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가 배터리데이에서 새 원통형 배터리를 내세워 전기차 생산원가를 절반으로 낮추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LG화학, SK이노베이션, 삼성SDI 등 한국 배터리3사도 내년부터 생산원가를 낮춘 새 배터리의 양산을 앞두고 있는 만큼 테슬라가 주도하는 원가 절감 흐름에 발을 맞출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 (왼쪽부터) 신학철 LG화학 대표이사 부회장, 김준 SK이노베이션 대표이사 총괄사장, 전영현 삼성SDI 대표이사 사장. |
23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배터리3사는 하이니켈 배터리(양극재의 니켈 비중이 높은 배터리)의 양산을 통해 테슬라의 자체 배터리와 비슷한 수준의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LG화학은 NCMA배터리(니켈, 코발트, 망간, 알루미늄을 조합해 만든 양극재를 탑재한 배터리)를, 삼성SDI는 NCA배터리(니켈, 코발트, 알루미늄을 조합해 만든 양극재를 탑재한 배터리)를 각각 2021년부터 양산한다.
SK이노베이션은 NCM91/21/2배터리(니켈, 코발트, 망간을 9:1/2:1/2 비율로 조합해 만든 양극재를 탑재한 배터리)를 2022년부터 양산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현재 글로벌 전기차배터리시장의 주류는 NCM523이나 NCM622배터리다. 반면 배터리3사가 양산을 앞둔 배터리들은 모두 니켈 함량을 90%까지 높이고 코발트 함량을 5%로 낮춘 하이니켈 배터리다.
배터리3사는 여기에 CTP(Cell To Pack) 기술을 더한다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이 기술은 셀-모듈-팩의 배터리 생산과정에서 모듈 단계를 생략해 에너지 밀도를 더욱 높이고 생산원가는 낮추는 신기술이다.
정원석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하이니켈 배터리는 코발트를 적게 사용하기 때문에 생산원가 절감에 유리하다”며 “배터리3사가 CTP기술까지 적용한다면 배터리팩 기준으로는 테슬라와 겨뤄볼 만한 가격대까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바라봤다.
코발트는 배터리 내부의 온도를 낮춰 폭발위험을 줄여주는 재료로 배터리를 구성하는 재료들 가운데 가장 비싸다.
런던금속거래소(LME)에 따르면 22일 기준으로 코발트는 톤당 3만3970달러다. 반면 LG화학과 삼성SDI가 코발트의 역할을 대체하기 위해 활용하는 알루미늄은 톤당 1744달러로 코발트의 5% 수준이다.
지금까지는 전기차의 1회 충전 주행거리를 늘리는 것이 전기차 제조사들과 배터리 제조사들의 주요 과제였다. 배터리3사의 하이니켈 배터리도 에너지 밀도를 높이는 니켈을 더 많이 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런데 테슬라가 배터리데이를 통해 이제는 전기차배터리 제조사들의 주요 과제가 원가 절감이라는 화두를 던지자 하이니켈 배터리의 원가 절감 측면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테슬라는 배터리데이 행사를 열고 새 원통형배터리인 ‘4680배터리(지름 46mm, 길이 80mm)’를 소개했다. 기존에 일본 파나소닉에서 공급받던 2170배터리보다 크기를 키워 더 많은 활물질을 담을 수 있도록 한 테슬라의 자체 배터리다.
테슬라는 이 배터리에 최근 특허를 낸 탭리스 기술(배터리 뚜껑을 없애는 기술)을 적용해 공간 활용도를 높이고 생산 과정에서도 배터리 기술회사 맥스웰을 인수해 확보한 새 기술을 도입해 원가를 낮추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4680배터리의 양산 체제를 구축한 뒤 2022년부터 본격적으로 양산할 것”이라며 “최종적으로 배터리팩의 생산원가를 56% 절감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기차 관련업계는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를 완전히 대체하기 위해 1회 충전 주행거리를 늘리는 것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프라이스 패러티(Price Parity, 보조금 없이도 전기차 생산원가가 내연기관차와 동등해지는 단계)에 도달해야 한다고 본다.
전기차 원가 가운데 배터리 가격이 30~40%를 차지한다. 차체를 구성하는 다른 부분에서 원가를 절감할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제한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전기차의 원가 절감은 배터리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
배터리시장 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현재 글로벌 배터리 제조사들의 생산원가는 대체로 1kWh당 140달러이며 한국 배터리3사나 중국 CATL, 일본 파나소닉 등 톱티어(최고 수준) 제조사들은 120달러 수준이다.
전기차가 프라이스 패러티를 확보하는 기준은 배터리 원가 1kWh당 100달러다. 테슬라가 4680배터리를 통해 이를 실현할 수 있음을 알린 만큼 배터리3사로서는 하이니켈 배터리 개발계획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 테슬라에 발을 맞춰야 한다.
머스크 CEO는 이날 테슬라의 배터리 생산능력을 2022년 100GWh에서 2030년 3TWh까지 30배 키우겠다는 장기 계획도 내놨다.
배터리업계 한 관계자는 “테슬라가 배터리 생산능력을 공격적으로 늘리는 것은 단순히 배터리 내재화를 넘어 외부 판매까지 노린 계획일 수 있다”며 “테슬라가 제시한 배터리 생산원가는 머지않아 전기차배터리 톱티어회사를 판가름하는 기준으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이 테슬라 수준의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면 테슬라뿐 아니라 비 테슬라 진영의 고객사들을 상대로도 주요 공급사의 입지를 더욱 다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