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대제 스카이레이스인베스트먼트 대표가 30일 '반도체산업 패러다임과 미래' 세미나에 참석해 말하고 있다. |
“미국에서 우리나라 기업더러 중국에 반도체를 팔지 말라고 하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낸
진대제 스카이레이스인베스트먼트 대표가 30일 전국경제인연합회 회관에서 열린 ‘반도체산업 패러다임과 미래’ 세미나에 참석해 던진 질문이다.
이날 세미나에는 진 대표와 더불어 강성철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선임연구위원,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이사, 홍대순 글로벌전략정책연구위원장,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 등 반도체업계 전문가들이 모였다.
이들은 최근 국제정세가 ‘반도체 이기주의’로 흘러가고 있다는 데 한목소리를 냈다.
애초 반도체산업은 국제적으로 생산처와 사용처를 다르게 하는 방식으로 운영돼 왔다. 하지만 4차산업혁명과 코로나19를 계기로 반도체가 점점 더 중요해면서 국가마다 자체적으로 산업을 육성하려는 경향이 심해진 것으로 분석됐다.
노근창 센터장은 “코로나 이후 국가별로 이기주의가 많이 생겨났다”며 “자기 나라 기업을 보호하려는 움직임이 많아졌다”고 바라봤다.
물론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기업이 선전하고 있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 유럽연합(EU) 등이 반도체산업을 키우기 위해 막대한 지원을 계획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후발주자와 격차가 더 빠르게 좁혀질 수 있다는 우려가 많았다.
중국은 2015년 300조 원 수준의 투자를 통해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 70%를 달성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300조 원은 삼성전자가 당시까지 반도체에 투자한 금액과 맞먹는다.
미국은 최근 반도체산업 지원법안을 상정해 관련 연구개발에 228억 달러 지원, 시설투자의 40% 세액공제 등을 추진하고 있다. 유럽연합 역시 최대 500억 유로 규모의 투자계획을 내놨다.
전문가들은 애초 ‘반도체굴기’로 잘 알려진 중국보다 미국의 추격을 경계했다. 중국은 대규모 투자에도 현재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지만 미국은 인텔과 마이크론 등을 앞세워 빠르게 반도체기술 격차를 따라잡을 것으로 전망됐다.
안기현 전무이사는 “중국에 관해서는 한시름 놓은 것 같다”며 “하지만 마이크론과는 전보다 경쟁의 간격이 많이 좁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마이크론은 지난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보다 앞서 176단 낸드를 양산했다고 밝혔다.
여기에 더해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관련 갈등도 국내 기업에 위협이 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현재 미국은 중국을 상대로 반도체 장비 및 기술 공급을 제한하고 있는데 향후 국내 기업이 두 국가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강요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진 대표는 미국이 국내 기업에 중국으로 반도체 공급 중단을 요구했을 때 국내 기업이 이를 따를 경우 “(중국으로부터) 사드 보복보다 더 심한 보복을 당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 30일 열린 '반도체 산업 패러다임과 미래'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강성철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선임연구위원,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이사, 홍대순 글로벌전략정책연구원장,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 |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기업이 이런 위기에 닥친다면 개별 기업이 아닌 국가적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홍대순 원장은 “정부는 반도체산업에 관해 국가 사이 전쟁이 시작됐다고 인지해야 한다”며 “지리적 요소와 정치적 요소를 고려한 고도의 반도체 외교술이 기업을 뒷받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도체기업이 미국 등에 맞서 지속해서 기술격차를 이어갈 수 있도록 정부에서 고급인재 양성과 규제완화를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안기현 전무이사는 “근본적으로 국가 교육시스템이 고급인력 양성과 거리가 멀다”며 “교육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협력해 반도체산업 성장에 필요한 고급 인재들을 키울 수 있게끔 시스템을 바꿔줘야 한다”고 말했다.
안 전무이사는 “대만 사례를 보면 처음 반도체산업을 시작했을 당시 반도체 전공 교수를 해마다 300~400명씩 신규로 뽑아 운영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글로벌 반도체산업은 당분간 높은 성장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메모리반도체시장은 전년 대비 26.8% 증가한 1476억 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시스템반도체분야 역시 사물인터넷(IoT), 5G통신, 자율주행차 등을 중심으로 다양한 제품의 수요가 확대될 것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이번 세미나의 참석자들은 시장이 커지는 것과 별개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앞으로도 계속 반도체 선두를 유지할 수 있을지를 두고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진 대표는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이 반도체부문 임원들에 남긴 유훈을 소개했다.
“영국이 증기기관을 만들어 400년 동안 세계를 제패했는데 나도 그런 생각으로 반도체에 투자한 것이니 앞으로 자네들이 열심히 잘 해내라.” [비즈니스포스트 임한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