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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수현 현대건설 사장(왼쪽), 임병용 GS건설 사장,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 |
국내 건설사가 해외 수주가뭄에서 탈출하기 위해 올해 기획제안형 프로젝트 능력을 확보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국내 건설사는 올해 들어 해외에서 37억6271만 달러 수주에 그치고 있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의 단순도급형 사업으로는 외형성장은 물론이고 수익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판단한다.
이에 따라 기획과 금융부문을 결합한 기획제안형 사업이 해외에서 수주가뭄을 이겨내고 수익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대안으로 꼽고 있다.
국내 건설사들이 체질개선에 성공할지 주목된다.
◆ 기획제안형 사업으로 체질개선 추진
이경자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24일 “국내 건설사는 지난해부터 천편일률적인 수주패턴에서 벗어나 저유가 수혜가 가능한 아시아 등 원유수입국으로 시장을 다변화하거나 이란 등 신규시장을 공략하며 체질변화를 진행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연구원은 국내 건설사가 올해 체질개선 노력을 통해 지난해보다 최소 78% 늘어난 25조 원 규모의 해외수주를 거둘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 건설사 CEO들은 체질개선 노력의 일환으로 연초부터 기획제안형 사업에 주력하겠다는 목표를 내놓고 있다.
정수현 현대건설 사장은 신년사에서 기술역량 강화를 통해 미래성장 사업기반을 다진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정 사장은 “기술과 연결한 기획제안형 사업을 발굴하는 등 고부가가치 사업을 확대해야 미래 먹거리에 대한 고민을 덜 수 있다”며 “우선적으로 설계 역량을 강화해야 궁극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정 사장은 올해 경영방침에서도 해양항만과 육상교통, 초고층빌딩 개발, 플랜트 등 기존의 EPC(설계-구매-조달) 사업에서 더 나아가 경쟁력을 갖춘 ‘밸류체인’(Value Chain)을 활용해 고부가가치 사업을 확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영식 대우건설 사장도 올해 신년사에서 기획제안형 사업의 초석을 다지는 데 힘을 쏟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박 사장은 “기존 EPC(설계-구매-시공) 프로젝트만으로 회사의 성장과 수익성을 담보할 수 없게 됐다”며 “기획과 금융, 운영 등 고부가가치 영역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춰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임병용 GS건설 사장은 올해 EPC 역량뿐 아니라 자금조달 능력까지 동원하는 등 기획제안형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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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건설과 GS건설, 대림산업이 참여한 세계 최대규모 가스전 개발 사업인 이란 사우스파 가스전 개발 사업 현장. |
임 사장은 올해 밝힌 해외사업 전략에서 “출혈경쟁 입찰을 지양하고 수의계약과 기획제안형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해외시장의 돌파구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GS건설은 지난해 12월 수출입은행과 한국무역보험공사의 도움을 받아 오만 국영정유 및 석유화학회사가 발주한 정유 플랜트의 EPC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허윤홍 GS건설 사업지원실장은 “앞으로도 다양한 금융 주선을 동반한 프로젝트에 주력해 수주 경쟁력을 확보하고 수익성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은 다른 건설사의 기획제안형 사업보다 한발 더 나아가 ‘리드 디벨로퍼’가 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이 부회장은 신년사에서 “금융뿐 아니라 기획부터 운영까지 총괄하는 리드 디벨로퍼 프로젝트를 발굴해야 할 것”이라며 “부서간 협력과 전략적 파트너십 제휴, 금융조달 등을 통해 리드 디벨로퍼로 도약하자”고 강조했다.
대림산업은 최근 자회사 대림C&S의 상장을 추진하며 일부 지분을 매각해 700억 원 규모의 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를 ‘리드 디벨로퍼’로 도약하기 위한 종잣돈으로 삼을 것으로 보인다.
◆ 기획제안형 사업에 주력하는 이유
국내 건설사가 기획제안형 사업에 집중하는 이유는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기획제안형 사업은 항만과 도로, 신도시 개발과 같은 대형 프로젝트의 사업기획부터 제안, 설계, 자금조달, 시공, 운영, 관리까지 총괄하는 사업을 말한다.
기획제안형 사업은 단순도급보다 사업기간이 길고 위험 부담도 크지만 수익률은 2~3배 높다.
선진국 건설사는 이미 기획제안형 사업의 비중을 전체사업의 70% 가까이로 늘렸다. 반면 국내 건설사가 해외에서 기획제안형 사업을 진행하는 비율은 전체의 3% 수준에 불과하다.
기획제안형 사업은 해외 수주가뭄에서 벗어나기 위한 해결책이기도 하다.
국내 건설사들은 중동발 수주가뭄을 겪고 있는데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 조치가 해제되면서 이란은 중동의 기대주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란은 그동안 경제제재로 산업이 많이 위축돼 있어 도로와 병원, 학교 등 기본적인 인프라부터 대형 플랜트까지 다양한 신규발주가 쏟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해외건설협회는 이란 건설시장의 규모가 2013년 887억 달러였지만 올해는 그 규모가 2배 가까이 늘어난 1544억 달러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이란의 신규발주를 수주해 실적을 내기 위해서는 기획제안형 사업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란은 자금력이 바닥난 상태라 건설사에게 ‘발주는 하겠지만 공사자금을 마련해 와 달라’고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건설사는 프로젝트 시공능력에 비해 자금조달 능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국내 건설사가 그동안 정부나 민간 발주처로부터 수주한 프로젝트의 시공만 하는 도급사업 위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건설사가 이란 호재를 실적 개선으로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기획과 자금조달 등 경쟁력을 강화한 기획제안형 사업으로 체질개선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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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27일 김경욱 국장을 비롯한 국토부 관계자들과 수출입은행, 한국무역보험공사, 현대건설, 대우건설, SK건설, GS건설, 쌍용건설 등 건설사 실무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이란 건설시장 진출지원 간담회'가 열렸다. |
◆ 기획제안형 사업에 힘 보태는 금융업계
한국무역보험공사와 한국수출입은행 등 금융업계는 건설사의 이란 진출을 돕기 위해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서고 있다.
김영학 한국무역보험공사 사장은 1월 국내 건설사가 이란 플랜트 건설을 수주하는 데 힘을 보태기 위해 이란 정부와 20억 달러 규모의 포괄적 금융약정을 1분기 안에 체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 사장은 “국내 건설사는 중동을 비롯한 해외에서 수주가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국내 건설사가 이란에서 선전할 수 있도록 무역보험과 금융 지원에 만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수출입은행도 3~4월 이란 상업은행과 기본협정을 체결하고 전대금융한도를 설정하는 등 건설사의 이란 진출을 지원하기로 했다.
국내 건설사도 자체적으로 해외 건설사업에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해외 금융기관과 전략적인 제휴를 맺고 있다.
대림산업은 지난해 12월 계열사 대림에너지를 통해 이슬람개발은행이 세운 금융기업과 대림 EMA라는 합작법인을 설립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지원 아래 국내 건설사가 기획제안형 사업으로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며 “국내 건설사가 기획과 자금조달 등 기획제안형 사업에 지속적으로 투자하면 해외에서 경쟁력을 한층 끌어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