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롯데제과 최고경영자(CEO)에 외부 출신의 새 인물을 선임한 배경을 놓고 다양한 의견이 나온다.
우선 LG생활건강에서 ‘포스트 차석용’으로 불렸던 이창엽 롯데제과 새 대표이사 내정자를 통해 글로벌 진출에 고삐를 당기겠다는 의미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 이영구 롯데그룹 식품군HQ 총괄대표 겸 롯데제과 대표이사 사장이 롯데제과 경영에서 짐을 덜고 식품 계열사 시너지에 좀더 주력하게 됐다. |
동시에 식품군HQ 총괄대표와 롯데제과 대표이사를 겸임하던
이영구 사장의 짐을 일부 덜어줬다는 분석도 있다.
이 사장이 식품군HQ 총괄대표로 롯데제과와 롯데칠성음료, 롯데지알에스 등 식품 계열사들의 시너지 전략을 더욱 촘촘하게 세울 수 있도록 배려했다는 것이다.
20일 롯데지주와 롯데제과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롯데제과가 내년에 2인 공동대표 체제를 유지할지, 3인 공동대표 체제로 갈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앞서 롯데그룹이 실시한 정기 임원인사에서 롯데제과의 새 대표이사에 LG생활건강 출신 이창엽 부사장이 내정됐다. 이 대표는 19일부터 회사에 출근했는데 내년 3월에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를 통해 롯데제과 대표이사에 공식적으로 오른다.
이 대표 선임 소식은 롯데제과 사내이사진이 변화한다는 의미로 읽혔다.
롯데제과 현재
신동빈 회장과
이영구 사장의 2인 공동대표이사 체제로 구성돼 있다. 이창엽 대표가 새 수장에 내정되면서
이영구 사장이 자연스럽게 대표이사에서 내려오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롯데그룹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영구 사장이 롯데제과 대표이사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신동빈·
이영구·이창엽 3명의 공동대표이사 체제로 꾸려질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다시 말하면
이영구 사장은 기존과 동일하게 식품군HQ 총괄대표 겸 롯데제과 대표이사라는 직함을 그대로 유지하게 된다.
다만 롯데그룹은
이영구 사장의 역할이 기능적으로 바뀐다고 설명한다.
이영구 사장은 여태껏 롯데제과를 실질적으로 이끄는 최고경영자였다. 하지만 이번에 외부 출신 인재인 이창엽 대표가 선임되면서 롯데제과 경영 실무에서는 사실상 손을 떼게 됐다는 것이 롯데그룹의 설명이다.
식품군HQ 총괄대표라는 직책의 상징성 때문에 롯데제과 대표이사직은 유지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식품군HQ 총괄대표 일에만 매진하고 롯데제과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롯데그룹의 말을 들어보면 이미 다른 주요 사업군 총괄대표들은 모두 이런 방식으로 사업군 전략을 짜는 데 집중하고 있다.
김상현 롯데그룹 유통군HQ 총괄대표 부회장은 현재 롯데쇼핑 대표이사도 겸임하고 있다.
하지만 롯데쇼핑은
정준호 백화점사업부장(롯데백화점 대표),
강성현 할인점사업부장·슈퍼사업부장(롯데마트·롯데슈퍼 대표),
나영호 이커머스사업부장(롯데온 대표) 등 각 사업부 수장이 책임경영을 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김교현 화학군HQ 총괄대표 부회장도 마찬가지다.
김 부회장은 현재 롯데케미칼의 대표이사도 겸임하고 있지만 실질적 경영은 이영준 롯데케미칼 첨단소재사업 대표와 황진구 기초소재사업 대표에게 일임하고 있다는 것이 롯데그룹의 설명이다.
이 설명을 들어보면
신동빈 회장이 롯데제과의 새 대표로 이창엽 대표를 선임한 것은
이영구 식품군HQ 총괄대표 사장의 역할을 덜어주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식품군HQ는 롯데제과뿐 아니라 롯데칠성음료, 롯데지알에스(롯데리아, 엔제리너스 운영사) 등 주요 식품 계열사의 시너지를 함께 살펴봐야 하는 자리다.
하지만 그동안
이영구 사장이 롯데제과 경영을 실질적으로 도맡았기 때문에 식품군HQ 총괄대표로서 고민할 시간은 결코 많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된다. 롯데제과와 롯데푸드의 합병을 끌어낸 것이
이영구 사장이 식품군HQ 총괄대표로서 보여준 업적 가운데 대표적인 사례다.
신동빈 회장의 결정으로 이 사장이 롯데제과에 경영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 만큼 앞으로 식품군HQ 총괄대표로서 본연의 임무에 더욱 집중할 환경이 마련됐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영구 사장으로서는 이런 결정이 더욱 무거운 짐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롯데제과 경영에서 손을 떼게 해줬으니 앞으로 식품 계열사의 시너지 전략을 더욱 세밀하게 짜내야 한다는 일종의 압박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신 회장의 결정에는 롯데제과를 글로벌 종합식품기업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도 담긴 것으로 보인다.
▲ 이창엽 롯데제과 새 대표이사 내정자는 외부 출신으로 글로벌 진출이 막중한 책임을 안게 됐다. |
신 회장이 이번 인사를 서둘러 마무리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롯데제과 때문이었다는 얘기가 롯데그룹 안팎에서 나온다. 여러 명의 대표이사 후보군을 놓고 끝까지 고민했던 계열사가 롯데제과였다는 것이다.
신 회장이 최종적으로 선택한 인물은 바로 LG생활건강에서 사업본부장(COO)을 지낸 이창엽 대표였다.
이 대표는 한국P&G부터 시작해 허쉬(Hershey) 한국법인장, 한국코카콜라 대표, LG생활건강의 미국 자회사 더에이본컴퍼니 최고경영자 등을 지낸 글로벌 마케팅 전문가다.
롯데제과가 롯데푸드와 합병한 이후 세운 목표 가운데 하나가 글로벌 종합식품기업 도약인 만큼 이를 이끌 적임자로 이 대표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LG생활건강에서 무려 18년 동안 최고경영자를 맡았던 차석용 전 대표이사 부회장의 뒤를 이을 유력한 CEO 후보이기도 했다.
이 대표는 LG생활건강에서 사업본부장으로 일할 당시 차석용 부회장이 보고받는 자리에 대부분 배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가 ‘차석용의 후계자’ ‘포스트 차석용’이라는 말을 들었던 이유다.
하지만 LG생활건강이 좀처럼 차석용 체제에서 벗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이창엽 대표는 올해 2분기에 LG생활건강에서 나왔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