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희승 한국철도공사 사장이 18일 부산 진구 부산철도차량정비단을 방문해 KTX의 차륜교체 작업을 점검하고 있다. <한국철도공사> |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사기업은 물론 공기업에서도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공기업 가운데서도 사망사고 건수가 많은 한국도로공사, 한국철도공사, 한국농어촌공사 등은 대응책 마련에 마음이 급할 것으로 보인다.
박화진 고용노동부 차관은 20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관련 기자회견을 열어 “중대재해가 발생하더라도 중대재해처벌법에서 요구하는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충실히 이행했다면 처벌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대재해법의 시행을 두고 '처벌 수위가 높고 범위도 모호하다'는 재계와 일부 언론 등의 불만을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
27일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르면 법이 규정하는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주, 경영자 등 책임 있는 사람에게 형사처벌까지 가능해진다.
중대재해는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사망자가 1인 이상 발생한 재해, 3개월 이상의 요양을 요하는 부상자가 동시에 2인 이상 발생한 재해 또는 부상자나 직업성 질병자가 동시에 10인 이상 발생한 재해로 정의하고 있다.
사망사고가 발생하는 위험성 높은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들로서는 이번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공기업 역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의 대상이다. 공기업이라 사고가 발생하면 여론의 비판이 더욱 클 가능성이 높다.
외부에 발주한 공사에서 사고가 발생해도 해당 공기업이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실제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은 최근 하청업체 노동자 감전 사망사고와 관련해 정승일 한국전력공사 사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 한국전력공사 사장도 처벌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토목, 건설 등 사고 위험성 높은 일을 담당하고 있는 공기업들을 중심으로 정부가 요구하는 ‘안전보건 확보의무’ 이행에 역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김진숙 도로공사 사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는 첫해인 만큼 단 한 건의 중대사고가 회사의 존립을 위협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공기업 수장들도 하나같이 신년사에서 안전을 강조했다.
공기업 가운데서는 도로공사 외에도 철도공사, 농어촌공사가 사망사고가 많은 공기업으로 꼽힌다.
최근 6년 동안 공공기관이 발주 빛 수행한 사업에서 사망한 노동자는 244명인데 이들 세 곳에서 발생한 사망자가 64명으로 전체 25% 수준에 이른다.
기관별 사망자 수를 보면 도로공사 31명, 농어촌공사 17명, 철도공사 16명 등이다.
고용노동부는 사망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공공기관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열고 있고 있다. 지난 11일 회의에는 도로공사, 철도공사, 농어촌공사, KT 등이 참석했다.
이들 공기업은 업무의 특성상 사망사고 발생이 많았던 만큼 이번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계기로 안전 확보에 더욱 고삐를 죄는 모양새다.
김진숙 도로공사 사장은 2020년 취임 이후 공사 내에 안전혁신처를 신설하는 등 꾸준히 안전에 공을 들여왔다.
올해부터는 고속국도 교량 붕괴, 터널 붕락 등 발생 가능 시나리오를 설정하고 비상상황을 가정한 대피훈련을 관련 기관과 협조해 연 1회 이상 시행한다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농어촌공사 역시 농어촌 생활환경 개선을 위해 대단위 농촌개발, 저수지 확충 공사 등 토목공사를 많이 하는 공기업이라 사망사고 많다.
김인식 농어촌공사 사장은 지난해부터 건설공사 낙찰자 선정에서 사고사망만인율(1만 명당 사망자 비율)이 낮은 건설사에 가점을 주는 방식을 확대 적용하는 등 안전 강화에 노력 기울여 왔다. 올해 안전조직에 인력을 보강하는 조직개편도 실시한다.
김인식 농어촌공사 사장은 지난해 10월 전남북 일원 공사현장 3개소를 불시점검하면서 “현장의 적나라한 안전관리 실태를 파악하고 개선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예고 없는 불시점검과 개선 활동을 계속해 안전준수가 공사현장에 뿌리내리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철도공사는 안전 확보가 다른 공기업보다 더 시급한 상황이다.
나희승 철도공사 사장은 지난해 11월 취임 직후부터 자회들과 ‘웨어러블 에어백’을 도입하는 등 안전조치 강화에 공을 들여왔다 하지만 해가 바뀐 직후인 지난 5일 충북 영동터널 인근에서 KTX 탈선사고가 발생했다.
나 사장은 아직 사고원인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사고와 동일한 차종 전량의 차륜을 교체하는 등 강도 높은 대응책을 내놨다.
그는 14일 차륜 교체작업이 진행되는 경기도 고양시 KTX 차량정비기지를 방문해 “사고 원인이 규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국민의 안전을 선제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긴급조치”라며 “업무량이 많아지는 만큼 작업자와 협력사 직원의 안전에도 소홀함이 없도록 만전을 기해달라”고 주문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