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석 기자 stoneh@businesspost.co.kr2026-06-15 16: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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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미국과 이란이 종전 양해각서(MOU) 체결에 합의하면서 중동전쟁으로 커졌던 고유가·고환율 부담이 완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정상화에 따른 국제유가 안정과 원/달러 환율 하락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한국 경제를 압박했던 물가 부담도 일부 덜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 미·이란 종전 MOU 체결 합의로 고유가·고환율 부담 완화 기대가 커지는 가운데 정부는 청년 고용 회복에 정책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본부회의 겸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만 정부는 최근 청년 취업 감소와 상용직 축소 등 고용 부진이 현실화하면서 이재명 정부에 새로운 비상등이 켜졌다. 이번 고용부진은 ‘고용 없는 성장’과 함께 인공지능(AI) 전환에 따른 구조적 일자리 감소일 수 있어 정부의 고민이 더욱 깊은 것으로 보이다.
미국과 이란 정부는 15일(한국시각) 호르무즈 해협 개방과 미국의 대이란 해상봉쇄 해제를 포함한 종전 MOU 체결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두 국가는 19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공식 서명식을 열고 이란 핵 프로그램 처리와 대이란 제재 해제 등을 둘러싼 최종 합의를 위해 60일 동안 후속 협상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번 합의가 이행되면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분야는 에너지 시장이다.
한국은 원유 수입의 약 70%를 중동 지역에 의존하고 있어 중동발 에너지 가격 변동에 취약한 구조를 갖고 있다. 이번 합의는 최근 물가 상승을 자극했던 유가 부담을 다소 완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최근 국내 물가는 중동전쟁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재정경제부가 12일 발표한 6월 최근경제동향(그린북)에 따르면 5월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1% 상승해 4월(2.6%)보다 상승폭이 확대됐다. 특히 석유류 물가는 24.2% 올라 전체 물가 상승을 이끄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했다.
정부 역시 중동전쟁이 에너지 가격 변동성과 공급망 부담을 키우고 있다고 진단해왔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12일 비상경제본부 회의에서 “중동전쟁에 따른 물가·공급망 부담과 환율·금융시장 변동성이 지속되고 있다”며 “중동전쟁 영향을 최소화하고 민생 안정을 위해 총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미국과 이란의 종전 MOU 체결로 호르무즈 해협의 다시 열리면 정부의 경제 대응 전략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유가 급등을 전제로 추진했던 물가안정 대책과 에너지 비용 지원, 공급망 대응 정책의 부담은 다소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정부가 최근 가장 경계하는 분야는 고용시장이다.
재정경제부는 6월 그린북에서 최근 3개월 동안 사용했던 ‘경기 하방 위험’ 표현을 삭제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 호조와 소비·기업심리 개선 등을 반영한 결과로 풀이된다.
실제로 5월 수출은 반도체·컴퓨터·선박 수출 증가에 힘입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3.2% 늘었다. 소비자심리지수도 4월보다 6.9포인트 상승한 106.1로 과거 장기평균(100)을 넘어섰다.
하지만 같은 시기 취업자 수는 4만 명 감소하며 1년5개월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특히 청년층 취업자는 1년 전보다 25만5천 명 줄어 코로나19 충격기였던 2021년 1월 이후 최대 감소폭을 기록했다.
고용의 질을 보여주는 상용직 감소도 심상치 않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5월 들어 1년 이상 일할 것으로 예상되는 취업자인 상용근로자는 지난해 5월보다 7천 명 감소해 1999년 12월 이후 처음으로 감소세를 보였다. 코로나19 시기에도 유지됐던 상용직 증가 흐름이 26년5개월 만에 꺾인 것이다.
특히 감소가 청년층에 집중됐다는 점이 정부를 긴장시키고 있다.
20대 상용직은 16만4천 명, 30대 상용직은 3만4천 명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업종별로는 20대 정보통신업 상용직이 5만7천 명 줄며 제조업보다 큰 감소세를 보였다. 30대의 경우 정보통신업 상용직은 일부 늘었으나, 전문·과학·기술서비스업 상용직이 7만6천 명 감소하며 업종별 양극화를 보였다.
정보통신업과 전문기술서비스업은 청년층 선호도가 높은 대표적 양질의 일자리로 꼽힌다. 동시에 생성형 인공지능(AI) 확산과 디지털 전환의 영향을 크게 받는 업종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기업들이 신입 채용보다 경력직 채용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진 데다 AI가 일부 반복 업무를 대체하면서 사회 초년생들의 노동시장 진입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도 최근 고용 부진을 단순한 경기 순환 문제가 아닌 구조적 변화의 신호로 보고 있다.
▲ 5월 경제활동인구 현황. <국가데이터처>
김민석 국무총리가 9일 주재한 제3차 청년정책 관계장관회의에서 정부는 기업 지원을 일자리 창출과 연계하는 ‘기업지원-일자리 연계형 재정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지역 청년을 채용하는 비수도권 중소기업과 국내 복귀(유턴) 기업에 보조금 및 정책금융 우대를 집중하고, AI·디지털화 등 산업 전환 과정에서 기존 노동자의 고용 유지와 직무 전환을 선제적으로 지원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다.
특히 정부는 국비 지원으로 양성한 청년 AI 인재를 중소기업과 연결하는 사업도 추진하기로 했다. 청년에게는 실무 경험과 취업 기회를 제공하고 중소기업에는 AI 전문인력을 공급해 AI 확산에 따른 ‘고용 없는 성장’ 위험을 완화하겠다는 취지에서다.
구 부총리도 최근 비상경제본부 회의에서 “청년고용 상황 개선에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두고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앞서 4월 발표한 ‘청년뉴딜 추진방안’에서 AI·디지털 전환과 경력직 채용 확대를 청년 고용 부진의 주요 원인으로 진단하고, AI·반도체 분야 직업훈련과 일경험 확대 등을 통해 청년층의 노동시장 진입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서은숙 상명대학교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이날 YTN ‘뉴스스타트’ 인터뷰에서 최근 경기 회복 신호가 나타나고 있지만 고용 상황은 별도로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최근 국내총생산(GDP)이 큰 폭으로 증가했지만 상당 부분은 반도체 수출 가격 상승이 반영된 결과”라며 “생산능력 확대에 따른 성장이라기보다 반도체 호황이 명목 GDP를 끌어올린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반도체 산업은 경제 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만 고용 유발 효과는 제한적”이라며 “경제지표는 개선되고 있지만 고용은 저조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이란 종전 MOU가 중동발 충격을 다소 완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지만, 청년층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고용 부진과 ‘고용 없는 성장’ 우려를 해소할 수 있을지는 이재명 정부 경제정책의 핵심 시험대로 떠오르고 있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