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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가 국제영화제에서 외면받는 이유

김희정 기자 mercuryse@businesspost.co.kr 2014-04-21 18: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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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영화가 국제영화제에서 외면받는 이유  
▲ 홍상수 감독(왼쪽)과 김기덕 감독(오른쪽)

올해 칸 영화제 진출작이 발표되었지만 한국영화는 경쟁부문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한때 국제영화제를 휩쓸던 우리영화가 최근 들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투자, 제작, 배급을 대기업이 독식하는 구조가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칸 국제영화제 사무국은 지난 1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제 67회 칸 영화제 진출작을 발표했다. 선정된 작품은 총 49편이다. 그 중 1부 리그격인 경쟁 부문에 18편이 올랐다.


본선에 오른 18개 작품은 세계 28개국에서 온 1800여 개의 출품작들 중에서 엄선됐다. 출품작 중 한국영화는 임권택 감독(78)의 '화장'과 김기덕 감독(54)의 '일대일', 그리고 제목이 공개되지 않은 홍상수 감독(54)의 신작이 포함됐다. 이 세 감독들은 이미 칸 영화제에 두 번 이상 초청받은 전력이 있어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기대와 다르게 모두 경쟁작 진출에 실패했다. 이들은 비경쟁 부문에도 진출하지 못했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칸의 단골손님이었던 홍상수 김기덕 감독이 더 이상 새로운 자극을 주는 영화를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임권택 감독은 '취화선'(2002년) 이후 공백이 너무 길었다"고 분석했다. 우리나라 영화는 2년 연속 칸 영화제 본선 진출이 좌절됐다.


문제는 칸 영화제뿐 아니라 베니스 영화제와 베를린 영화제를 합한 3대 영화제에서 모두 경쟁작 진출에 실패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2월 홍상수 감독의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이 베를린 영화제 본선에 오른 게 마지막이었다. 그해 칸(5월)과 베니스(8월)를 건너뛰고, 올해 또 베를린과 칸을 건너뛰었다.


한국영화가 국제영화제에서 외면받는 이유는 작품성이 모자라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대형 투자사들은 흥행에 치우쳐 돈이 되는 영화만 투자한다. 한국영화는 2012년 처음으로 관객 1억 명을 돌파하는 등 양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하지만 질적으로 떨어졌다. 예술영화, 저예산 영화, 독립영화의 비중이 해마다 줄어들어 2009년 전체 극장 매출 중 6.6%를 차지하던 것이 2013년 1.6%로 크게 축소됐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고 해서 재미가 보장된 것은 아니다”라며 “작품성은 흥행성, 대중성과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CJE&M과 롯데엔터테인먼트 등의 대형 투자배급사들은 철저히 이 논리에 따른다.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감독의 작품이라도 국내 정서상 재미가 없을 것 같으면 투자하지 않는다.


이번에 칸 영화제에 출품된 임권택 감독의 ‘화장’도 투자 대기업으로부터 외면받아 크라우드 펀딩(많은 사람들로부터 소액을 투자받는 것)을 추진하는 중이다. ‘시’로 칸영화제 각본상을 받은 이창동 감독의 신작 또한 투자자를 찾지 못해 지난해부터 제작이 미뤄지고 있다.


취화선(2002), 박쥐(2009) 등 과거 국제영화제 수상작들은 주요 배급사들의 제작비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근래에는 그런 사례도 찾아보기 힘들다. 올해 모스크바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정영헌 감독은 “지금 만약 올드보이를 영화로 제작하려고 한다면 아무도 선뜻 제작하지 않을 것 같다”고 얘기했다.


한국 최초로 3대 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을 차지한 김기덕 감독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그는 ‘피에타’로 2012년 베니스 국제영화제 대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아 세계에 한국 영화의 위상을 드높였다. 하지만 국내에서 그는 그저 돈 안 되는 독립영화 감독일 뿐이었다. 대형 투자배급사는 피에타에 관심이 없었고 그는 당시 직원 23명의 신생 배급사였던 '뉴(NEW)'를 통해 투자받았다.


“김기덕의 수상은 자랑스러우면서도 부끄럽다. 그의 수상에 한국 영화계가 해 준 것은 없다. 제작비의 대부분은 자비와 해외판매 수익으로 충당됐다.” 디렉터스컷 대표 이현승 감독의 말이다.

영화가 만들어져도 문제다. 상영할 곳이 없다. CJE&M과 롯데엔터테인먼트 등은 자신들이 투자한 영화를 자사의 영화관인 CGV와 롯데시네마 많이 배정한다. 이에 따라 피에타는 개봉관 확보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상영극장 대부분이 1개 관이었고 그나마 교차상영으로 운영했다.


한 독립영화 제작 관계자는 “영화배급을 함께하는 대형 멀티플렉스의 경우 자사 영화를 개봉하기에 급급하다”며 “특히 흥행작의 경우 너도나도 개봉관을 늘린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대기업이 영화의 투자, 제작, 배급을 동시에 맡으면서 독창성있는 신인감독들이 탄생하기 어렵게 됐다. 이번 칸 영화제처럼 임권택, 김기덕, 홍상수 등의 이름난 감독들의 작품이 본선에 진출하지 못할 경우 신인감독들이 그 자리를 채워야 한다. 하지만 신인이라 힘이 없는 이들은 자신의 뜻을 펼치기보다 흥행성을 요구하는 투자사의 기준에 따라 영화를 만든다.


최민식 황정민이 출연한 영화 '신세계'(2013년)의 경우 박훈정 감독을 바꾸지 않으면 투자할 수 없다는 투자사의 반대에 부딪혀 오랜 시간 난항을 겪었다. 쇼박스에서 최종적으로 거절당한 뒤 영화 자체가 무산된다는 말도 돌았다. 그러다 뉴(NEW)에서 시나리오를 수정하는 조건으로 투자가 결정됐다.


한국영화는 올해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지 못한 대신 비경쟁부문에서 세 편의 수확이 있었다. 먼저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정주리 감독의 '도희야'가 초청됐다. 정 감독은 다수의 단편영화로 경력을 쌓고 이번에 처음 만든 장편영화가 칸 영화제에 초청되는 영광을 누리게 됐다.


또한 영화를 전공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씨네파운데이션' 부문에 중앙대학교 학생인 권현주 감독의 '숨'이 이름을 올렸다. 더불어 액션, 스릴러, 공포 등의 장르영화 중 선정하는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창감독(본면 윤홍승)의 '표적'이 초청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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