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20년 1월30일 저녁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이광재 전 강원지사(앞줄 왼쪽)가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이날 이 대표는 이 전 지사에게 총선에 출마해 강원지역 선거를 이끌어줄 것을 부탁했다. <연합뉴스> |
△2020년 총선 출마
이광재는 2020년 3월12일 민주당내 원주갑 후보 경선에서 박우순 전 의원을 꺾고 본선에 올랐다. 이에 따라 이광재와 미래통합당 박정하 전 제주도 정무부지사, 무소속 권성중 변호사 등 3명이 맞붙게 됐다.
이광재는 3월9일 “교육문제가 해결돼야 사람이 몰리고 기업 유치와 돈이 모인다”며 최우선 공약으로 교육부문 공약을 앞세워 원주갑 유권자를 공략하고 있다.
원주갑은 전통적 보수정당 텃밭이지만 이광재 바람이 불었던 2010년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첫 깃발을 꽂기도 했다.
2019년 12월 이광재는 문재인 정부의 신년 특별사면 명단에 포함되면서 8년 만에 공직선거 출마 자격을 회복했다.
2020년 1월 이광재는 이해찬 대표와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만나 4.15총선 공동선대위원장과 강원지역 출마를 요청받았다. 이광재는 선대위는 맡겠지만 출마는 검토해보겠다며 말을 아꼈다.
2020년 2월 더불어민주당 강원권역 선거대책위원회 위원장에 올라 대구경북의 김부겸, 부산경남의 김영춘, 서울과 호남의 이낙연, 충청 이해찬와 함께 공동선대위원장으로서 위상이 급상승했다.
원주갑 당협위원장이었던 권성중 변호사는 2020년 2월 이광재의 전략공천 움직임을 파악하고는 탈당한 뒤 무소속 출마를 결정했다.
이광재는 2020년 3월 고심 끝에 전략공천이 아닌 경선에 참여하는 형태로 강원 원주갑에 공식 출마했다.
△2017년 대선에서
2017년 이광재는 민주당의 유력 대선후보였던 안희정 충남지사의 대선 도전을 도왔다.
이광재는 문재인 대선캠프에 있던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을 설득해 영입했다.
윤태영 전 대변인은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선거캠프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그리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는 카피를 만든 인물이다.
이를 놓고 문재인 캠프 측에서는 윤 전 대변인이 어느 날 갑자기 책상을 정리하고 가버려 당황했다고 전해졌다.
안희정 대선캠프의 참모진은 원조 친노라고 자부하는 금강팀 멤버들이 주축을 이룬다. 금강팀은 1994년 노 전 대통령이 여의도 금강빌딩에서 시작한 지방자치실무연구소 출신 인물들을 가리킨다.
금강팀은 안희정 전 지사가 비서와의 '미투(성관련 폭로)'사건으로 사실상 정치생명이 끝나면서 구심점을 잃었다.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과 인연 및 여시재 활동
2003년 이광재는 청와대비서실 국정상황실장을 지낼 때 홍석현 회장을 주미대사로 천거해 인연을 쌓았다.
2015년 당시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은 야인이 된 이광재를 한국형 싱크탱크인 '여시재' 총괄부원장으로 불러 여시재의 실질적 운영을 맡겼다.
이광재는 2017년 여시재 원장에 올라 여야 정치인들을 초청한 포럼과 강원대 강연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아시아 차세대 지도자들과 교류
이광재는 2016년 5월 새누리당 김세연 나경원,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과 일본을 방문해 유력 정치인들을 만났다.
2016년 7월 이광재는 새누리당 나경원 의원, 남경필 지사, 민주당 김부겸 의원과 중국을 방문해 후춘화 광둥성 서기, 쑹타오 공산당 대외연락부장 등을 면담했다.
△중국 유학길에 올라
2011년 이광재는 중국 유학길에 올랐다.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의 객원교수로 임용돼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연구활동에 매진했다.
중국 칭화대에서는 공공관리대학원의 객좌교수로 임용돼 국가행정의 의사결정 과정이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맡았다.
2014년 이광재는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중국 칭화대학교에 있으면서 중국 최고 지도자들의 집체학습을 전담하는 강사들을 인터뷰해 중국 국가정책 방향의 지혜를 경청한 뒤 그 내용을 '대한민국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는 책으로 엮었다.
| ▲ 2018년 1월19일 경기도 파주시에서 평창동계올림픽을 맞아 열린 '2018 임진클래식' 아이스하키 행사에서 이광재 전 강원도 도지사(오른쪽에서 두번째)가 평창동계올림픽 성화에 불을 붙이고 있다. <연합뉴스> |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 기여
강원도 평창은 2010년 6월 3번째로 동계올림픽 개최지 후보에 올랐다.
이광재는 강원지사로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평창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할 수 있도록 세계에서 평창을 홍보하는데 힘썼다.
이광재는 2010년 10월 이건희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 조양호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장 등과 함께 멕시코 아카풀코에서 열린 세계 국가 올림픽 총연합회 회의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를 위한 프레젠테이션에 참석했다.
2010년 11월에는 조양호 위원장, 박용성 대한체육회장 등과 함께 광저우 아시아올림픽평의회에서 평창 개최 홍보와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들을 설득을 위한 프레젠테이션 자리에 직접 참석하기도 했다.
2011년 지사직에서 내려온 이광재는 민주당내 2018 평창동계올림픽 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지원활동을 도왔다.
대한민국 평창은 2011년 7월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 총회에서 독일 뮌헨, 프랑스 안시를 누르고 최종 개최지에 선정됐다.
대한민국은 1988년 서울하계올림픽, 2002년 월드컵,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이어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유치하면서 세계 4대 스포츠를 모두 유치한 6번째 나라가 됐다.
△강원도 도지사 이광재
이광재는 2010년 강원도 도지사 선거에 출마했다.
국회의원 시절 강원도에 예산을 많이 확보했던 것과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에 공헌한 점, 강원도 출신의 거물 정치인이란 점이 주효해 KBS 아나운서 출신 이계진을 누르고 당선됐다.
여론조사에서는 이계진이 이광재를 15%포인트 앞섰으나 이를 뒤집은 것이다.
이를 놓고 일각에서는 당시 이명박 정부가 강원도의 숙원사업이었던 의료단지를 강원도가 아닌 대구에 배정해 주면서 한나라당을 향한 원망이 고스란히 민주당 표가 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는 민주당에게 불모지였던 강원도에서 국회의원 2선을 한데 이어 도지사에까지 당선되면서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선된지 1개월만에 박연차게이트 관련 재판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아 도지사 직무가 정지됐으며 2011년 유죄판결이 확정되면서 취임 7개월 만에 지사직을 상실하고 말았다.
2019년 특별사면됐다.
△민주당계 험지 강원도 개척 공로
2004년 이광재는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전통적으로 보수 색채가 강한 강원도에 도전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2006년 열린우리당 전략기획위원장, 국회 평창동계올림픽 유치특별위원회 간사 등을 맡으며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힘썼다.
17대 강원도 의원 가운데 공약 이행률 1위를 기록했다.
2008년 재선에 성공했으나 2009년 박연차 게이트로 수사를 받았다.
△노무현의 보좌관
이광재는 1988년부터 노무현 국회의원의 보좌관으로 활동했다.
안희정과 함께 '좌희정 우광재'로 불리며 노무현의 비서이자 참모 역할을 수행했다.
1993년 노무현 전 의원이 여의도 금강빌딩에 설립한 지방자치실무연구소 기획실장을 맡았다.
이때 동고동락한 안희정, 염동연, 이강철, 황이수 등은 '금강팀'으로 불리며 친노 주류를 형성했다.
그는 2002년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OK SK'라는 광고카피로 유명했던 카피라이터 송치복씨를 노무현 캠프에 영입했다. 송 씨는 '노무현의 눈물', '기타 치는 대통령' 등의 텔레비젼 광고를 만들어 히트를 쳤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관, 2003년 대통령비서실 국정상황실 팀장을 맡았다. 같은 해 선거자금 관련 비리 의혹이 제기돼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삼성경제연구소와의 적극적으로 공조하며 '친재벌' 행보를 이유로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일각에서는 중도 확장성을 보였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학생운동 시절
1980년대 연세대학교 법과대학 재학시절 학생운동에 가담해 전국 학생운동연합기관지 '백만학도'를 제작했다.
1986년 이광재는 오른쪽 검지손가락을 잘라 군 면제를 받았다.
이광재는 오랫동안 손가락을 자른 이유를 밝히지 않았는데 2005년 조선일보가 이를 두고 '군대가 가기싫어 손가락을 잘랐다'는 내용을 담은 보도를 내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광재는 해명문에서 전두환 정권이 운동권 학생들을 기습적으로 입영시킨 뒤 최전방에서 오랜 기간 고문과 가혹행위로 세뇌했던 '녹화사업'을 회피하기 위해 손가락을 자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 피로 '절대 친구들을 배신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담은 혈서를 썼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와 같은 사실과 관련한 시대적 맥락을 이해해 달라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