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도 석유화학 산업은 호황과 불황이 주기적으로 이어지는 성격이 강한 업종으로 꼽혀왔다. 하지만 이전까지 석유화학 제품의 최대 시장이었던 중국이 석유화학 생산시설을 확대해 자급력을 갖춘 최근에는 세계 과잉공급을 주도하며, 구조적으로 업황이 악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따라 국내 석유화학 업체들은 2차전지, 신재생에너지 관련 화학 소재 분야로 사업을 다변화하며, 전통 석유화학사업 비중을 줄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롯데케미칼은 이같은 사업 다변화에 다소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나프타분해시설을 가동하는 또 다른 경쟁사 LG화학만 해도 배터리(LG에너지솔루션)와 배터리 소재, 바이오 등으로 사업을 넓히며 기초유화 사업비중을 줄였다. 하지만 롯데케미칼은 여전히 기초유화 비중이 높은 탓에 업황 악화 영향을 고스란히 맞고 있다.
LG화학은 롯데케미칼이 적자를 봤던 2022~2023년 내내 흑자 기조를 유지했다.
이 때문에 지난해 12월 롯데케미칼과 롯데 화학군 사령탑을 맡은 이훈기 사장으로서도 전통 석유화학사업에 치우친 사업구조를 개편하는 일이 급선무로 떠올랐다.
이 사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사업 포트폴리오 고도화를 통해 육성 및 강화할 사업 중심으로 전략 방향을 재정립하고, 기존 석유화학 사업의 운영 효율화를 통한 수익성을 개선해야 한다”며 사업구조 개편 의지를 강조하기도 했다.
▲ 롯데케미칼 울산공장. <롯데케미칼>
그는 “고부가 스페셜티, 그린(친환경) 소재 등 신사업 비중을 높이고, 전지(배터리)소재·수소에너지 사업의 시의적절한 투자와 실행력 강화, 추가 미래사업 발굴 등을 추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통 석유화학 비중을 줄여 신사업을 키운다는 방침에 따라 기존 생산 자산을 매각하는 방안도 다방면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투자금융(IB)업계에 따르면 롯데케미칼의 매각 검토 대상에는 한동안 현금 창출원 역할을 톡톡히 해던 말레이시아 법인 롯데케미칼(LC)타이탄이 포함돼 있다.
롯데케미칼타이탄은 호남석유(현 롯데케미칼)가 2010년 1조5천억 원에 인수한 곳으로, 당시 해외사업담당 임원이었던 이 사장이 인수에 참여하기도 했다. 롯데케미칼타이탄은 매년 수천억 원씩 수익을 내며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지만, 지난해에는 영업손실 612억 원을 내며 적자로 돌아섰다.
롯데케미칼은 또 국내 경쟁사인 LG화학과 석유화학사업 일부를 통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나프타분해시설을 지역별로 통합하거나 합작사를 설립해 운영해 적자를 줄여보자는 차원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해 회사 측은 “현재까지 검토한 게 없다”며 부인했다.
이 사장은 롯데그룹에서 기획·전략통으로 신사업 발굴과 안착에도 전문성을 지닌 인물로 꼽힌다. 그룹의 굵직한 인수합병, 신사업 개척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롯데그룹이 이 사장을 롯데케미칼과 롯데 화학군의 지휘봉을 맡긴 배경에는 그가 석유화학 사업의 구조를 신사업 중심으로 개편할 적임자라는 판단이 깔려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동욱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석유화학 업체들이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 친환경 화학소재(그린 케미칼) 전환을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자본효율성을 높이지 않는다면 향후 업체 사이 가치평가가 명백히 갈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