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이 2일 온라인으로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KDB산업은행 > |
[비즈니스포스트] “나는 대한민국 최대 부실기업 회장이었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은 2일 온라인으로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5년 남짓 산업은행을 이끈 자신의 모습을 담담한 목소리로 이렇게 요약했다.
회장을 맡았을 당시 산업은행이 남들이 맡기 싫어하는 부실기업 현안들을 잔뜩 안고 있었다는 것을 자조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날 기자간담회는 이 회장이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최근 금융위원회에 사의를 표명하면서 입장과 소회를 밝히기 위해 마련됐다.
평소 할 말을 하는 성격으로 유명한 이 회장은 거침없는 표현을 섞어 가며 5년 동안 산업은행이 이룬 성과를 설명했다.
이 회장은 취임 당시를 돌아보며 “산업은행 창고에는 정리되지 않은 부실기업이 잔뜩 쌓여 있었고 미래를 위한 투자는 이뤄지지 않았으며 은행 금고는 텅 비어서 자본잠식 직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지난 5년간 대주주의 책임있는 역할, 이해관계자의 고통분담, 지속가능한 정상화 등을 일관성 있게 지키면서 11개 기업의 구조조정을 마쳤다”며 “2017년 이후 5년간 정부에 지급한 배당과 납부한 법인세만 2조2102억 원에 이른다”고 덧붙였다.
이 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많은 시간을 산업은행의 성과를 조목조목 설명하는 데 할애했다.
이는 최근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산업은행에서 낸 성과들이 폄훼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 회장은 “평가는 각자의 몫이며 책임질 일이 있다면 책임지겠다”며 “좋은 것은 계승하면 되는 것이고 신정부 철학에 안 맞는 것은 바꾸면 그만이다”고 말했다.
그는 “쓸데없이 평가하고 흔들기는 말았으면 좋겠다”며 “일부에서 산업은행에 대해 잘 모르면서 맹목적으로 비방을 하고 있는데 지난 5년간 산업은행이 한 일이 없다는 등, 3개로 쪼개야 한다는 등은 도를 넘는 무책임한 정치적 비방이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임기를 1년 이상 남겨 놓고 새 정부 출범에 따라 사퇴를 결심하게 된 상황에 관해서도 작심발언을 쏟아냈다.
이 회장은 “평소 정부가 바뀌면 그만두겠다는 말을 했다”면서도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정부 교체기마다 정책기관장 교체와 관련된 흠집잡기, 비난, 흔들기 등 잡음이 발생하는 점이다”고 말했다.
다만 대우조선 합병과 KDB생명 매각, 쌍용자동차 매각 등이 무산된 것에 관해서는 아쉬움도 나타냈다.
이 회장은 “역점을 두고 추진하던 대우조선 합병건이 EU(유럽연합)의 자국이기주의에 의해 무산되었고 KDB생명 매각건은 인수주체가 MG손해보험 부실로 인해 대주주 부적격 판단을 받음에 따라 결국 무산됐다”며 “개인적으로 굉장히 안타깝게 생각하며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그는 “쌍용자동차는 회생법원의 관리하에 있어서 저희가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1차 매각이 실패하고 2차 매각이 추진되고 있다”며 “구조조정의 남은 3건이 다음 정부에서 잘 해결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 회장은 친 문재인정부 성향을 가진 경제학자로 평가된다.
김대중정부에서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대통령자문위원회 정책기획위원 등으로 활동했고 노무현정부에서는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 겸 증권선물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이후 한국금융연구원장, 한림대학교 재무금융학과 객원교수, 동국대학교 경영대학 초빙교수 등을 거쳐 2017년 9월 산업은행 회장에 올랐다. 2020년 9월 연임에 성공해 임기가 1년6개월가량 남았었다.
이 회장은 산업은행을 이끌며 금호타이어, KG동부제철, 두산중공업, HMM, 대우건설 등 대기업부터 STX조선, 한진중공업, 신한중공업, 대선조선, 흥아해운 등 중소중견기업까지 다수의 기업을 정상화하고 새 주인을 찾아줬다.
하지만 쌍용차, 대우조선해양, KDB생명 등의 새 주인 찾기에는 실패하면서 책임론에 휩싸이기도 했다. 조승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