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과 신세계그룹, 현대백화점그룹은 기업형벤처캐피털(CVC)이나 별도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스타트업에 투자해왔지만 고금리가 시작된 뒤부터 투자가 눈에 띄게 줄고 있어서다.
14일 롯데벤처스와 시그나이트파트너스 등 롯데그룹과 신세계그룹이 각각 운영하는 기업형벤처캐피털의 투자 이력을 살펴보면 2021년을 고점으로 그 규모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한국 스타트업 투자 데이터베이스를 제공하는 더브이씨에 따르면 롯데벤처스가 지난해 투자한 스타트업은 모두 11개 회사다. 규모는 52억 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롯데벤처스가 2021년까지만 해도 회사 70곳에 295억 원 이상을 투자했던 것과 비교하면 3년 만에 투자 기업 수는 7분의 1로, 금액은 6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 롯데벤처스는 신동빈 회장이 '롯데를 망하게 할 기업을 찾아라'는 특명 이후 만들어진 회사다. 사진은 김승욱 롯데벤처스 대표이사.
롯데벤처스의 투자가 줄어들기 시작한 시기는 금리 인상이 시작된 2022년 초부터. 자본시장에서 돈을 조달하는 것이 어려워지기 시작하면서 이른바 ‘투자 혹한기’가 시작된 시기와 겹친다.
초창기 스타트업 발굴과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기업형벤처캐피털 입장에서도 위험 부담을 줄일 수밖에 없었는데 이런 환경이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롯데벤처스는 2016년 2월 설립된 롯데엑셀러레이터를 전신으로 한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롯데가 망하게 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보유한 기업을 찾으라”고 지시하면서 만들어졌다.
신 회장이 직접 회사의 초기 자본금 150억 원 가운데 50억 원을 출연했을 정도로 많은 관심을 쏟았던 회사이다.
신 회장의 의지에 부합하듯 롯데벤처스는 스타트업 발굴에 적극적 모습을 보였다. 2017년 회사 16곳에 7억 원 이상을 투자했는데 이는 2018년 회사 31곳에 42억 원 이상, 2019년 회사 44곳에 145억 원 이상, 2020년 회사 52곳에 125억 원 이상 등으로 늘었다.
외부 환경의 변화가 롯데그룹의 스타트업 발굴 의지도 동시에 흔드는 모양새다.
▲ 신세계그룹에서 기업형벤처캐피털을 담당하는 시그나이트파트너스는 정유경 회장의 남편인 문성욱 대표이사(사진)가 이끌고 있다.
신세계그룹도 스타트업 투자에 소극적 모습을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다.
신세계그룹이 운영하는 기업형벤처캐피탈은 시그나이트파트너스다. 시그나이트파트너스는 2020년 7월 출범했다. 초기 자본금 200억 원은 신세계인터내셔날 100억 원, 신세계 60억 원, 신세계센트럴시티 40억 원 등으로 모았다.
시그나이트파트너스의 특징은 정유경 신세계 회장의 남편인 문성욱 대표가 회사를 이끈다는 점이다. 오너일가가 이끄는 기업형벤처캐피탈이라는 점에서 신세계그룹 역시 스타트업 투자를 통한 미래 성장 동력 발굴에 진심으로 다가섰다는 점을 을 수 있다.
시그나이트파트너스 역시 출범 이듬해인 2021년 회사 10곳에 272억 원 이상을 투자하며 스타트업 발굴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고금리가 시작된 2022년에도 회사 13곳에 381억 원을 투자하면서 투자 운용 규모를 키웠다.
하지만 2023년부터는 롯데벤처스와 비슷한 처지다. 시그나이트파트너스는 2023년 회사 7곳에 129억 원을 넣었고 지난해에는 단 3곳에만 투자했다. 지난해 투자 규모는 비공개다.
현대백화점그룹도 스타트업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 현대백화점그룹은 별도의 기업형벤처캐피탈을 운영하지 않는다.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창업 지원기업)인 케이스타트업과 손잡고 스타트업의 창업과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프로그램 ‘체인지엑스’를 통해 2022년 2월부터 투자를 시작했다.
하지만 2022년 2월과 8월 두 차례 스타트업의 지원을 받은 뒤에는 추가로 프로그램을 가동하지 않고 있다.
유통 대기업의 스타트업 투자 축소는 회사의 미래 성장 동력 발굴에 탄력을 받기 힘든 상황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대기업이 기업벤처캐피털을 만드는 이유는 회사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스타트업을 선점하기 위한 목적이 큰 경우가 많다.
일반 벤처캐피털은 스타트업을 어느 정도 궤도에 올린 뒤 투자자금을 회수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한다. 재무적 이익 관점에서 접근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업형벤처캐피털은 전략적 차원에서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사례가 많다. 모기업과 비즈니스 차원에서 도움이 되느냐를 중점적으로 판단해 투자기업을 선별한다는 것이다.
롯데벤처스는 2023년 매출 71억 원, 영업이익 7억7500만 원을 기록했다. 2022년보다 매출은 4.4%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23.4% 줄었다. 시그나이트파트너스는 2023년 매출 51억 원, 영업이익 7억7700만 원을 냈는데 이는 2022년보다 매출은 30.8% 늘고 흑자전환한 것이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