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다가 신 부회장 앞에는 이날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난 박진수 부회장이 ‘혼돈’이라고까지 표현한 업황 부진이라는 악재가 놓여 있다.
15일 LG화학에 따르면 신 부회장은 정보전자소재부문과 전기차 배터리사업을 양 날개로 LG화학의 외형 성장세를 이어가는 데 힘을 쏟는다.
정보전자소재부문은 2018년 매출 3조 2730억 원, 영업적자 283억 원을 거둬 지난해 유일하게 영업적자를 낸 사업부문이 됐다.
신 부회장이 이 부문의 성장을 일궈낸다는 것은 단순한 외형 성장을 넘어 실질적 수익까지 확대한다는 의미가 있다.
신 부회장이 정보전자소재부문의 혁신을 위해 투명 폴리이미드필름사업을 시작할 것이라는 관측이 업계에 퍼져있지만 LG화학은 ‘긍정적 검토’라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는 LG디스플레이-LG전자로 이어지는 정보전자소재부문 고객사 라인의 전략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때문으로 분석된다.
LG화학 관계자는 “투명 폴리이미드필름사업은 최대 고객사인 LG디스플레이의 성장전략에 맞춰 갈 수밖에 없는 사업”이라며 “전방 고객사의 명확한 움직임이 없다면 섣불리 사업을 시작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 부회장이 사업을 추진할 조건은 무르익고 있다.
LG전자는 앞서 2월 열린 국제 이동통신 박람회(MWC 2019)에서 글로벌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접는 스마트폰을 내놓는 가운데 듀얼스크린 보조장치를 공개했지만 “폴더블 폰이 아니라 ‘폰더블(두 개의 스마트폰)’”이라는 조롱 섞인 비판을 받았다.
이에 따라 LG전자는 시장의 반응을 지켜본 뒤 접는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롤러블 스마트폰으로까지 폼팩터(외형 특징)를 혁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권봉석 LG전자 MC/HE사업본부장 사장은 “롤러블 TV도 내놓을 수 있는 기술력이 있는데 폴더블, 롤러블 스마트폰도 만들 수 있지 않겠느냐”며 “앞으로 시장 규모가 커지면 대응할 수 있는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LG전자가 롤러블기기 중심의 성장전략을 결정한다면 투명 폴리이미드필름이 휘는 올레드(OLED) 디스플레이의 핵심 소재인 만큼 신 부회장의 신사업 추진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신 회장은 주어진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전기차 배터리의 수주잔고를 문제없이 수익으로 실현하는 일에도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LG화학은 올해 전기차 배터리사업의 매출 목표를 5조 원으로 제시했다. 지난해 추정 매출 2조 원의 2.5배에 이른다.
LG화학의 전기차 배터리 수주잔고는 2018년 말 기준으로 78조 원으로 추산됐다. 생산규모로 환산하면 600기가와트시(GWh) 수준이다. 그러나 현재 LG화학의 전기차 배터리 생산능력은 연 35기가와트시에 그친다.
수주잔량과 생산능력을 단순하게 비교하면 전기차 배터리 생산공장 가동률을 100% 가까이 유지해야 5조 원 매출 달성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신 회장이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신 부회장이 정보전자소재부문의 혁신과 전기차 배터리의 수주잔고 수익화에 성공하더라도 매출 32조 원은 여전히 달성하기 쉽지 않은 목표다. LG화학의 주력 사업부문인 기초소재부문이 업황 부진으로 고전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기초소재부문이 지난해 거둔 매출은 18조로 전체 매출의 65%에 이른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이 해소되지 않고 있으며 중국의 경기부양책도 아직 실질적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어 기초소재부문의 업황 악화가 상당 기간 지속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바라본다.
각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석유화학설비 증설에 따른 기초소재의 공급과잉 가능성도 신 부회장에게는 고민거리다.
이도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석유화학 업황을 놓고 “중국의 석유화학제품 수요 회복이 예상보다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며 “신규설비 증설에 따른 석유화학제품의 가격 인하 경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파악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