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희 기자 JaeheeShin@businesspost.co.kr2024-10-17 16:40:55
확대축소
공유하기
▲ 두산그룹 사업재편이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두산그룹이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 합병 등 사업구조 개편 의지를 놓지 않고 있는 가운데 그룹의 재무를 책임지고 있는 김민철 두산 대표이사 사장이 외부의 거센 비판을 누그러뜨릴 합병비율 산정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앞서 회사는 알짜 회사인 두산밥캣의 가치를 저평가하고 적자기업인 두산로보틱스 주가가 고평가된 시점에 두 회사 간 합병비율을 산정했다.
이에 따라 두산밥캣의 모회사인 두산에너빌리티 일반 주주들의 이익이 침해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자, 두산그룹은 사업구조 개편안을 손질하기 위해 한발 물러선 상태다.
17일 두산그룹 안팎 취재를 종합하면 그룹 사업구조 개편과 관련한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의 임시 주주총회는 변경된 주주 확정 기준일인 10월10일부터 3개월 내 개최되어야 하지만, 아직 두 회사의 임시주총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다.
두산그룹은 지난달 10일 사업구조 개편안과 관련해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 간 ‘인적분할 및 합병’ 추진을 일시 중단키로 했다. 이후 한 달이 넘게 지난 현재까지도 두산그룹의 양사 합병 방안은 윤곽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 김민철 두산 대표이사 사장이 두산그룹 사업구조 개편을 성사시키기 위한 '두산밥캣-두산로보틱스' 합병비율 산정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두산>
금융당국, 정치권, 주주 등 외부의 거센 반발에 두 회사 합병 셈법이 복잡해졌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소형 건설기계 제조·판매사인 두산밥캣을 두산에너빌리티로부터 떼어내 협동로봇 제조사 두산로보틱스의 자회사로 합병하는 것이 그룹이 지난 7월 발표한 사업구조 개편안의 핵심이다. 당초 두 회사 간 포괄적 주식교환을 통한 합병안을 발표했지만, 주주들의 거센 반발에 지난 8월 이를 철회하고, 두산에너빌리티를 사업부문과 두산밥캣 지분 46%를 보유한 투자부문으로 분할한 뒤 투자부문을 두산로보틱스에 합병하는 방안을 새로 내놨다.
구체적으로는 대주주 두산에너빌리티가 분할비율 1:0.2474030로 인적 분할해 밥캣 지분 46%를 보유한 투자회사를 신설한다. 이후 두산로보틱스가 합병비율 1:0.1275856로 투자회사를 흡수 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를 두고 시장에서 개편안이 일반 주주 이익을 침해한다는 지적이 빗발쳤다. 합병비율 산정시 ‘알짜회사’ 두산밥캣의 가치를 저평가하고 ‘적자회사’ 두산로보틱스의 가치를 고평가하는 기준을 적용했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지난 8월26일 투자회사의 수익가치 산정 시 현금흐름할인법, 배당할인법 등 여러 모형을 활용해 기존 값과 비교하라며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구했다.
결국 요구한 기준을 적용했을 때 일반 주주에 더 유리한 합병비율이 도출되도록 하라는 압박인 셈이다.
대신증권은 지난달 10일 보고서를 통해 두산밥캣 인적분할 시 분할비율을 0.89:0.11 수준으로 변경하고, 흡수합병 시 두산밥캣 지분 46.1%에 대해 최소 5.4%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합병비율이 바뀌면 두산로보틱스가 합병에서 더 많은 신주를 발행해야 하기 때문에 지주사인 두산의 두산로보틱스 지분율이 더 낮아지게 된다. 기존 두산 합병안에 따르면 양사 합병 시 지주사의 로보틱스 지분은 68%에서 59%로 낮아진다. 합병 비율을 일반 주주에 더 유리하게 변경하면 두산의 로보틱스 지분율은 이보다 더 떨어진다.
이것이 두산그룹이 아직 사업구조 개편안을 명확하게 밝히지 못하는 고민 거리인 것으로 보인다.
두산로보틱스 주가가 하락 국면에 있다는 점도 김 사장이 금감원 정정안 마련을 복잡하게 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주가가 하락하면 로보틱스 주주들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해 합병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두산로보틱스 주가는 지배구조 개편 발표일인 7월10일 8만 원에서 10월17일 현재 6만2천 원으로 22.5% 하락했다. 현 주가 수준이 유지된다면 8만472원으로 제시된 두산로보틱스 주식매수청구권 가격보다 훨씬 낮기 때문에 주주들이 청구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에 따라 총 청구권 규모가 5천억 원이 넘어서면 합병이 무산된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현재 다각도로 사업구조 개편안 정정을 검토 중”며 “구체적인 것은 확정되야 알려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두산그룹의 사업구조 개편은 김민철 두산 대표이사 사장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경기 성남 두산 사옥 전경. <두산>
두산그룹은 사업구조 개편을 통해 분야별로 계열사의 지배구조를 단순화하고, 두산에너빌리티의 재무구조 개선,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 간 사업 시너지를 기대하고 있지만 뜻대로 추진되지 않고 있다.
김 사장은 1964년생으로 서강대 경영학을 전공했다. 1989년 두산에 입사해 경영전략과 재무 등 직무를 거쳐 2018년부터 두산 대표이사이자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맡아왔다.
그는 지주사 대표이사를 맡으며 계열사 매각과 상장, 재무구조 개선 등을 추진해 두산그룹이 유동성 위기를 넘기고 채권단 관리체제 조기졸업에 기여한 그룹 재무통이다.
두산은 올해 정기 주주총회에서 그를 사내이사로 재선임하면서 계속해 그룹 CFO라는 중책을 맡겼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의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는 그가 이번 최초 사업구조 개편안을 마련했다는 게 재계 전언이다.
한편 김 사장은 17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그룹 사업구조 개편과 관련한 질의를 받을 예정이었지만, 정무위가 국감 당일 증인 채택을 철회했다. 신재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