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거돈 부산시장이 성추행을 인정하고 물러났다.
더불어민주당은 성폭력으로 촉망받던 대선후보였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를 잃었던 기억이 가시기도 전에 영남의 날개 하나가 꺾였다.
오 시장은 23일 부산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 사람에게 5분 정도 짧은 면담 과정에서 불필요한 신체접촉을 했다”며 스스로 저지른 잘못을 인정했다.
오 시장은 경남고와 서울대를 졸업했고 14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부산시 상수도사업본부장과 정무부지사, 행정부시장을 거쳐 30여 년을 공직에 몸담은 관료출신이다.
부산을 동북아시아의 해양수도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아 ‘부산 대개조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고 동남권 관문공항과 ‘2030 부산 월드 엑스포’ 유치 등 부산의 각종 현안 사업도 힘있게 끌어왔다.
민선 최초의 민주당 소속 부산시장에 당선하면서 23년 만에 지역주의 타파의 정권교체에 성공했다는 정치적 업적을 이뤄내기도 했다.
오 시장 개인으로서도 부산시장 선거에서 3번 낙선의 고배를 마신 뒤 4번째 도전 만에 어렵게 부산시장 자리에 올랐지만 주어진 임기를 모두 채우지 못하고 명예롭지 못한 퇴진을 하고 말았다.
신중하지 못했던 한 순간의 잘못으로 오랜 기간 공들여 쌓아올린 탑이 모조리 무너져버린 것이다.
공직자는 행동거지 하나에도 조심해야 하고 털끝 하나도 무겁게 여겨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준 또 하나의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오 시장은 그동안 부산시와 부산시 산하기관 직원들 앞에 서서 '성인지 감수성'과 '인권의식'을 강조해 왔다.
그는 2019년 9월 부산시 주간업무회의에서 "성희롱은 민선 7기에서 뿌리뽑아야할 구태"라며 재임기간 부산시 안의 성폭력 근절에 강력한 의지도 보여 왔다.
그러나 표리부동의 '성인지 의식수준의 가벼움'은 ‘참을 수 없는 욕정의 역겨움’외에 어떤 변명도 허락하지 않게 됐다.
오 시장의 퇴진은 오 시장 혼자만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선출직 시장에 오른 만큼 그는 더이상 단순한 관료가 아니라 분명히 정치인이다. 영남의 날개 하나를 잃었다는 점에서 민주당에게 뼈아픈 타격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오 시장은 이번 총선 영남에서 부족한 성적표를 받아든 민주당에 꾸준한 동력을 제공해야 할 막중한 임무를 지녔지만 회복 동력은 커녕 마른하늘에 날벼락만 던지고 말았다.
지역민심은 실망이 아니라 격분으로 변할 수 있다. 성추행 문제는 모두들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부산시는 보궐선거가 열리는 2021년 4월7일까지 산적한 시정현안을 놓고 선장 없이 표류하게 됐다. [비즈니스포스트 고우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