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지방선거에서 부산시장 재선
박형준은 2022년 6월1일 지방선거에서 부산시장 재선에 성공했다. 2021년 4·7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지 1년2개월여 만이다.
박형준은 2022년 7월1일 부산시청 대강당에서 시와 산하 공기업 직원 등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민선 8기 시장 취임식을 열고 공식 업무에 들어갔다.
박형준은 취임사에서 “부산을 싱가포르나 홍콩에 버금가는 글로벌 허브도시로 만들어야 한다”며 “혁신의 파동은 이제 멈출 수 없고 부산 곳곳에 혁신의 물결이 퍼지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다시 태어나도 살고 싶은 부산, 아시아 10대 행복도시를 만들자”며 돌봄·의료·보건·주거복지·안전관리 체계를 제대로 구축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 문화 콘텐츠 도시, 생활체육 천국 도시, 아시아 최대 창업 도시, 영어 상용 도시 등을 발전 비전으로 제시했다.
그는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의 부산시장 후보자 공모에 단독으로 신청했다. 2021년 보궐선거에서 62.67%라는 높은 지지율로 당선된 데다 시장에 취임한 지 불과 1년여 만이어서 공천을 받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됐다.
박형준은 국민의힘 부산시장 후보로 확정된 뒤 변성완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본선에서 겨루었다.
박형준은 변 후보와의 대결에서 줄곧 지지율 우위를 유지했고, 2021년 6월1일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66.36%의 최종 득표율로 압승했다. 변 후보의 득표율은 32.23%에 그쳤다.
박형준의 득표율은 2006년 4회 지방선거 때 한나라당 허남식 부산시장 당선인의 득표율 65.54%를 넘어 역대 최고 기록이었다.
박형준이 2021년 보궐선거 때와 달리 여당 간판을 달고 출마한 데다
윤석열 정부 출범 초기여서 국정 안정론이 우세한 가운데 현역 시장 프리미엄까지 누리면서 높은 지지를 받은 것으로 풀이됐다.
| ▲ 2022년 6월1일 박형준 국민의힘 부산시장 후보가 개표 도중 당선이 확실시되자 지지자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
△부산시장 활동
박형준은 2021년 4·7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다음날인 8일 당선증을 받고 바로 부산시장에 취임했다.
그는 당선증을 교부받으며 "앞으로 부산이 혁신의 길을 가고 삶의 질이 나아질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1년여의 짧은 임기를 지내며 2030년 부산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와 가덕도신공항 건설 등 굵직한 부산시 현안들을 챙겼다.
박형준은 2021년 5월10일 취임 한 달을 맞아 기자회견에서 경부선 철도 지하화의 정부 계획 미반영, 해수부의 북항 1단계 재개발 감사 등을 아쉬운 점으로 꼽고 "2030 부산엑스포 유치 등 대형 현안 추진에 우려도 제기되지만 가덕도신공항 건설과 함께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내년에 특별자치연합을 만들기로 하는 등 경남, 울산과 동남권 메가시티를 추진하는 데 큰 이견이 없는 상태”라며 “그 이전에도 물 문제 등과 관련한 협력사업을 발굴해 논의 중”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박형준의 공약사업 등 부산시의 주요 사업 예산이 부산시의회 예산심의에서 대폭 삭감되기도 했다.
부산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2021년 12월8일 부산시의 2022년도 예산안에 대한 계수조정을 마치고 수정안을 의결했는데 이 과정에서 15분 생활권 조성 정책공모 사업 예산은 132억5천만 원에서 절반이 깎였다.
15분 생활권 조성 사업은 15분 안에 일상 활동이 가능한 생활권을 만들겠다는 박형준의 핵심 공약사업이다.
박형준의 1호 공약인 도심형 초고속철도 ‘어반루프’ 설치에 대한 사전타당성 검토 용역비 예산도 절반이 깎여 5억 원으로 줄어들었다.
어반루프는 최고 속도가 시속 1290km에 이르는 하이퍼루프를 도심에 적용한 튜브형 철도를 말한다. 다만 기술이 아직 충분히 개발되지 않아 현실화하려면 적어도 10년 정도 소요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이 밖에 어린이 복합문화공간 조성 사업, 찾아가는 의료 서비스 사업, 지속 가능한 해상도시 추진 사업 등의 예산이 삭감됐다.
박형준은 2022년 4월1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2021년 4·7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뒤 켜켜이 쌓인 시정 주요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시민께 힘이 되는 시정을 펴겠다는 일념으로 촌각을 다퉈 일해왔다”며 “1년 동안 시정을 맡으며 부산을 글로벌 허브 도시이자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축 중심 도시로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강조했다.
△4·7 재보선에서 부산시장 당선
박형준은 2021년 4월7일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당선되어 정치적 재기에 성공했다.
2020년 4월 제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이 참패한 뒤 박형준의 정계복귀 전망은 어두웠다.
박형준은 정치권 밖에 머물며 방송활동을 재개했는데 2020년 7월
오거돈 부산시장이 성추문으로 사임함에 따라 부산시장 보궐선거가 치러지게 됐다.
박형준은 오 시장이 사임한 직후부터 부산시장 후보로 거명되기 시작했고 2020년 9월부터 보궐선거를 위한 조직을 꾸리는 등 선거 준비를 본격화했다.
박형준은 초반부터 다른 주자들보다 높은 지지율을 보이며 앞서나갔다.
당내 경선에서 무난하게 1위에 올라 부산시장 후보로 선출됐다. 경선 경쟁자들이 네거티브 공세를 가했지만 박형준 대세론은 꺾이지 않았다.
2021년 3월4일 국민의힘이 발표한 당내 경선 최종 결과를 보면 박형준은 54.40%의 득표율을 얻어 박성훈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28.63%)과 이언주 전 의원(21.54%)을 현격한 차이로 따돌렸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 부산시장 후보로 선출돼 박형준과 본선에서 겨루게 됐다.
박형준은
김영춘 후보와의 대결에서 줄곧 지지율 우위를 유지했다. 민주당이 가덕도 신공항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김 후보 지원에 적극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박형준에 대해 당내 경선 때 제기된 의혹 외에 추가로 여러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박형준의 지지율은 꺾이지 않았다.
2021년 4월7일 보궐선거에서 62.7%의 최종 득표율로 압승했다.
김영춘 후보의 득표율은 34.42%에 그쳤다.
△정계복귀와 제21대 총선 참패
박형준은 2020년 초 보수통합에 참여하며 정계에 복귀했다.
당시 제21대 총선을 앞두고 자유한국당과 새로운보수당을 비롯한 보수 정당과 시민단체들 사이에 힘을 합쳐야 한다는 공감대가 커지고 있었다.
2020년 1월9일 보수통합을 위한 기구로 ‘혁신통합추진위원회’ 구성이 합의됐고, 박형준이 이 기구의 위원장을 맡았다.
박형준은 혁신통합추진위원장 자격으로 2020년 1월21일 제주도청에서 원희룡 제주지사를 만나 당시 무소속이던 원 지사에게 보수통합 신당 참여를 요청했다. 원 지사는 이때 “숙고하겠다”고 대답했고 이후 보수 신당에 참여했다.
2020년 2월 혁신통합추진위와 자유한국당, 미래를향한전진2.0, 국민의소리당 등이 함께하는 통합신당준비위원회가 출범했고, 통합신당준비위에서 통합신당 이름이 미래통합당으로 결정됐다.
박형준은 제21대 총선에서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공천을 신청했다가 철회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박형준이 보수통합보다 국회의원 자리에 욕심을 내고 있다는 비판이 거셌기 때문이다.
그 뒤 박형준은 미래통합당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돼 선거운동을 지휘했다.
하지만 미래통합당은 총선에서 대패했고, 선거운동을 지휘한 박형준을 향해 책임론이 제기됐다. 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은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을 포함해 103석을 얻는 데 그쳤다. 더불어시민당을 포함해 180석을 확보한 더불어민주당에 크게 뒤졌다.
△야인생활과 국회 사무총장
박형준은 2020년 정계에 복귀하기 전 10년 동안 정치의 중심권에서 밀려나 있었다. 동아대 교수로 있으면서 방송 활동을 많이 했다.
2011년 대통령 사회특별보좌관에 발탁된 뒤 2012년 총선에 도전했지만 낙선했고 그 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약 1년8개월 동안 국회 사무총장을 지낸 것을 제외하면 줄곧 정치권 밖에 머물렀다.
친이계
정의화 의원이 2014년 제19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으로 선출된 뒤에 박형준을 국회 사무총장으로 발탁했다. 국회 사무총장은 장관급 고위직이긴 해도 주목을 받는 자리는 아니다. 국회의원에 당선되지 못한 전직 의원이 쉬어가는 자리로 여겨지기도 한다.
박형준은 정치권 밖에서 방송 활동을 하며 얼굴과 이름을 많이 알렸다.
2013년 SBS ‘최후의 권력’이란 다큐멘터리에 출연하며 방송 활동을 시작했다. 정봉주 전 의원, 차명진 전 의원, 천호선 전 정의당 대표, 손수조 전 새누리당 미래세대위원장, 정은혜 전 의원, 금태섭 전 의원 등이 이때 함께 출연했다.
박형준이 진가를 발휘한 분야는 시사와 토론이었다. 토론 능력이 뛰어나고 방송 흥행성도 있어 시사예능에 고정출연하기도 했다.
MBC ‘시사토크 이슈를 말한다’, JTBC ‘썰전’, KBS ‘정치합시다’, TV조선 '강적들' 등에서 차분하면서도 논리적으로 자기 의견을 전달하며 ‘합리적 보수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키웠다.
방송을 통해 인지도를 키운 것이 이후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당내 경선 때부터 줄곧 선두를 유지하는 데 바탕이 됐다.
△정치 입문 뒤 친이계 활동
박형준은 진보정당인 민중당에서 처음 정치활동을 시작했지만 보수진영에 가담한 뒤 친이명박계 핵심 인물로 자리잡았다.
대학교를 졸업한 뒤 1984년 중앙일보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1991년 동아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임용된 뒤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2021년까지 교수직을 유지했다.
교직과 별도로 정치 활동과 시민단체 활동도 이어갔다.
1990년 민중당 창당에 참여해 강령 기초 작업에 관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1991년에는 부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집행위원을 맡아 시민단체 활동을 했다.
민중당에 있으며 나중에 정치적 뜻을 같이하게 되는 이재오, 김문수 등과 교분을 쌓았다. 민중당 인사들이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를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민주자유당에 입당할 때 박형준도 이들과 동행했고, 이후 줄곧 보수진영에 머물렀다.
박형준은 1994년 김영삼 정부의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을 맡았고, 10년 뒤인 2004년 총선에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부산 수영구에 출마해 처음으로 국회의원이 됐다.
하지만 4년 뒤인 2008년 같은 선거구에 출마했지만 친박계인 유재중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다. 당시 유 후보는 친이계가 장악한 당에서 공천을 받지 못하자 탈당한 뒤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4년 뒤인 2012년에는 새누리당(한나라당 후신)의 주도권이 친박계에 넘어가 있었고 이번에는 처지가 바뀌어 유재중 의원이 공천을 받고 박형준은 공천을 받지 못했다. 무소속으로 출마한 박형준은 이때도 유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다.
총선에선 두 차례 낙선했으나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에서 대통령의 핵심 참모로 일했다. 홍보기획관, 정무수석비서관, 대통령 사회특별보좌관을 거치며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정권 실세로 떠올랐다.
하지만 친이계가 주도권을 상실한 뒤 입지가 급격히 축소됐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친이계가 힘을 잃었고, 박형준도 이때부터 약 10년 동안 야인생활을 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