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증권업계 분석을 종합하면 삼성전자도 인수합병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련하는 일이 절실하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는 2012년 처음으로 매출 200조 원을 넘은 뒤 2012~2020년 연평균 매출 220조 원에 머물렀고 최근 3년 평균 매출도 236조 원으로 성장이 정체된 모습을 나타낸다”며 “장기 성장을 위해 인수합병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인수합병을 위한 ‘실탄’ 자체는 충분하다. 삼성전자는 1분기 기준 순현금 111조8천억 원가량을 보유한 것으로 파악된다.
삼성전자 내부적으로도 인수합병의 필요성을 느끼는 분위기가 나타난다.
최윤호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 사장이 1월 실적발표에서 “3년 안에 의미있는 인수합병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뒤이어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도 3월 주주총회에서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인수합병 대상을 신중하게 탐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런 경영진의 의지는 아직 구체적 움직임으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 네덜란드 반도체기업 NXP 인수설이 최근 다시 부각됐다가 곧 가라앉았을 뿐이다.
이 부회장은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을 대신해 2014년부터 삼성전자 경영을 총괄하면서 삼성전자의 굵직굵직한 사업적 결정 대부분에 관여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가 2016년 미국 전장업체 하만을 80억 달러에 사들인 일이 대표적이다. 당시 국내 인수합병 사상 최대 규모였다. 삼성전자는 현재 하만을 중심으로 전장사업을 새 먹거리로 육성하고 있다.
삼성전자 자회사인 삼성디스플레이가 2019년 차세대 QD디스플레이와 관련해 13조1천억 원 규모의 투자를 발표한 배경에도 이 부회장의 의지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건희 전 회장이 별세한 뒤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에 미치는 영향력은 더 커졌다.
이 부회장은 4월 이건희 전 회장의 삼성생명 지분을 상속받아 삼성전자 최대주주인 삼성생명의 개인 최대주주에 올랐다. 삼성생명 최대주주인 삼성물산을 통해 삼성전자를 간접적으로 지배했을 때보다 지배력을 더 강화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이 부회장이 현재 삼성전자의 인수합병을 깊이있게 살펴볼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는 점이다.
이 부회장은 최순실 국정농단사건에 연루돼 올해 초 실형을 선고받아 재수감됐다. 사면이나 가석방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내년 7월까지 형을 살아야 한다.
삼성전자의 사업방향을 정해줄 이 부회장이 자리를 비운 동안 반도체업계에서는 활발한 지각변동이 이뤄지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10월 인텔 낸드사업부 인수를 결정했고 현재 중국과 싱가포르 규제당국의 허가만 기다리고 있다. 올해 말 1차 인수가 마무리되면 SK하이닉스는 낸드플래시 점유율을 큰 폭으로 키워 삼성전자에 뒤이어 시장 2위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엔비디아는 영국의 반도체 설계자산 전문기업 ARM과 400억 달러 규모 인수합병을 진행 중이다. 엔비디아는 ARM의 설계자산 역량을 바탕으로 글로벌 1위 인공지능 컴퓨팅기업으로 성장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인공지능 반도체 등 시스템반도체 육성에 힘쓰는 삼성전자와 경쟁하게 될 수 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사업 최대 경쟁자인 TSMC는 미국에 대규모 파운드리공장 설립을 추진하며 미국 반도체기업 공략에 나섰다. 반면 삼성전자는 미국 파운드리사업에 관해 20조 원 규모의 투자계획을 세워놨지만 아직 구체적 투자지역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를 둘러싼 사업환경이 빠르게 바뀜에 따라 최근에는 재계뿐 아니라 정계에서도 이재용 부회장에 관한 ‘역할론’이 대두되고 있다.
특히 정부여당인 민주당의 안규백 양향자 이광재 이원욱 의원 등이 이 부회장의 사면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잇달아 내놨다. 이원욱 의원은 5월 BBS라디오 ‘박경수의 아침저널’에 출연해 “반도체 수급상황, 미국의 반도체 투자 등을 봤을 때 이 부회장의 사면 필요성이 강력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청와대에서 4대그룹 대표와 간담회장으로 향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 <연합뉴스>
청와대의 분위기도 달라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일 김기남 부회장을 비롯한 4대그룹 대표와 만나 이 부회장 사면론에 관해 “국민들 사이에서도 공감이 많다”고 말했다. 4월 청와대 관계자가 “이 부회장의 사면을 검토할 계획이 없다”고 밝힌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이 8월15일 등 특정 기념일을 계기로 가석방될 수 있다는 관측이 고개를 들고 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6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이 부회장과 관련해 "꼭 사면으로 한정될 것이 아니고 가석방으로도 풀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이 경영일선으로 복귀해 삼성전자 인수합병과 같은 중요한 사안을 들여다볼 기회가 생길 수 있는 셈이다.
다만 이 부회장이 풀려난다고 해도 삼성전자의 오너 리스크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을 공산이 크다.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의혹과 관련해서도 재판을 받고 있다.
검찰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등이 모두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진행됐다고 본다. 반면 이 부회장 측은 삼성물산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불법행위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비즈니스포스트 임한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