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금융권에 따르면 직원 한 명이 2012년부터 2018년까지 6년 동안 3차례에 걸쳐 600억 원가량을 빼돌린 우리은행 사태와 관련해 금감원의 부실 검사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번 사태는 우리은행이 자체 내부감사를 통해 횡령 사실을 적발하고 경찰에 고발하면서 불거졌다. 금감원은 우리은행의 보고를 받기 전까지 횡령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금감원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 초까지 우리은행을 비롯한 우리금융지주를 대상으로 대대적 종합검사를 실시했다는 것이다.
금감원이 우리금융을 대상으로 종합검사를 실시한 것은 2019년 지주사 설립 이후 처음이다. 금감원은 당시 기간을 연장하며 우리금융의 내부통제시스템을 두 달 넘게 들여다봤는데도 부실을 알아내지 못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종합검사는 기본적으로 건전성과 내부통제시스템 등을 점검하기 위한 것”이라며 “종합검사 때 부실을 적출하지 못한 점은 안타깝지만 개별계좌에 자금이 있고 없고를 일일이 대조해 확인하기에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도 이번 사태와 관련해 금융당국의 역할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회 정무위원회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우리은행 사태 이후 보도자료를 통해 “금융사고 예방을 위해 내부통제제도 강화가 시급하다”며 “감독당국 또한 금융권의 내부통제 실태를 점검해 제도보완 방안을 마련하고 금융사고 예방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은보 금감원장은 가뜩이나 새 정부 출범으로 거취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더욱 가시방석에 놓이게 됐다.
정 원장은 지난해 8월 금감원장에 올랐다. 우리은행 종합검사 시기에 금감원을 이끈 만큼 부실 감사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에 따라 우리은행 사태가 정 원장의 거취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나온다.
정 원장은 애초에 새 정부가 출범하면 교체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여겨졌다. 그동안 새 정권이 출범하면 금융정책을 이끄는 금융위원장과 금감원장은 어김없이 교체됐다. 문재인정부도 출범 직후인 2017년 7월과 8월 각각 새 금융위원장과 금감원장을 임명했다.
하지만 3월 대선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장기화, 미국의 급격한 긴축 등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확실성 등이 커지면서 정 원장이 자리를 지키며 금융시장의 변화에 대응해 나가는 안정성이 중요하다는 시선이 나오기 시작했다.
경기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금융위원장과 금감원장을 한 번에 모두 바꾸면 대응력이 떨어질 수 있는 만큼 새 정부가 안정성 측면에서 정 원장에게 금감원을 그대로 맡길 수 있다는 것이다.
정 원장이 기획재정부 출신 경제관료로 박근혜정부에서 승승장구한 점도 유임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여겨진다.
정 원장은 박근혜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경제1분과 전문위원으로 활동했고 이후 기획재정부 차관보,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이후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한동안 공직에서 떠났다가 2019년 외교부 한미방위비분담 협상대표를 지냈고 지난해 8월 금융감독원장에 올랐다.
정 원장이 금감원장에 취임한 지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은 점도 유임에 힘을 싣는다.
금감원장은 ‘금융위원회의 설치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3년 임기제로 운영되는데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금감원장은 4번이나 교체됐다. 리더십의 잦은 교체는 조직 안정성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정 원장이 취임 이후 금감원의 금융사 검사체계를 크게 개편한 점은 정 원장을 우리은행 사태 책임론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우리금융 종합검사는 사실상 금감원의 마지막 종합검사로 여겨진다.
정 원장은 금융사 검사체계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취임 직후인 지난해 9월 금감원 내에 ‘검사·제재개선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이후 직접 TF회의를 주재하는 등 4개월 동안 논의를 거쳐 올해 1월 기존의 종합검사를 없애고 새로운 정기검사와 수시검사로 개편하는 내용의 ‘검사·제재 혁신방안’을 내놨다.
정 원장은 이날 외국계 금융사 CEO 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우리은행 수시검사를 통해 내부통제제도에 어떤 허점이 있는지 중점 검사하겠다”며 “내부통제제도 개선도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새 정부가 출범한 뒤에도 정 원장의 거취가 결정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장은 금융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금융위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새 금감원장을 선임하기 위해서는 새 금융위원장이 먼저 결정돼야 하는데 윤석열정부 첫 금융위원장을 누가 맡을지는 여전히 윤곽조차 나오지 않고 있다.
윤석열정부는 현재 초대 내각 구성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어 정치권과 금융권에서는 금융위원장 인선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국회 정무위 의원실 한 관계자는 “금융위원장 후보자가 나오면 인사 청문회를 해야 하는 만큼 하마평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는데 아직까지 뚜렷한 인사가 잡히지 않고 있다”며 “6월 지방선거도 있는 만큼 새 금융위원장이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