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믿으면 오래 쓴다.’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의 인사 성향을 한 마디로 압축한 평가다. 현대백화점그룹 계열사에 유독 장수 최고경영자(CEO)가 많은 이유도 정 회장의 성향과 무관하지 않다.
▲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사진)은 한 번 발탁한 계열사 대표를 오래 중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
정 회장이 다가오는 현대백화점그룹의 정기 임원인사에서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변화보다는 안정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18일 현대백화점그룹 관계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올해 정기 임원인사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11월 초에 진행될 것으로 관측된다.
최근 3년 동안 현대백화점그룹의 임원인사 시기는 2020년 11월6일, 2021년 11월5일, 2022년 11월10일 등이었다.
현재 현대백화점 내부에서 올해 임원인사 시기가 앞당겨진다거나 늦어진다는 얘기가 돌고 있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도 인사 시기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지선 회장의 성향을 감안했을 때 올해 인사도 변화보다는 안정에 방점이 찍히지 않겠냐는 것이 유통업계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신세계그룹이 대대적 물갈이 인사로 쇄신에 초점을 맞추면서 경쟁사들도 판을 흔들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지만 현대백화점그룹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정 회장이 최근 수 년 동안 진행한 인사는 이런 시각을 뒷받침한다.
정 회장이 지난해 인사를 통해 계열사 대표이사를 모두 유임했다. 안정이라는 큰 틀 안에서 성장과 변화를 도모했다는 것이 현대백화점그룹의 설명이었다.
2021년 말 진행한 인사에서도 한섬 사장에 삼성물산 출신의 박철규 사장을 영입한 것을 제외하면 계열사 사장단에 변화를 주지 않았다.
정 회장이 2019년 말 실시한 임원인사가 그나마 ‘세대 교체’에 방점이 찍혔다는 평가를 받는 인사다.
당시 정 회장은 1950년대생인 이동호 현대백화점그룹 부회장, 박동운 현대백화점 대표이사 사장, 김화응 현대리바트 대표이사 사장을 물러나게 하고 그 자리를 1960년대생으로 채웠다.
정 회장이 유독 인사에 신중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회사의 중장기적 발전을 위해서는 오래 신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경영 철학 때문이라는 것이 현대백화점그룹 관계자의 말이다.
현대백화점그룹의 한 관계자는 "현대백화점그룹에서 임원으로 승진한 뒤 그룹의 비전과 장기 성장전략에 부합된다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문화가 마련돼 있다"고 말했다.
임원들이 해마다 인사에 집착하는 문화가 조성되면 회사의 발전 방향을 놓고 근본적으로 고민하기보다는 단기 성과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정 회장의 철학이라는 뜻이다.
박홍진 현대그린푸드 대표이사는 정 회장의 보수적 인사 성향을 상징하는 대표적 인물이다.
박 대표는 현대백화점 영업본부장을 맡다가 2014년 12월 실시된 정기 임원인사에서 현대그린푸드 대표이사에 발탁됐다. 현대그린푸드가 3인 공동대표 체제, 2인 공동대표 체제 등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그는 항상 자리를 지켰다.
현대그린푸드가 올해 초 인적분할로 쪼개지며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는 가운데서도 박 대표의 자리는 유지됐을 정도로 정 회장은 그에게 두터운 신뢰를 보내고 있다.
▲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이 올해 계열사 사장단에 소폭 변화를 줄 가능성도 제기된다. 사진은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현대백화점 신사옥. <현대백화점> |
윤기철 현대리바트 대표이사도 2019년 말 실시된 임원인사에서 현대리바트 수장에 오른 뒤 4년 가까이 회사를 이끌고 있다.
현재 현대백화점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김형종 사장도 2012년부터 2019년까지 8년 동안 현대백화점그룹의 패션 계열사 한섬을 도맡았을 정도로 현대백화점그룹 계열사 곳곳에는 장수 CEO가 많다.
다만 정 회장이 소폭이나마 계열사 사장단에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마지막으로 세대교체 인사를 진행한지 4년이나 지난 만큼 유통업계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차원에서 보다 젊은 사람들로 최고경영진을 구성할 수 있다는 의미다.
대표를 교체한다면 현대백화점이 그 중심에 설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된다.
현대백화점은 2010년대에 3년마다 대표이사가 교체됐다.
김형종·장호진 대표이사는 2020년 3월 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에 선임된 인물인데 올해 인사에서 새 인물이 발탁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현대백화점그룹 안팎의 얘기다.
2024년 3월을 마지막으로 임기가 끝나는 현대백화점그룹 계열사 대표들로는
김형종·장호진 현대백화점 대표이사 이외에도 임대규 현대홈쇼핑 대표이사가 있다.
현대백화점그룹 관계자는 “연말 임원인사와 관련해서는 알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