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회사들이 민관협력을 통해 동남아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주춤했던 아세안시장 개척이 리오프닝과 맞물려 투자금융 글로벌 스탠다드 확보를 목표로 다시 빠르게 진행되는 모양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세일즈맨을 자처하며 지원 사격에 나서 이목을 끈다. 아세안 금융허브인 싱가포르와 함께 수교 50주년을 맞는 인도네시아, ‘포스트 중국’ 베트남, 신흥시장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캄보디아 시장 선점을 위한 행보로 읽힌다. 이에 비즈니스포스트는 특별취재팀을 꾸려 금융시장 성장 발판을 구축하고 있는 동남아 시장의 현재와 미래를 짚어보고, 인도네시아 베트남 캄보디아 3개국에서의 국내 금융업계 활약상을 생생하게 소개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 프롤로그 글 싣는 순서
① 진정한 금융강국이 되는 지름길, 아세안에 있다
② 은행 증권 보험 빅테크도 예외 없다, 아세안 돈줄 장악 특명
③ 김주현도 이복현도 영업맨, K금융 길 당국도 함께 닦는다
④ [인터뷰] 최희남 전 KIC 사장 “대표 브랜드 육성에 정부도 나서야”
⑤ [인터뷰] ‘동남아고’ 고영경 “아세안 공략, 디지털금융으로 직진하라”
⑥ [인터뷰] 한투운용 사장 배재규 “베트남 질적 성장 가장 주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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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금융이 코로나19 이후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에 맞춰 아세안을 중심으로 다시 뛸 준비를 하고 있다. |
[비즈니스포스트] ‘투트랙 전략.’
국내 주요 금융지주의 해외시장 공략 얼개를 한 마디로 요악하자면 이렇다.
아세안을 중심으로 소매금융을 강화하는 것이 한 갈래, 미국과 유럽 등 금융선진국에서 대체투자 등 자산운용사업을 강화하는 것이 또 다른 갈래다.
국내 금융지주가 투트랙 전략을 쓰고 있지만 선진시장 공략에는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기라성 같은 금융사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강국으로 빠르게 존재감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이 아세안에 있다고 보는 이유다. 또한 아세안에서 역량을 키우면 선진시장 공략도 한결 쉬워질 수 있다.
◆ 경제성장 디지털 협력확대, 아세안은 국내 금융사에게 기회의 땅
8일 금융업계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아세안은 K금융이 진출하기에 안성맞춤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아세안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으로 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태국, 브루나이,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 등 10개국을 말한다.
아세안은 우선 2000년대 들어 중국을 제외하고 어떤 신흥국보다도 경제가 빠르고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아세안 10개국의 2021년 국내총생산(GDP)은 3조3434억 달러에 이른다. 2000년 6144억 달러에서 약 20년 사이 5배 넘게 커졌다. 같은 기간 한국의 GDP 성장률 214%를 훌쩍 뛰어넘는다.
아세안 10개국의 GDP가 전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2000년 1.9%에서 2021년 3.4%로 크게 증가했다.
아세안에는 2022년 말 기준 약 6억8천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중국과 인도에 이은 세계 3위의 인구 규모다.
아세안은 경제성장과 대규모 인구에 힘입어 소비시장이 빠르게 크고 있는데 금융시장 성장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세계은행 등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베트남의 시가총액과 국채발행액이 2010년보다 각각 10배와 2.1배 커졌다. 같은 기간 인도네시아도 시가총액과 국채발행액이 각각 2배씩 늘었다.
디지털 사용에 상대적으로 익숙한 젊은 인구가 많다는 점도 디지털금융에 강점을 지닌 국내 금융사의 아세안 진출에 유리한 점으로 꼽힌다.
아세안의 중간연령은 약 30세로 역내 35세 이하 인구가 4억 명을 넘어 전체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기업의 아세안 진출이 나날이 활발해지는 점도 국내 금융사의 시장 확대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아세안은 2020년 11월 한국과 아세안 10개국, 중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15개국이 참여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체결 이후 우리에게 더욱 중요한 시장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협정은 일종의 자유무역협정(FTA)이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지난해 11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한국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한국판 인도 태평양 전략’과 ‘한 아세안 연대구상(KASI)’을 제시하며 문재인정부의 신남방정책에 이어 아세안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
국내기업의 해외 진출에는 금융지원이 필수적 요소로 여겨진다. 더군다나 최근에는 기존의 단순 동반진출에서 벗어나 초기 투자부터 해외시장 안착 이후 성장까지 이끄는 전방위적 지원으로 금융의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
윤석열정부도 국내기업의 해외진출 과정에서 금융산업의 전방위적 지원을 강조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1월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미국 보스턴에는 세계적 의약회사들이 많은데 이를 지원하는 금융투자 회사들도 많다”며 “금융투자는 법률, 회계, 재무, 자문 등이 복합적으로 합해져야 하는데 이런 다양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금융위를 중심으로 금융산업을 더 국제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 윤석열 대통령이 11일 오후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한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각국 지도자들과 기념사진을 직고 있다. <연합뉴스> |
◆ 아직은 갈길 먼 K금융, 경쟁력 강화의 길 아세안에서 찾는다
‘K’라는 알파벳은 어느 순간부터 ‘K팝’ ‘K반도체’ ‘K방산’ ‘K푸드’ 등 한국을 대표하는 산업에 붙기 시작했다.
그런 측면에서 국내 금융사들이 해외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지만 아직 K금융이라고 부르기에는 다소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리딩 금융그룹으로 국내 금융시장에서 가장 많은 순이익을 내는 KB금융그룹의 전체 순이익에서 해외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한 자릿수에 그친다. 자기자본 기준 아시아 10대 투자은행에도 국내 금융사는 한 곳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2021년 말 기준 국내 투자은행 가운데 미래에셋증권의 자기자본이 9조6천억 원으로 가장 많지만 중신증권(40조 원), 해통증권(33조 원), 화타이증권(28조 원) 등 중국, 노무라증권(30조 원), 다이와증권(17조 원) 등 일본 주요 금융사와 비교하면 크게 뒤진다.
미국의 JP모건(294조 원), 골드만삭스(110조원), 모건스탠리(107조 원) 등과 비교하면 여전히 걸음마 수준이다.
하지만 국내 금융사의 해외시장은 분명 해가 지날수록 점점 넓어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금융사의 해외점포 수는 2010년 333개에서 2022년 9월 말 489개로 꾸준히 늘었다.
국내 금융사들은 2020년 이후 코로나19로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도 해외 현지 금융사 인수합병의 끈을 놓지 않았다.
KB금융이 대표적이다.
KB금융은 인도네시아에서 2018년 KB국민은행이 부코핀은행 지분을 인수한 데 이어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KB국민카드의 파이낸시아멀티파이낸스(FMF), KB캐피탈의 수닌도파라마파이낸스 인수를 마무리했고 2022년 1월에는 KB증권의 밸버리증권 인수를 마쳤다.
국내 금융사와 정부는 코로나19 이후 다시 아세안을 중심으로 해외시장 확대에 힘을 실을 준비를 하고 있다.
아세안은 이미 국내 금융사가 가장 많이 진출한 지역이기도 하다.
국내 은행들은 2021년 말 기준 해외점포 204개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35%인 71개 점포가 아세안 국가에 자리 잡고 있다. 베트남이 19개로 가장 많고 미얀마가 17개로 뒤를 잇는다. 미국과 중국은 각각 16개, 유럽(9개)은 전부 합쳐 26개에 그친다.
정부가 아세안을 중심으로 국내 금융산업의 해외시장 확대를 추진하는 점도 기대감을 키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과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해 12월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주한 아세안 대사들과 간담회를 열고 K금융을 적극 홍보했다.
김 위원장은 “한국 금융사는 빠른 경제성장을 뒷받침한 경험이 있다”며 “아세안·인도의 모바일 인프라와 사용인구를 감안할 때 한국 금융사는 핀테크 및 디지털금융의 최적의 파트너다”고 강조했다.
이복현 원장은 K금융을 알리기 위해 이번 주 직접 아세안을 찾는다. 이 원장은 이날부터 12일까지 국내 주요 금융지주와 증권사, 보험사 CEO와 함께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를 돌며 K금융 설명회를 열고 각국 금융당국자를 만나 협력 강화 방안 등을 논의한다.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