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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
또다시 '이건희'다. 삼성전자의 위기 앞에서 결국 '이건희'를 바라본다.
9일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73살 생일이다. 만찬 행사장에는 '‘The greatest journey(가장 위대한 여정)’라는 대형 표어가 걸렸다. 그의 삶을 집약한 말이다. 이 회장은 이날 "위기의식 속에서 긴장의 끈을 놓지 말고 분발해 달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이 회장은 '위기'라는 말을 자주 써왔다. 좋을 때도 위기라고 했다. 이번에도 위기라고 말했다. 그 위기는 대단히 역설적이다. 삼성전자의 지난 4분기 영업이익은 8조3천억이다. 그런데도 위기라고 한다. 현재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위기이다. 스마트폰으로 쌓아올린 실적 그 다음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짜 '위기 의식'을 느끼고 있다.
이 회장은 다시 무엇을 내놓을까? 이 회장은 삼성에 ‘위기’라는 말이 따라붙을 때에는 어김없이 돌파구를 제시했다. 이번에는 삼성이 나아갈 방향으로 무엇을 제시할 것인가?
지난 2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삼성 신년하례식에서 이건희 회장은 이례적인 신년사를 던졌다. 이 회장은 신년사에서 "다시 한 번 바뀌어야 한다. 5년 전, 10년 전 비즈니스 모델과 전략, 하드웨어적인 프로세스와 문화는 과감히 버리자"고 말했다.
그는 또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불확실성 속에서 변화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시장과 기술의 한계를 돌파해야 한다”며 “핵심 사업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경쟁력을 확보하는 한편, 산업과 기술의 융합화·복합화에 눈을 돌려 신사업을 개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핵심은 ‘이건희 체제의 삼성’을 뛰어넘으라는 것이었다. 자신이 5년 전, 10년 전 제시했던 모델과 전략을 부정하면서까지 그는 과감한 변화를 요구했다. 앞서 지난해 10월 ‘신경영 선언’ 20주년 기념 만찬자리에서도 이 회장은 “실패가 두렵지 않은 도전과 혁신, 자율과 창의가 살아 숨쉬는 창조경영을 완성해야 한다”며 ‘혁신’과 ‘창조’에 방점을 찍었다.
1993년 ‘신경영 선언’ 때 그는 "마누라와 자식 빼고 모두 바꾸자"고 했다. 이 말은 ‘이병철 창업주의 삼성’과의 안녕을 고하는 강도높은 변화를 요구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20년 정도 세월에 걸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이건희의 삼성'을 만들어 냈다. 그런데 이제는 ‘이건희의 삼성’을 부정할 정도의 변화를 다시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어찌 보면 철저한 자기부정이 필요할 정도로 현 상황에 대한 이 회장의 위기의식이 깊다고도 볼 수 있다.
삼성은 이 신년사 전문을 7년 만에 공개했다. 이 회장이 삼성의 현 상황에 대해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신년사에 담긴 방향을 향해 착실하게 나아갈 준비가 되어있음을 대내외에 알리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건희의 삼성'을 철저히 부정할 정도로 과감한 변화는 실행하기 쉽지 않은 방향의 제시이다. 스티브 잡스 사후 애플이 이를 보여준다. 스티브 잡스의 유산을 좀체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맥컴퓨터 등은 '진화'하고 있지만, 스티브 잡스의 그것처럼 '혁신적'이지 않다는 평가다. 하물며 '이건희'라는 큰산이 버티고 있는 삼성에서 '이건희의 삼성'을 뛰어넘는 변화가 그렇게 쉽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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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전자의 위기를 놓고 이건희 회장에게 가는 길을 또 묻게 된다. |
그렇지만 삼성전자의 과제는 분명하다. 주력인 스마트폰 사업이 아니라 새로운 성장 핵심동력을 찾아야 한다. "신사업을 개척하라'는 이 회장의 신년사 주문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해 3분기를 기준으로 삼성전자 영업이익 가운데 스마트폰을 담당하는 IM 부문(정보통신·모바일)이 차지하는 비중은 65.9%에 달한다. 그런 만큼 스마트폰 사업이 흔들리면 삼성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그 우려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과 중국 제조사들의 반격이 거세다.
애플은 지난달 중국 최대 이동통신사인 차이나모바일과 신형 아이폰을 다년간 공급하는 체결했다. 또한 중국인이 선호하는 빨간색 등 5가지 색상의 아이폰5C를 선보이며 세계 최대 스마트폰 시장인 중국 시장 공략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중국 제조사들은 더 위협적이다. 화웨이, 레노버 등의 중국 현지 업체들은 삼성의 스마트폰 사양과 유사한 품질의 저가 스마트폰을 쏟아내며 시장 점유율을 급격히 늘리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지난 3분기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화웨이와 레노버, 쿨패드, ZTE 4개 업체의 점유율 합계는 18.9%로 집계됐다. 특히 이 기간 화웨이와 레노버는 각각 2위와 3위로 치고 올라오는 등 깜짝 놀랄 만한 결과를 보여줬다.
이 회장은 신사업의 방향도 직접 제시했다. 신년사를 통해 핵심 사업에서의 경쟁력 확보 뿐만 아니라 산업과 기술의 융합화·복합화를 통한 신사업 개척을 주문한 것이다. “불황기일수록 기회는 많다. 남보다 높은 곳에서 더 멀리 보고 새로운 기술,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내자”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삼성전자가 웨어러블(wearable·몸에 장착할 수 있는) 기기, 의료기기 등 스마트폰 기술을 확장시킨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것도 '융합화 복합화' 의지를 반영한 방향설정으로 보인다.
물론 그 중심에는 변함없이 '인재'가 자리잡고 있다. 노키아나 모토로라 등 한 때 휴대폰 시장 최강자 자리를 지키던 기업들이 혁신적인 기술을 선보이지 못하고 한 순간에 무너진 것도 이 회장에게는 더 큰 의미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런 만큼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이 회장의 목소리도 더욱 커졌다.
그는 신년사에서 “특히 연구개발센터는 24시간 멈추지 않는 두뇌로 만들어야 한다”며 “인재를 키우고 도전과 창조의 문화를 가꾸는데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 역시 최근 들어 미국 실리콘벨리에 연구센터를 설립하고 해외 인재를 모으는 등 이 회장이 강조한 ‘두뇌’ 만들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