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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벤처 파운드리 주목받다, K-시스템반도체 육성전략의 빈 공간

임한솔 기자 limhs@businesspost.co.kr 2021-07-22 15: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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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벤처 파운드리 주목받다, K-시스템반도체 육성전략의 빈 공간
▲ 영국 파운드리기업 프래그매틱(PragmatIC)이 만든 유연한 반도체(플렉스IC). < CPI >
3조 원. 반도체 생산공장 한 곳을 설립하는 데 들어가는 돈이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업계에 새로운 기업이 좀처럼 진입하지 못하게 하는 큰 장벽이다.

그래서 영국 신생 파운드리기업 프래그매틱(PragmatIC)의 성공사례는 더욱 특별하게 여겨진다. 프래그매틱은 자체 반도체공장 없이도 파운드리업체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이는 정부 차원의 지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21일 영국의 세계적 반도체설계기업 ARM은 굽힐 수 있는 반도체 ‘플라스틱ARM’을 선보였다. 

플라스틱ARM은 기존 반도체와 달리 실리콘 대신 플라스틱 등 유연한 소재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향후 웨어러블기기 등에서 널리 사용될 것으로 전망됐다.

이 플라스틱ARM을 위탁생산하는 기업이 바로 프래그매틱이다.

프래그매틱은 2010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연구팀의 주도로 설립됐다. 플라스틱ARM과 같은 유연한 반도체(플렉스IC)를 전문으로 만든다. 플렉스IC는 주로 전자태그(RFID)나 근거리무선통신(NFC)태그에 쓰인다.

프래그매틱은 2019년 3월 첫 제품인 전자태그용 플렉스IC를 출시한 뒤 2개월 만에 북미, 유럽, 아시아 등의 고객사들로부터 2천만 개 규모의 반도체 주문을 받았다. 올해 3월에는 재활용품용 근거리무선통신태그를 생산하는 130만 파운드 규모 계약을 영국 정부로부터 수주하기도 했다.

이처럼 활발하게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프래그매틱이 확보한 자금은 정작 그렇게 많지 않다. 지난해 12월 기준 ARM, 미국 전자태그기업 에이버리데니슨 등으로부터 모두 5천만 파운드(약 800억 원) 규모 투자를 유치했을 뿐이다. 이는 파운드리기업에 필수인 반도체 공장을 설립하는 비용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대학 연구팀에서 출발한 데다 자금도 많지 않은 프래그매틱이 파운드리기업으로서 빠르게 자리잡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영국 CPI(프로세스혁신센터, Center for Process Innovation Limited)가 있다.

CPI는 2004년 영국 정부에서 전자, 바이오, 에너지, 항공우주를 비롯한 여러 첨단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설립한 비영리기관이다. 주로 유망 기업과 공동 연구개발을 진행하거나 신제품 실증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는다.

프래그매틱 역시 2012년부터 CPI의 지원을 받아 반도체 생산기술 연구개발에 속도를 냈다. 특히 가장 중요한 반도체 생산시설을 CPI로부터 제공받을 수 있었다. 

프래그매틱은 2018년부터 CPI 소유인 국립인쇄전자센터에서 플렉스IC 양산을 시작했다. 현재도 국립인쇄전자센터를 통해 연간 수십억 개 수준의 반도체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다.

프래그매틱은 이제 CPI에만 의존하지 않고 영국과 네덜란드 등 여러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반도체 생산에 나설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앞으로 10년 동안 스마트기기 1조 개를 대상으로 반도체를 공급하겠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다.
 
영국 벤처 파운드리 주목받다, K-시스템반도체 육성전략의 빈 공간
▲ CPI의 국립인쇄전자센터 내부. < CPI >

리처드 프라이스 프래그매틱 최고기술책임자(CTO)는 4월 CPI 홈페이지에 기고해 “CPI와 긴밀한 관계는 프래그매틱 초기 성장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며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고객 및 협력업체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현재 상당한 생산능력 확장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프래그매틱의 사례는 한국 반도체산업에 시사하는 의미가 작지 않다. ‘파운드리 벤처기업'은 국내 시스템반도체업계에 부족한 ‘파운드리 다양성’을 개선하는 카드가 될 수 있다.

최근 한국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K-반도체 전략’을 통해 시스템반도체 육성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세계적 반도체 공급부족으로 자동차산업을 비롯한 국내산업이 타격을 받으면서 반도체 자급의 중요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K-반도체 전략은 삼성전자, DB하이텍, 키파운드리 등 기존 파운드리기업의 생산능력을 더 키우고 중소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기업)과 연계를 강화하는 내용을 뼈대로 다양한 지원책을 담았다.

다만 아쉬운 대목이 있다. 기존 파운드리기업만으로는 시스템반도체업계의 반도체 생산 수요를 모두 충족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시스템반도체는 '다품종 소량생산'이 특징이다. 각 제품마다 반도체 생산기술과 비용 조건이 달라져 특정한 몇 개 기업이 이런 조건을 모두 채우는 데 분명한 한계가 있다.

K-반도체 전략이 성공하더라도 국내 팹리스 상당수가 여전히 해외 파운드리기업에 반도체 생산을 맡기게 될 공산이 크다는 뜻이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이 2016년 발간한 ‘신성장 반도체산업 육성을 위한 소형 파운드리 구축전략 수립 연구’ 보고서를 보면 당시 국내 팹리스 반도체의 57%는 해외에서 만들어졌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해당 보고서가 나온 뒤 5년이 지난 지금도 비슷한 수준의 생산비율이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은 “해외 파운드리기업을 이용하는 팹리스의 대부분은 국내 파운드리에서 서비스되지 않는 90나노급 이하의 공정을 이용하고 있다”며 “국내 시스템반도체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소량의 물량도 서비스가 가능한 파운드리기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프래그매틱과 같이 소규모 파운드리기업의 창업이 가능하도록 인프라와 여건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물론 기존 파운드리기업에서도 팹리스의 다양한 일감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SK하이닉스의 경우 자회사 SK하이닉스시스템IC를 통해 파운드리사업을 하고 있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대표이사 부회장은 최근 파운드리사업 범위를 더 확대해 국내 중소 팹리스를 유치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박정호 부회장은 4월21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월드IT쇼에 참석해 “국내 팹리스업체들에게서 세계 1위인 대만 TSMC 기술 수준의 파운드리서비스를 해주면 좋겠다는 요청이 있었고 이에 공감한다”며 “국내 팹리스들에게 TSMC 수준의 파운드리서비스를 제공하면 이들 기업은 여러 기술 개발을 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무리 대기업이라도 개별 기업 차원의 중소 팹리스와 협업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정부가 나서 시스템반도체 육성전략에 빈틈이 없는 지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임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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