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일 오후 서울시청에서 열린 '공시가격 현실화 공동논의를 위한 5개 시·도지사 협의회'에 참석한 국민의힘 소속 시·도지사들이 시작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 박형준 부산시장, 오세훈 서울시장, 이철우 경상북도지사, 권영진 대구시장. <연합뉴스> |
오세훈 서울시장이 공시지가 문제를 제기하면서 후보 시절 공약했던 재건축·재개발 규제완화에서 발을 빼면서 새로 부동산세금으로 초점을 이동하고 있다는 시선이 나온다.
19일 정치권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오 시장은 취임 이후 재건축단지를 중심으로 부동산 가격이 급등할 조짐을 보이자 스스로 공약했던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푸는 데 신중한 태도로 돌아섰다.
오 시장은 서울시장 후보 시절에 "취임하면 일주일 안에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 시장 당선 뒤 재건축 규제완화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서울 목동, 압구정동, 여의도동 등 재건축 아파트 호가가 2억~3억 원씩 일제히 뛰어올랐다.
부동산시장이 안정세를 찾아가다가 다시 불안해진다는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아파트값 상승으로 오 시장의 책임론이 불거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오 시장이 집값 상승에 불을 지를 수 있다는 지적이 곧바로 나왔다. 4·7재보궐선거에서 서울시민이 오 시장을 선택한 것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에 불만이 자리잡았던 만큼 부동산시장의 불안은 정치적 부메랑이 돌아올 수 있다.
오 시장은 곧장 진화에 나섰다. 그는 16일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주택 가격 안정화를 위한 예방책으로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등을 즉시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은 투기적 거래나 토지 가격의 급격한 상승 우려가 있는 곳의 땅 투기를 방지하기 위해 설정한다.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면 토지거래시 시·군·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등 사실상 실거래가 어려워진다.
오 시장이 규제를 풀겠다던 공약과 반대로 오히려 규제를 강화하려 하는 셈이다.
재건축·재개발 규제완화는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는 큰 혜택을 안겨줄 수 있다. 하지만 해당지역을 중심으로 아파트값이 급등해 시장 불안을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오 시장의 공약처럼 일시에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풀면 수만 가구가 한꺼번에 공사 기간 동안 살 집을 구해야 해 전세대란으로 이어진다.
특정 지역의 '민심'은 얻겠지만 대다수 서울 시민들의 원성을 살 수 있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재건축·재개발 규제완화가 오 시장의 애초 공약대로 '신속하게' 이뤄지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라는 시각이 많다.
게다가 국회와 시의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점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오 시장이 적극적으로 개발 규제를 완화하고 싶다고 해도 뜻을 온전히 관철하하기도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오 시장이 특정 지역에 혜택을 몰아주는 개발 규제완화보다 '시민 다수'의 부담을 낮춰줄 수 있는 부동산세금 완화 쪽에 초점을 맞출 것이란 시선이 나온다.
실제 오 시장은 부동산의 공시가격제도 개선을 정부에 요구하고 나섰다.
오 시장은 18일 서울시청에서
박형준 부산시장,
권영진 대구시장,
이철우 경북도지사,
원희룡 제주도지사 등 국민의힘 광역자치단체장들과 함께 ‘공시가격 현실화’ 간담회를 진행했다. 그는 간담회 뒤 “공동주택 가격조사와 산정보고서를 신속히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제공해 구체적 산정 근거를 알 수 있도록 해 달라”면서 공시가격제도 개선 건의문을 발표했다.
공시가격은 정부가 산정해 공시하는 가격으로 종합부동산세, 재산세 등 세제 부과와 건강보험료 책정 등의 기준이 된다.
정부는 그동안 공시지가 현실화 정책을 꾸준히 추진해 왔다. 실거래가와 공시가의 괴리를 좁혀 투기수요를 막겠다는 취지가 제일 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세금 부담이 커지는 소유주들의 '조세 저항'도 커질 수밖에 없다.
올해 전국 평균 공동주택 공시가격 상승률은 14년 만에 최대폭인 19.08%로 집계됐다. 지난해의 아파트값 상승이 상승률에 반영되면서 상승폭을 키웠다. 국토부는 4월5일 공시가격 이의신청 접수를 마감했는데 이의신청 건수도 역대 최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오 시장이 아파트 소유 시민들의 불만이 커진 공시가격 급등문제에 목소리를 내며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 등에 이를 전달하는 창구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와 여당도 공시가격 문제를 둘러싸고 고민이 깊은 것으로 전해졌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세금이 올라가는 것은 정치적으로도 큰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공시가격 상승 속도를 조절하는 등 여러 대책을 논의 중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19일 정부과천청사로 인사청문회 준비를 위해 출근하면서 공시가격 논란에 관한 기자들 질문에 “지자체와 소통을 통해 방법을 찾겠다”고 대답했다. [비즈니스포스트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