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일순 전 대표는 건설업계에서 일한 경력도 없고 최근 건설사들이 경쟁하는 친환경 분야 전문가도 아니다. 1998년 코스트코와 인연을 시작으로 유통업계에서 20년 넘게 두루 경력을 쌓아온 인물이다.
▲ 한미글로벌이 올해 정기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로 임일순 전 홈플러스 대표이사(사진)를 신규 선임한다.
건설사업관리(PM) 전문기업 한미글로벌은 왜 유통업계 최고경영자(CEO) 출신을 이사회에 합류시켰을까?
15일 한미글로벌에 따르면 임일순 전 대표는 24일 제27기 정기주주총회 의결을 통해 2년 임기로 회사 이사회에 합류하게 된다.
최근 건설업계가 전반적으로 여성 사외이사 영입에 적극 나서고 있는 점을 고려해도 임 전 대표 영입은 눈에 띈다.
대형 건설사의 여성 사외이사들을 둘러봐도 법조계나 학계 출신 인물 또는 건설사들이 신사업으로 눈독을 들이고 있는 환경분야 전문가 정도가 대부분이다. 완전한 이종산업분야의 ‘베테랑’ 경영인은 흔치 않다.
한미글로벌은 임 전 대표 영입으로 지금까지 전부 남성 이사로 꾸려졌던 이사회에 다양성을 갖춰 거버넌스(지배구조) 관련 지표를 개선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더해 재무, 경영부분에서 이사회의 전문성도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미글로벌은 특히 임 전 대표를 신규 사외이사에 추천하면서 국내뿐 아니라 외국계기업에서 쌓아온 경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한미글로벌은 주주총회 소집공고에서 임 전 대표를 사외이사로 추천한 사유를 “국내와 해외 주요 기업의 경영경험을 토대로 회사사업 전반 전략수립과 리스크 관리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임 전 대표는 연세대 경영학과, 연세대 대학원 경영학석사를 마친 뒤 1998년 미국계 대형마트 코스트코를 통해 유통업계에 발을 들였다. 그 뒤로도 바이더웨이, 호주 엑스고그룹 등에서 재무부문장 등을 맡았다.
2017년 10월 홈플러스 대표에 올라 한국 유통업계 첫 여성 CEO가 된 뒤에는 ‘월드클래스 홈플러스’를 내걸고 해외로 눈을 돌려 글로벌유통 확장에 힘을 쏟았다. 임 전 대표는 유럽, 미국, 베트남 등 해외 유통업체와 잇따라 협약을 맺고 글로벌소싱 강화를 추진했다.
임 전 대표가 글로벌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외국계기업의 재무와 회사 경영 전반을 경험한 점은 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의 ‘글로벌경영’ 강화 의지에 부합하는 부분이 있다.
김 회장은 27년 전 회사를 처음 창립할 때부터 해외시장 진출을 강조해왔다.
최근에는 한미글로벌이 사우디아라비아 ‘네옴시티’ 수주활동에서 성과를 이어가면서 글로벌시장에서 기업 인지도 향상과 사업 확대에 더욱 힘을 싣고 있다.
김 회장은 2023년 신년사에서 “회사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서는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해 글로벌시장에서 승부를 걸어야 한다”며 “회사의 사람, 조직, 품질, 시스템 측면에서 철저한 글로벌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올해 초 개인 홈페이지에서도 ‘진정한’ 글로벌기업으로 나아가기 위해 마케팅의 글로벌화, 본사 구성원의 글로벌화, 일하는 방식의 글로벌화 등이 필요하다는 글을 공유했다.
▲ 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
김 회장은 앞서 2019년에도 회사 경영진에 해외건설시장 경험이 풍부한 한찬건 전 포스코건설 사장을 영입하기도 했다.
한찬건 한미글로벌 부회장은 1978년 대우그룹에 입사해 나이지리아, 방글라데시, 이란, 미얀마 등 해외현장에서 많은 경력을 쌓은 글로벌사업 전문가다. 한미글로벌에서도 글로벌사업 총괄을 맡고 있다.
물론 사외이사는 회사 내부 경영진과 역할부터가 다르다. 하지만 회사의 전반적 경영 방향성, 전략수립 등 굵직한 의사결정과정에 한 자리를 차지하는 구성원이다.
한미글로벌 내부자료에 따르면 2022년 11월 기준 회사 전체 수주에서 해외 비중이 40%에 이른다. 해외 자회사까지 포함하면 해외 수주실적 비중이 52%로 절반 수준이다. 같은 기간 매출과 영업이익도 해외 비중이 각각 25%, 29%로 적지 않다.
회사에 따르면 인적자원 부분에서도 회사 인력 가운데 150명, 약 12%가 외국인이고 해외 자회사 인원까지 더하면 그룹 전체에서 외국인 직원 수는 650여 명으로 늘어난다.
지난해 3분기 기준 한미글로벌 연결기준 직원의 수가 1966명인 점을 고려하면 전체의 33%를 각 해외 현지인력 등으로 채우고 있는 셈이다.
김 회장은 2022년 9월 앞으로 5년 뒤인 2027년에는 회사 매출을 1조2천억 원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이 가운데 절반을 해외사업에서 거두겠다는 목표를 내놓았다.
한미글로벌 2022년 매출이 3744억 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포부가 큰 만큼 아직 갈 길도 멀다.
임 전 대표 사외이사 영입이 사업다각화를 염두에 둔 행보라는 시선도 나온다.
한미글로벌은 최근 사우디 네옴시티를 포함 중동, 미국, 영국 등 해외사업 호조로 회사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022년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2021년보다 38.6%, 54% 수준으로 증가하면서 창립 이래 최대 실적을 냈다.
하지만 건설사업관리(PM) 단일사업을 운영하는 포트폴리오로 사업다각화 과제를 안고 있다.
김 회장은 2022년 12월 ‘2023년의 화두는 생존-공격과 수비전략’이라는 글에서 “올해 사우디 네옴시티를 비롯해 초대형 프로젝트 수주로 회사 브랜드 가치를 크게 올린 점은 큰 성과”라면서도 “2023년에는 철저한 리스크 관리 우선 정책에 더해 인수합병 등 미래에 관한 투자를 지속적으로 시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앞서 2022년 신년사에서도 “한미글로벌은 건설관리사업에서 시작했을 뿐 우리 스스로 사업의 범위를 제한하지 말아야 한다”며 용역 중심 사업구조에서 벗어나 사업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미글로벌은 이에 2022년 초 리츠 자산관리회사 한미글로벌투자운용을 설립하는 등 부동산개발사업으로 영역확장 등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