통과한 ‘채상병 특검법’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박주민 의원 등 24명이 지난해 9월 공동 발의해 △해병대원 사망 사건 △대통령실· 국방부·해병대 사령부·경북지방경찰청의 은폐·무마·회유 등 직무 유기 및 직권남용과 관련불법행위 △그밖에 인지된 관련 사건을 수사 대상으로 명시하고 있다.
전재수 민주당 의원은 이날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대통령은 소추(재판에 넘겨지는 것)가 안 될 뿐이지 특검 출범 뒤 수사로 증거라든지 진술이 충분히 나오면 수사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정권의 부담을 줄이려 대통령실이 관련 의혹 수사를 막으려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최근 윤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이시원 대통령실 공직비서관이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과 통화를 했던 사실이 보도되는 등 채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과 관련해 대통령실이 관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어서다.
정진석 비서실장은 2일 브리핑에서 공수처와 경찰의 수사를 지켜보고 난 뒤 특검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으나 야권은 이런 대통령실의 주장에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보고 있다. 윤 대통령이 지난 4월26일 오동운 변호사를 지명하기 전까지 공수처장 지명을 계속해 미뤄왔기 때문이다.
더구나 해병대 전역자 단체도 통신기록 확보를 이유로 특검의 신속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 해병대예비역연대 회원들이 2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대통령과 여당에 특검법 수용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기에 앞서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해병대예비역 연대 법률자문을 맡고 있는 김규현 변호사는 최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7월이 지나면 채상병 순직 당시 대통령실·국방부·해병대 등 관계자들의 통신기록 보존기한(1년)이 지나 삭제된다”며 “그리되면 특검이 아니라 특검할아버지가 와도 진상규명이 힘들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특검을 반대하는 사람은 범인’이라는 윤 대통령의 과거 발언을 짚으며 특검법안 수용을 압박했다.
이 대표는 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범인이 아닐 테니까 거부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윤 대통령이 채상병 특검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면 대통령실의 잘못이 있다는 의심은 더욱 커질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2일 CBS라디오 한판승부에서 “거부권 행사를 야당과 합의해 하지는 않는 것을 고려하면 거부권 행사 역시 법안 통과와 마찬가지로 강행처리”라며 윤 대통령을 향해 “여기서 허점을 보이면 나중에 혹시 일이 잘못되면 어떻게 될지 알기 때문에 방어적이신 것 같다"고 지적했다.
총선 참패 이후 윤 대통령 지지율이 하락세를 보이며 국정동력을 찾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는 채상병 특검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을 때 지지율 반등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는 점이 꼽힌다.
지난 2일 발표된 전국지표조사(NBS)에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27%까지 하락했다. 또 채상병 순직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검법을 21대 국회 종료 전 처리하는 것에 관한 질문에는 ‘찬성한다’가 67%로 ‘반대한다’(19%)보다 세 배 이상 많았다.
김준일 시사평론가는 3일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NBS조사를 보면 대통령 지지율이 27%인데 특검법 반대가 19%라는 건 8%가 더 빠졌다는 얘기"라며 "만약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지지율 폭락으로 이어져 거의 사실상 ‘통치불능’ 상태로 빠질 가능성도 있다"고 바라봤다.
이처럼 채상병 특검법안을 수용해야한다는 압박이 강함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반응을 고려할 때 윤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할 공산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 겸 당대표 권한대행이 2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 앞 계단에서 '채상병 특검법'을 단독 처리한 야당을 규탄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일 국회 본회의에서 야당의 일방적 특검법안 통과를 규탄한 뒤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홍철호 정무수석도 3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대통령은 채상병 특검법을 받아들이면 나쁜 선례를 남기는 것이고 더 나아가 직무유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며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4월29일부터 5월1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휴대전화 가상번호(100%)를 이용한 전화면접조사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