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진석 대통령실 비서실장(오른쪽)이 2024년 4월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비서실장 임명장을 받은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대통령실> |
△대통령 비서실장에 임명
정진석이
윤석열 대통령의 세 번째 비서실장에 임명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4년 4월2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정진석을 새로운 비서실장으로 소개했다.
정진석의 임명은 이관섭 전임 비서실장이 같은 해 4·10총선에서 여당의 참패로 사의를 표명한 지 11일 만에 이뤄졌다.
정진석은 현 정부가 출범하는 데 일조한 사람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 비서실장 제의를 수용했다고 밝혔다.
정진석은 "여소야대 정국상황이 염려되는 어려운 정국에
윤석열 정부와 대통령을 도와야 한다는 책임을 느낀다"며 "대통령께 정치에 뛰어들 것을 권유했던 사람으로서 어려움을 함께 헤쳐나가는 것이 책임을 다하는 일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윤 대통령이 통합의 정치를 이끄는 데 잘 보좌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정진석은 비서실장을 맡은 뒤 비서실을 포함한 대통령실 근무자들의 ‘메시지 관리’를 언급하며 기강잡기에 나섰다.
정진석은 같은 해 4월24일 수석비서관들과 가진 첫 회의에서 “대통령실이라는 이름으로, 대통령실 관계자라는 이름으로 메시지가 산발적으로 외부에 나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대통령실은 일하는 조직이지 말하는 조직이 아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의 여러 의견이 정제되지 않은 채 산발적으로 외부로 퍼져 혼란을 야기하는 것에 관한 문제점을 지적한 것으로 풀이됐다.
특히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각각 국무총리와 비서실장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사실이 대통령실 관계자발로 보도된 것에 비서실장으로서 문제의식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전당대회 선관위원장에 유흥수 상임고문 추천
정진석은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시절에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총괄할 선거관리위원장으로 4선 의원을 지냈던 당 원로 유흥수 상임고문을 추천했다.
정진석은 2022년 12월25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전당대회 경선의 공정한 운영을 맡을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에 유흥수 상임고문을 추천하고자 한다”며 “내일(26일) 열리는 비대위 회의에서 유 상임고문을 우리 당 전당대회 선거관리위원장으로 임명하는 안을 상정하고 비대위원들의 동의를 구하겠다”고 밝혔다.
유 상임고문은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정당 소속으로 부산에 출마해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한 뒤 14대, 15대, 16대 총선까지 내리 당선돼 4선 의원을 지냈다.
정진석은 유 상임고문을 선관위원정에 추천한 이유에 관해 “유 상임고문께서 당 대표 후보자들이 사(私)를 버리고,
윤석열 정부 성공을 위한 성의(誠意)를 다하도록 잘 이끌어 주실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 당 대표 선출 당헌·당규 개정
정진석은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당 대표를 선출하는 방식과 관련해 당헌 개정을 추진했다.
정진석은 2022년 12월19일 비상대책위원회 회의가 끝난 뒤 기자회견을 열어 “당 지도부는 당원이 직접 (당 대표를) 선출하는 것이 정당민주주의에 부합한다고 의견을 모았다”며 “당대표 선출 시 기존 당원 70%, 일반 여론조사 30%를 반영하던 것을 100% 당원 투표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안을 상정해 의결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당원 숫자가 늘어난 만큼 당원투표만으로도 국민들의 여론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정진석은 “책임당원 수가 약 80만 명이며 지역별 당원 구성비율도 영남과 수도권이 비슷하다”며 “국민의힘은 이제 명실상부한 국민 정당이 됐다”고 말했다.
이에 더해 당 대표 선거에서 최다 득표자의 득표율이 50%를 넘지 않으면 1위와 2위 득표자를 대상으로 재투표하는 ‘결선투표’ 도입도 추진했다.
정진석은 당 대표 결선투표를 두고 “당원들의 의견을 거듭 확인해 대표성을 제고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정진석이 당헌 개정 의사를 밝힌 나흘 뒤인 12월23일 제6차 전국위원회를 열어 당헌 개정안을 가결했다.
다만 국민의힘 당헌 개정은 새로운 당 대표를 뽑을 때 상대적으로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었던 안철수 의원,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유승민 전 의원 등을 견제하기 위함이라는 해석이 많았다.
| ▲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022년 9월28일 국회에서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하고 있다. <정진석 사회관계망서비스(SNS)> |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 선임
정진석은 2022년 9월7일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선임됐다.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 110명 가운데 75명이 참석해 정진석 비대위원장 선임안을 박수로 통과시켰다.
정진석은 의원총회가 끝난 뒤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해 집권여당을 안정시키겠다”며 “집권여당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 오늘 주어진 대의이자 애국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진석은 2022년 9월13일 6명의 비대위원을 인선했다. 같은 날 오후 국민의힘 상임전국위원회가 정진석 비대위원장을 비롯한 지도부 인선을 가결하면서 ‘정진석 비대위’가 공식 출범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정진석 비대위’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했으나 법원은 2022년 10월6일 이를 기각했다.
이처럼 정진석이 비대위원장에 선임된 것은 법원에서
이준석 전 대표가 낸 가처분 신청이 인용됨에 따라
주호영 전 비대위원장의 직무가 정지됐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주호영 전 비대위원장의 직무가 정지되자 새로운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기 위해 ‘비상상황’에 관한 당헌·당규 규정을 수정했다.
법원은 2022년 10월6일
이준석 전 대표가 낸 ‘정진석 비대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면서 “개정 당헌에 따른 상임전국위 의결에 실체적·절차적 하자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정진석은 법원 판결이 나온 뒤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의 현명한 판단에 감사드린다”며 “당내 분란으로 국민 여러분과 당원 동지들께 오랜 기간 심려를 끼쳐드린 만큼 더욱 심기일전해 하나 된 힘으로 힘차게 전진하겠다”고 밝혔다.
정진석은 비대위원장을 맡은 뒤 강력한 대야 공세와 함께 지지층 다지기에 힘을 쏟았다.
그는 같은 해 9월29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민주당을 향해 "망국적 입법독재와 무책임한 국익자해 행위를 하고 있다"며 강도 높은 비난을 쏟아냈다. 10월13일 대구에서 현장 비대위를 열고 "대구경북은 우리 당의 뿌리이자 심장"이라며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 ▲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2016년 12월12일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진석 블로그> |
△새누리당 원내대표
정진석은 2016년 5월3일 새누리당 원내대표에 선출됐다. 당시 당대표가 없는 상황이어서 후임 당대표가 선출되기 전까지 비상대책위원장도 겸임하게 됐다.
정진석은 새누리당 원내대표 선거에서 119표 가운데 69표를 얻어 43표에 그친 나경원 의원을 꺾고 원내대표에 선출됐다.
원내대표 선거가 실시된 시점에 국회의원 당선인 신분이었기 때문에 새누리당 출범 이후 첫 원외인사 원내대표로 기록됐다.
정진석은 원내대표로 선출된 뒤 당선인사에서 “우리에겐 18개월이 남아있다”며 “
박근혜 정권 마무리 겸 새 정권 창출의 선발 투수를 하겠다”도 말했다.
계파색이 강하지 않고 청와대와 대야 협상 경험이 풍부한 점이 원내대표 당선 요인으로 꼽혔다. 그러나 갈등이 컸던 ‘친박’계와 ‘비박’계 사이 입장 조율을 하는 과정에서 당 혁신위원회 구성을 위한 전국위원회 개최가 무산되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정진석은 같은 해 5월8일 당정협의를 갖고 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대한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를 추진하기로 했다. 5월23일에는 대우조선해양 노조 지도부와 만나 고용대책을 논의하는 등 적극적 민생행보를 보였다.
2016년 6월17일에는
유승민 의원의 복당을 결정해 친박계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정진석 원내대표 체제는 오래가지 못했다. 정진석은 원내대표에 선출된 지 6개월여 만에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을 맞았고, 원내대표 선거에서 팀을 이뤄 출마했던 김광림 정책위의장과 함께 2016년 12월12일 사퇴했다.
정진석은 사퇴 기자회견에서 “대통령 탄핵이라는 충격적 사건을 겪으며 마음고생 했을 국민들께 무릎 꿇고 사죄한다”며 “대통령 탄핵소추 가결에 대해 집권정당 원내대표로서 책임지는 것이 온당하다”고 말했다.
| ▲ 정진석 국회 사무총장이 2013년 12월19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생일이자 대선승리 기념일, 결혼 기념일을 맞아 축하한다며 페이스북에 이 사진을 올렸다. <정진석 사회관계망서비스(SNS)> |
△이명박 정부 정무수석에 발탁
정진석은 2010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에 임명됐다.
정진석은 부친이 박정희 대통령 시절 내무부 차관과 충남도지사를 지냈다는 점에서 범친박계로 분류됐다. 2010년 6월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세종시 수정안'이 부결될 때 친박계 의원들과 함께 반대표를 던지기도 했다.
하지만 충청 출신 자민련계 의원으로서 계파색이 옅은 것으로 평가받았고, 이명박 정부의 탕평인사 차원에서 정무수석에 기용됐다.
그는 정무수석에 발탁된 뒤 YTN 라디오 출발새아침 인터뷰에서 "대통령과 의견이 엇갈릴 때 노(No)라고 하는 게 정무수석의 역할"이라며 "여야를 막론하고 다양한 생각과 의견이 왕래하고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정진석은 정무수석으로서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면담을 성사시키는 등 친이계와 친박계 사이를 원만히 조율해 정권 재창출 기반 조성에 기여했다는 말을 들었다.
정무수석 시절 롯데마트의 통큰치킨 판매를 비판해 주목받기도 했다.
정진석은 2010년 12월9일 트위터에 "대기업 롯데마트가 하루에 닭 5천 마리를 팔려고 매일 600만 원씩 손해를 보면서 전국 영세 닭고기 판매점 운영자 3만여 명의 원성을 산다"며 "통큰치킨은 구매자들을 마트로 끌어들여 다른 물품을 사게 하려는 통큰 전략"이라고 비판했다.
정진석은 2012년 4월 제19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 친박계인 강창희 국회의장의 비서실장을 맡다가 2013년 1월 제27대 국회 사무총장에 임명됐다.
임명 당일인 1월1일 국회 전 직원과 함께 눈을 치우는 것으로 국회 문턱을 낮추고 민생을 살피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후 업무보고를 총장실이 아닌 각 실·국에 찾아가서 받고 사무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등 기존 관행을 개혁했다. 제헌국회 이후 66년 만에 여야 국회의원들이 첫 단체사진을 찍자는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 ▲ 정진석 자유민주연합 의원이 2001년 김종필 전 국무총리와 함께 기자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정진석 블로그> |
△정치 입문과 선거 이력
정진석은 1999년 정계에 입문한 뒤 총선 여섯 번, 보궐선거 한 번, 도지사 선거 한 번 등 모두 여덟 번 선거에 출마했다. 이 가운데 총선 네 번과 보궐선거 한 번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돼 5선 의원이 됐다.
정진석은 2000년에 김종필 자유민주연합 총재의 요청으로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충남 공주시에 출마했다. 6선 의원을 지낸 선친 정석모 전 내무부 장관의 지역구였던 곳이다.
당시 정진석은 25.20%를 득표해 부친의 경쟁자였던 재선의원 출신 이상재 한나라당 후보를 꺾고 국회에 입성했다.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출마했으나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정국의 역풍을 극복하지 못하고 낙선했다. 하지만 정진석을 꺾고 당선된 오시덕 열린우리당 후보가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 무효가 되자 2005년 재보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정진석은 심대평 전 충남도지사와 함께 국민중심당을 창당했으나 곧 결별하고 2007년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그 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충남 공주·연기 선거구에 공천을 신청했으나 탈락하고 비례대표 8번을 받아 3선 의원이 됐다. 당시 심대평 전 지사가 충남 공주·연기에 출마하면 정진석이 낙선할 확률이 높아 당에서 배려를 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정진석은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정치인 2세 대결을 벌여 화제를 모았다. 당시 정진석은 서울의 험지에 출마해달라는 당의 요청을 받고 서울 중구에 출마해 5선 정대철 전 의원의 아들 정호준 민주통합당 후보와 겨뤘다. 정진석은 46.33%를 득표했으나 정호준에게 밀려 낙선했다.
정진석은 2014년 제6회 전국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충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했으나 안희정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에게 7만3679표 차이로 패배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진석은 8년 만에 지역구였던 충남 공주·부여·청양에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해 48.13%의 득표율로 당시 그 지역구 현역 의원이었던
박수현 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을 꺾고 4선 의원이 됐다.
두 사람은 2020년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맞붙었는데 정진석이 48.65%를 득표해 승리하며 5선 의원 고지에 올랐다.
4년 뒤 열린 제22대 총선에서 두 사람은 세 번째 대결을 펼쳤고 정진석은 48.42%를 득표해 50.66% 득표율을 기록한 박 전 수석에게 밀려 6선 의원이 되는 데 실패했다.
△정계 입문 전 기자로 활동
정진석은 대학 졸업 후 한국일보에 입사해 15년 동안 기자 생활을 했다. 정치부, 사회부 등을 거쳐 한국일보 워싱턴 특파원과 논설위원을 지냈다.
정치부 기자 시절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의 ‘3김’ 정치 현장을 누볐다. 정진석은 2020년 9월19일 데일리안 인터뷰에서 “정치부 기자로 수많은 선거를 치르면서 정치와 선거에 대한 공부를 많이한 셈”이라고 말했다.
한국일보 워싱턴 특파원 시절이던 1994년 아이티 내전을 취재하기 위해 전쟁 현장에 뛰어들기도 했다.
정진석은 백상 기자대상을 네 번, 한국기자협회 기자상을 두 번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