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이 고문으로서는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피하기 위해 넘겼던 이노션 지분을 롯데컬처웍스에서 롯데지주와 롯데쇼핑 산하로 옮겨 더 안정적 환경을 구축한 것으로 파악된다.
20일 롯데그룹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롯데컬처웍스가 보유하고 있던 이노션 지분 10.3%(206만 주)를 19일 시간외 대량매매 방식으로 롯데지주와 롯데쇼핑에 절반씩 매각한 것은 롯데그룹과 정성이 이노선 고문의 사전교감이 충분히 이뤄진 뒤 실행된 것으로 파악된다.
롯데컬처웍스가 이노션 지분 처리 문제를 놓고 왜 정 고문과 합의를 거쳤는지 이해하려면 롯데컬처웍스가 이노션 지분을 보유하게 된 경위부터 살펴봐야 한다.
이노션은 현대자동차그룹의 광고 계열사로 2005년 설립됐다. 현대차와 기아 등 현대차그룹 계열사의 물량을 수주하는 방식으로 사세를 키웠기 때문에 애초부터 롯데그룹과 얽힐 일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노션과 롯데컬처웍스는 2019년 5월10일 콘텐츠, 해외진출, 마케팅 등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사업협력 및 업무제휴에 관한 계약’을 체결했다.
제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지분 거래도 이 때 이뤄졌다.
정성이 이노션 고문은 보유하고 있던 이노션 지분 27.99% 가운데 10.3%를 롯데컬처웍스에 현물로 출자했다. 대신 롯데컬처웍스는 신주 13.5%를 발행해 정 고문에게 배정했다.
이렇다 할 인연이 없던 두 회사가 전격적으로 지분 스와프(주식 교환)에 나선 것은 이례적 일이었다.
당시 이노션으로서는 지분 매각의 필요성이 절실했다. 공정거래법 개정 움직임에 따라 오너일가의 지분율이 20% 이상이면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2019년 4월 기준으로 이노션 지분율을 살펴보면 정성이 고문 27.99%,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2% 등 오너일가의 지분율이 29.99%였다. 지분 10% 정도를 팔아야 규제를 피할 수 있었지만 안정적으로 지분을 맡아줄 '믿을맨'을 구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 상황에서 정 고문 측이 롯데컬처웍스에 지분 교환 의사를 먼저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왜 롯데를 선택했는지에 대해선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롯데컬처웍스는 이 제안을 반겼던 것으로 전해진다. 영화관 사업만으로는 외형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지만 이노션이 보유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하면 다양한 콘텐츠 사업에서 외연을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회사의 지분 교환과 관련해 어떤 상세 조항들이 더 담겨있었는지는 뒤늦게 알려졌다. 롯데컬처웍스가 2020년 8월12일 재무제표를 재작성해 감사인인 삼정회계법인이 감사보고서를 수정하면서 두 회사의 상세 계약내용이 일부 공개됐다.
이 내용을 보면 롯데컬처웍스가 보유하게 된 이노션 주식을 양도금지기간 이후 제3자에게 처분하려고 하면 매도인(정성이 고문)이 직접 또는 제3자를 지정해 우선매수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롯데컬처웍스가 이노션 주식을 처분하려면 정성이 고문의 뜻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정 고문이 롯데컬처웍스에 넘긴 이노션 지분이 사실상 정 고문의 개인 지분인 만큼 정 고문에게 유리한 회사를 선택해 지분율을 안정적으로 가져가기 위한 장치라고 볼 수 있다.
롯데컬처웍스 관계자도 19일 이노션 지분 매각과 관련해 “앞서 정성이 고문 측과 합의를 마쳤다”며 “이에 따라 이노션 지분을 롯데지주와 롯데쇼핑에 넘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롯데컬처웍스와 정성이 고문은 이번 지분 변동으로 서로 ‘윈-윈’하는 결과를 얻은 것으로 파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