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더불어민주당 대통령선거후보 경선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소환됐다.
2004년 탄핵을 둘러싼 진실게임이 벌어진 것인데 민주당 안에서 노 전 대통령의 상징적 의미가 여전히 매우 큰 만큼 당내 경선에서 파급력이 큰 변수가 될 수도 있다. 다만 17년 전 일을 꺼내든 만큼 퇴행적이라는 시선도 나온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23일에도 노무현 탄핵을 둘러싼 진실게임을 이어갔다. 날이 갈수록 거칠어지는 양상이다.
이낙연 전 대표 캠프의 상황본부장인 최인호 민주당 의원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
이재명 지사는 노 전 대통령을 소환해 네거티브를 할 자격이 없다”며 “
이낙연 대표는 노 전 대통령의 탄핵에 반대했다고 분명히 답변했다”고 적었다.
이 지사 측이 잇달아 이 전 대표를 놓고 2004년 국회에서 노 전 대통령 탄핵을 표결할 때 반대표를 던졌다는 데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전날에는 이 지사가 직접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는 22일 국회에서 기자들을 만나 “당시 사진을 보니 이 전 대표가 표결을 강행하려고 물리적 행사까지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최근에는 반대표를 던졌다고 하니 납득이 안 된다”고 말했다.
최 의원은 “이 지사가 만일 노 전 대통령을 충실히 지켜냈던 삶을 살았다면 당원과 국민이 최소한의 관심을 보일런지는 모르겠으나 이 지사는 정동영 지지모임 공동대표로 활동하며 오히려 노 전 대통령을 여러 차례 저격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 지사가 과거 정동영 전 의원을 지지하며 ‘노무현이 지지하는 후보라면 그가 누구라도 지지하지 않겠다’, '개헌이라는 절대 필수적 과제를 얘기해도 노 대통령이 하는 것이라면 싫다는 것이 국민적 정서다‘라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고 꺼냈다.
최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을 괴롭혔던 사람이 이제 와서 탄핵 참여 여부를 논란 삼는 것은 노 전 대통령을 다시 한번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고 비난했다.
17년 전 일어났던 일이 돌연 민주당 양강대결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친노‧친문 성향의 당원들은 경선 결과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민주당 안팎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느닷없는 소환은 친노‧친문 지지층을 둘러싼 각 대선주자의 구애 경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당내 대선주자들은 친노‧친문과 관계에서 각자 다른 색깔을 띠고 있다.
이 전 대표는 과거 계파색이 옅은 인물로 평가됐지만 문재인 정부 초대 국무총리를 지내며 친문의 지지를 얻기 시작했다. 지금도 이 전 대표는 친문 진영에서 폭 넓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반면 이 지사는 애초 친노‧친문과 거리가 먼 대표적 비주류 인사다.
다만 선두권 대선주자로 정치적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친노‧친문 다수도 이 지사를 야권 대선주자에 맞설 유력후보로 보고 지지 의사를 표시하기 시작했다. 이 지사를 선호하지 않더라도 본선 경쟁력 측면에서 전략투표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전 대표가 경선 과정에서 약진하며 보수야권 대선후보와 겨뤘을 때 승리할 수 있다는 신호가 명확해지면 친노‧친문의 지지가 이 전 대표에게 쏠릴 수 있다.
이미 이 전 대표는 지지도에서 이 지사를 맹추격하고 있는 데다 야권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양자대결에서도 승산이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일부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이 지사로서도 이 전 대표의 강점인 민주당 내 정통성을 희석시키기 위한 고리로 노 전 대통령을 소환할 이유가 있는 셈이다.
이 전 대표는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한 정치인이란 점을 내세우며 정통성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전 대표와 노 전 대통령의 관계는 다소 애매한 것도 사실이다.
이 지사 측의 지적대로 이 전 대표는 노 전 대통령과 다른 정당에서 활동했다. 유시민 노무현 전 대통령 쪽은 열린우리당이었고 이 전 대표는 탄핵을 앞장섰던 새천년민주당 소속이었다.
탄핵표결의 찬반 여부도 확실한 규명이 쉽지 않다. 당시 탄핵표결은 무기명 투표로 진행됐다.
이런 상황에서 양강주자 뿐 아니라 후발주자들도 노 전 대통령 얘기를 꺼내들며 돌파구를 찾고 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23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노 전 대통령 탄핵 찬반 공방과 관련해 “내가 마지막까지 노 전 대통령을 지키고 탄핵을 막기 위해 의장석을 지킨 사람”이라고 내세웠다.
김두관 민주당 의원은 23일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이 대표와 이 지사 모두에게 날을 세웠다. 김 의원은 “이 지사는 이 전 대표에게 ‘탄핵 찬성 아니냐’는 말을 할 위치에 있지 않다”며 “노무현을 버린 정동영을 선택한 이 지사의 선택은 익히 알려진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전 대표를 향해서도 “노무현의 적자라니. 서자도 되기 어렵다”며 “이 전 대표가 대구에서 태어났다면 과연 민주당을 했을까? 이 전 대표의 정치적 주장을 볼 때 항상 그런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정 전 총리와 김 의원은 노무현 정부에서 각각 산업자원부 장관과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냈다. 두 사람 모두 정통 친노 인사로 꼽힌다.
다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지금의 논란이 퇴행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선은 국민에게 미래 비전을 보여줘야 하는 무대인데 17년 전 일을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는 모습에 유권자들의 시선이 곱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비즈니스포스트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