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주 중흥그룹 부회장이 그룹 지배력을 강화하며 그룹 경영권 승계작업에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
정 부회장은 대우건설 인수과정에서 중흥토건에 인수지분의 80%를 몰아주며 중흥그룹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을 크게 끌어 올렸다.
중흥그룹은 조만간 산업은행과 대우건설 인수를 위한 주식매매계약(SPA) 체결을 마무리하고 이번 달 안으로 공정거래위원회에 기업결합 심사 신청을 한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20일 전해졌다.
앞서 중흥그룹이 지난 9일 산업은행과 본계약을 맺을 때 대우건설 지분 50.75%를 어떻게 나눠 가질지 업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그런데 중흥그룹은 중흥토건이 인수할 대우건설 지분의 40.60%를, 중흥건설이 10.15%를 인수한다고 15일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밝혔다. 중흥토건과 중흥건설이 8:2의 비율로 지분을 인수하는 셈이다.
인수대금은 중흥그룹이 입찰 당시 제시했던 2조1천억 원에서 1.57% 내려간 2조671억 원으로 결정됐다.
정 부회장은 본인이 지분 100%를 소유한 중흥토건이 대우건설을 종속기업으로 거느리게 됨에 따라 앞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게 되는 데 부담을 덜게 됐다.
정 부회장이 지분을 증여받거나 매입하는 방식으로 중흥건설 지분을 늘리거나 중흥토건과 중흥건설의 합병을 통하지 않고도 중흥그룹 전체에 대한 영향력을 한층 강화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정창선 중흥그룹 회장이 여전히 경영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기는 하지만 80세의 고령임을 감안하면 중흥토건의 몸집 불리기는 정 부회장의 승계 부담을 줄이기 위한 사전작업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중흥건설은 정 회장이 76.6%, 정 부회장이 10.9%의 지분을 들고 있다. 중흥건설은 종속회사를 거느리지 않고 있지만 중흥토건은 대우건설을 제외하고도 10개의 계열사를 이미 종속회사로 두고 있다.
정 부회장의 중흥그룹 경영권 승계작업은 오래전부터 꾸준히 이어져왔다.
중흥건설은 1983년 탄생한 이래 중흥그룹의 주력 계열사로서 그룹 성장에 가장 오래 기여해왔다. 중흥토건은 11년 뒤인 1994년 설립됐다.
정 회장은 큰아들인 정 부회장에게 그룹을 물려주기 위해 중흥건설 지분을 넘겨주는 대신 중흥토건을 정 부회장 개인회사로 설립한 뒤 내부거래를 통해 몸집을 키우는 방식을 선택했다.
중흥토건은 설립 초기에 중흥건설의 시공 보조역할을 하는 수준이었지만 2010년대부터는 직접 자금을 조달해 주택개발사업을 벌이는 등 사세 확장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정 부회장의 중흥토건은 그룹 차원의 지원을 받아 2012년 매출 1천억 원을 달성했고 2015년에는 6168억 원의 매출을 거두며 중흥건설을 앞서기에 이르렀다.
중흥토건은 2020년 연결기준으로 매출 1조6533억 원, 영업이익 2525억 원을 거뒀다. 같은 기간 중흥건설의 매출은 5309억 원, 영업이익은 819억 원이다.
자산규모의 차이도 크다. 2020년 별도기준 중흥토건의 자산총계는 2조400억 원인 반면 중흥건설은 8539억 원으로 두 배 이상 벌어졌다.
두 회사의 성장추세는 시공능력평가 순위를 보면 알 수 있다.
중흥건설은 2016년부터 2021년까지 30위권 중반에서 40위권 초반에 머물며 성장이 정체됐다.
반면 중흥토건은 2016년 42위였지만 2017년 35위, 2018년 22위로 오르더니 2019년에 17위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10위권에 진입했다.
이번 인수로 중흥그룹은 시공능력평가 17위 중흥토건, 40위 중흥건설에 이어 5위 대우건설까지 품게 되면서 단순합산 기준으로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에 이어 국내 3대 건설사로 올라서게 된다.
전체 재계순위에서도 자산규모 19조540억 원으로 47위에서 21위로 뛰어오르게 된다.
중흥그룹 관계자는 “중흥토건과 중흥건설이 대우건설 지분을 8:2로 나눠 인수하는 것은 자금조달 문제와 상관없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임민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