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13일 울산 북구에 위치한 울산공장 내 전기차(EV) 신공장 부지에서 열린 울산 EV 전용공장 기공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현대차> |
[비즈니스포스트] 글로벌 주요 완성차업체들이 전기차 수요 둔화 조짐에 투자속도 조절에 나서고 있다.
반면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기존에 잡아 둔 전기차 관련 투자를 그대로 밀어붙이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런 정 회장의 뚝심이 현대차그룹이 세운 전기차 판매 톱3 달성 시점을 앞당길 수 있을지 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14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올해 계획됐던 전기차 관련 투자를 연기 없이 계획 대로 진행하고 있다.
연간 20만 대의 전기차를 생산할 수 있는 울산 전기차 전용공장을 짓기 시작했고 기아는 경기도 화성에 연산 15만 대 규모의 고객 맞춤형 전기차 전용공장을 건설 중이다.
미국에서는 연산 30만 대 규모의 조지아주 전기차 전용공장(HMGMA)이 내년 하반기 가동을 목표로 지어지고 있다.
이와 함께 현대차그룹은 미국 현지 배터리 공급망 확보와 관련해 올해 4월에 SK온과, 5월엔 LG에너지솔루션과 북미 배터리셀 합작 공장을 건설하기로 했다.
합작공장에서 생산된 배터리셀은 현대모비스가 배터리팩으로 제작해 HMGMA, 현대차 앨라배마공장, 기아 조지아 공장 등 현대차 미국 현지 공장에서 생산하는 전기차에 전량 공급된다.
정 회장은 지난 13일 울산 전기차 공장 기공식 행사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글로벌 전기차 수요가 줄어드는 가운데도 공격적 투자를 유지하는 이유에 관한 질문에 "기존에 해왔던 투자고 코스트(비용) 절감이나 이런 여러가지 방법도 있겠지만 큰 틀에서 어차피 전기차 수요는 계속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운영을 묘를 살려서 해 볼 생각"이라고 대답했다.
글로벌 전기차 수요와 관련한 일시적 이슈보다 장기적 전기차 수요 확대에 대한 확신을 갖고 계획된 투자를 그대로 진행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이렇듯 정 회장이 전기차 투자와 관련해 뚝심을 보일 수 있는 데는 현대차그룹이 올해 들어 역대급 실적을 기록하며 이익체력을 단단히 하고 있는 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된다.
현대차와 기아는 올해 3분기 연결기준으로 합산 영업이익 20조 7945억 원을 거두며 두 회사의 기존 합산 연간 최대 영업이익인 2022년 17조529억 원을 올해 단 3개 분기 만에 넘어섰다.
현대차와 기아는 글로벌 주요 시장에서 판매 호조를 바탕으로 SUV(스포츠유틸리티 차량) 등 고부가가치 차종 중심으로 판매조합(믹스)을 개선한 데 힘입어 수익성을 크게 개선했다.
특히 현대차와 기아는 글로벌 선진 자동차 시장인 미국에서 3분기 43만302대를 팔아 역대 3분기 최다 판매 실적 기록을 새로 썼다. 현대차와 기아 각각으로도 3분기 사상 최다 판매 기록이다.
이와 달리 미국 GM은 3분기 양호한 실적을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에 세웠던 전기차 생산 및 투자 계획을 연기했다.
GM의 3분기 조정 주당 순이익(EPS)은 2.28달러로 기존 월가 예상치를 1.88달러 크게 웃돌았다.
하지만 CNBC등 미국 현지 언론에 따르면 GM은 지난달 2024년 중반까지 북미에서 전기차 40만 대를 판매하고 올해 하반기 전기차 10만 대를 생산한다는 단기 목표를 철회했다. 지난해부터 혼다와 함께 추진한 50억 달러(약 6조6천억 원) 규모의 보급형 소형 전기차 공동 개발 계획도 전면 취소했다.
이에 앞서 GM은 미시간주에 있는 전기트럭 공장 가동 시점도 최소 1년 연기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현재 쉐보레 이쿼녹스 EV, 실버라도와 GMC 시에라 드날리 EV 등 GM의 전기차 생산도 기존 목표보다 수개월가량 늦춰지고 있는 상황이다.
GM, 스텔란티스와 함께 미국 '빅3' 완성차업체로 꼽히는 포드는 3분기 12억 달러(약 1조6천억 원)의 순이익을 거뒀으나 EV(전기차) 사업부만 따로 놓고 보면 13억 달러의 손실을 봤다. 포드는 글로벌 완성차업체 가운데 유일하게 전기차 사업부 실적을 따로 공개하고 있다.
이에 포드는 치열해지는 전기차 가격 경쟁과 전기차 수요가 축소될 조짐을 보임에 따라 전체 전기차 투자규모 150억 달러(약 20조 원) 가운데 120억 달러(약 16조 원)의 전기차 투자액 지출을 연기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SK온과 합작해 2026년 가동하기로 한 켄터키주 배터리2공장 가동 시점도 연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독일 폭스바겐그룹 역시 최근 동유럽에서 추진해 온 네번째 배터리 생산공장 설립 계획을 무기한 연기했다. 이를 놓고 올리버 블루메 폭스바겐그룹 최고경영자(CEO)는 유럽 전기차 시장의 부진한 성장세를 고려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폭스바겐그룹은 독일 볼프스부르크 바르메나우 공장 설립 계획도 취소했다. 지난해 3월 폭스바겐그룹은 이 공장에서 20억 유로를 투입해 2026년부터 차세대 전기차를 생산할 계획을 내놓은 바 있다. 폭스바겐그룹은 그대신 볼프스부르크에 있던 기존 공장을 증설할 계획을 세웠다.
▲ 현대차 울산 전기차 전용공장 조감도. <현대차> |
정 회장은 2030년까지 글로벌 시장에서 연간 전기차 364만 대를 생산해 글로벌 전기차 판매 톱3에 오르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현대차의 지난해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 37만여 대의 10배에 이르는 공격적 목표다.
SNE리서치 집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지난해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 순위에서 7위에 올랐다. 내수 중심인 중국업체를 제외하면 4위에 해당한다. 같은 기간 중국업체를 제외한 판매량에서는 테슬라가 1위(약 131만 대), 폭스바겐그룹이 2위(57만여 대)에 올랐다.
다른 대부분의 글로벌 완성차업체 역시 2030년을 중기 목표로 삼고 생산 및 판매 계획을 세워뒀다.
이를 살펴보면 지난해 글로벌 자동차 판매량 1위에 오른 일본 토요타그룹은 2030년 전기차 350만 대를 판매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다만 토요타그룹은 그동안 하이브리드차 중심의 전동화 전략을 펼쳐 전기차 목표 달성의 가시성이 낮다는 평가를 많이 받는다.
2030년 포드와 중국 BYD는 300만 대, 혼다는 200만 대를 생산·판매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폭스바겐그룹과 GM은 2030년 전기차 생산 및 판매 목표의 구체적 숫자를 제시하지 않았지지만 폭스바겐그룹은 2030년까지 신차 판매의 절반을 전기차로 채우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지난해 글로벌 판매량 830만 대를 기준으로 해도 400만 대를 넘어선다.
GM은 2035년 100% 전기차만 생산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지난해 GM의 글로벌 판매량은 약 594만 대였다.
하지만 이들 완성차업체들이 올해 들어 전기차 투자 속도 조절에 들어가면서 2030년 전기차 판매 목표에 차질이 생길 공산이 커졌다.
정 회장 뚝심이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전기차 톱3 달성 시점을 앞당길 수 있을지 주목된다.
현대차는 지난달 콘퍼런스콜을 통해 전기차 생산 등을 전략적으로 줄일 계획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서강현 현대차 기획재경본부장 부사장은 "지금 잠깐의 허들이 있더라도 기본적으로 EV 쪽으로 확대되고 우상향 곡선으로 EV는 성장해 나갈 것이기 때문에 당장의 허들 때문에 보수적으로 전기차를 우선적으로 생산 기회를 늦추거나 개발을 늦추는 것은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