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오른쪽)과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7일 회동을 마치고 나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한 뒤 각자 자리에서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제21대 국회에서 연금개혁안 처리가 무산될 가능성이 짙어졌다.
제22대 국회로 연금개혁 논의가 넘어가면 연금개혁특별위원회 구성 등 연금개혁 논의를 위한 틀을 만드는 작업부터 다시 반복해야 한다. 연금개혁 골든타임이 지나가는데 시간을 낭비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7일 김진표 국회의장 주재로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만나 국민연금 개혁안 처리 등 국회 현안을 논의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추 원내대표는 이날 회동을 마친 뒤 “연금개혁안 관련해 이번 국회 내 처리는 어렵다는 점을 다시 말씀드렸다”고 말했다.
제21대 국회가 29일로 임기 만료되는 상황인 만큼 이번 협의 결렬로 사실상 이번 국회 내 연금개혁안 처리는 무산된 것으로 여겨진다.
연금개혁안은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통과 등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연금특위 위원장은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이다. 국민의힘이 개혁에 반대한다면 다수당일지라도 더불어민주당만으로는 본회의 처리가 어렵다.
연금개혁은 보험요율과 소득대체율 등 재정변수를 조정하는 모수개혁과 연금제도의 틀 자체를 바꾸눈 구조개혁으로 나눌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 중 모수개혁이라도 21대 국회에서 마무리하자고 주장한다. 이미 여야 사이 의견 차이가 좁혀졌기 때문이다.
여야가 주장하는 보험료율은 13%로 같았고 소득대체율을 놓고는 더불어민주당이 45%, 국민의힘이 43%로 다소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여당 내에서 절충안으로 제시된 소득대체율 44%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수용하겠다는 뜻을 이미 밝혔다.
연금개혁 자체가 간단한 작업이 아닌 만큼 일단 모수개혁이라도 하자는 목소리는 힘을 받고 있다. 현재 논의되는 안에 따르더라도 9년은 연금기금 고갈을 늦출 수 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27일 성명을 내고 “지금까지 구조개혁 논의가 진전되지 않은 책임은 연금개혁을 국정과제로 약속했음에도 취임 직후 국회에 책임을 넘긴 정부와, 국회 논의 과정에서도 책임을 방기한 집권 여당에 있다”며 “여야가 합의에 이른 국민연금 모수조정안을 제21대 국회에서 처리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심지어 여당 내에서도 모수개혁은 신속하게 추진해야 하지 않냐는 주장이 고개를 들었다.
나경원 국민의힘 국회의원 당선인은 27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에서 “사실상 모수개혁이라도 먼저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많은 것 같다”며 “처음에 굉장히 부정적이었는데 첫 단추라도 꿰어야 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도 이날 YTN라디오에 출연해 “모수개혁에 합의만 하는 것도 대단히 긍정적인 평가”라며 “시기적으로 정략적 의도가 있는 것으로 읽히니 다음 국회 시작하자마자 첫 번째 본회의 때 연금특위 구성하고 모수개혁안을 가장 먼저 통과시키자”고 말했다.
다만 국민의힘 지도부는 모수개혁만 하면 연금개혁의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며 개혁을 할 때 구조개혁까지 제대로 해야 한다는 태도를 지키고 있다.
추 원내대표는 26일 “급조한 수치 조정만 끝나면 연금개혁 동력이 떨어질 것”이라며 “정쟁과 시간에 쫓긴 어설픈 개혁보다 제22대 국회 첫 번째 정기국회에서 (연금개혁을) 최우선으로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황우여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역시 27일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모수개혁으로 일단락하고 다시 구조개혁을 하면 모순과 충돌이 생기고 세대간 갈등이 우려된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두 개혁을 한 뭉텅이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제22대 국회로 연금개혁이 넘어가면 연금개혁 논의는 사실상 처음부터 다시 반복되면서 지연될 공산이 크다.
우선 새 국회가 원구성을 하면서 특별위원회 구성도 논의해야 한다. 국회 내 다른 법정위원회와 달리 연금특위 등 특별위원회는 여야 합의로 구성 여부가 결정된다.
추 원내대표가 다음 국회에서 연금개혁을 최우선으로 추진하겠다고 발언한 만큼 다음 국회에서도 연금특위는 구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원 구성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절차다. 제22대 국회의 원 구성 기한은 6월7일까지지만 이날 원내대표 회동에서 원 구성을 놓고도 합의를 보지 못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에도 기한은 넘길 가능성이 상당하다.
이미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등 자리를 놓고 여야가 갈등을 보이는 상황이다. 제21대 국회 후반기 때는 원 구성에만 53일이 걸렸다.
2022년 7월에 제22대 국회 하반기 원 구성 당시에는 여야가 국민의힘 7곳, 민주당 11곳으로 위원장을 나누기로 하면서 국민의힘에 연금특위 위원장을 배분했다.
원 구성을 앞둔 시기에 모수개혁 여부를 놓고 여야가 갈등을 벌이는 상황인 만큼 다음 연금특위 위원장을 놓고는 원만하게 협의가 진행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연금특위가 구성돼도 하위 위원회 구성 등 절차를 다시 진행하다 보면 2025년에 재보궐선거, 2026년에 지방선거, 2027년에 대통령선거 등 정치 일정과 맞물릴 수밖에 없다. 연금개혁이 결국에는 다시 늘어질 위험이 반복될 여지가 많다.
이 때문에 구조개혁을 명분으로 연금개혁을 22대 국회로 넘기려는 움직임을 질타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도 나온다.
300여 개 시민단체가 참여한 공적연금강화국민운동은 26일 기자회견에서 정부여당이 구조개혁을 핑계삼아 연금개혁을 미루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모수개혁조차 미루면서 더 어려운 구조개혁을 구실로 삼는 것은 사실상 개혁하지 말자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