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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
하버드대 기숙사의 한방에 대학생 4명이 모였다. 전공은 각기 달랐다. 한 명은 경제학과 학생이었고 다른 한 명은 문학과 역사를 전공하는 잘생긴 은발의 동성애자였다.
또 다른 한 명은 브라질 재벌가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유학왔다. 수학을 전공한 그는 체스를 즐겨했다.
방 주인은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천부적 재능을 보여 컴퓨터 화면 앞에 앉아 프로그램 코딩을 하느라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는 컴퓨터만 들여다 보는 ‘오타쿠’족이 아니었다. 머릿속에 담긴 수많은 사업 프로젝트를 친구들과 공유하고 인맥을 만드는 데도 관심이 많았다.
이들은 수많은 아이디어를 나누었는데 이 과정에서 한 아이디어가 불쑥 튀어나왔다. 글로벌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페이스북’은 이렇게 탄생했다.
컴퓨터공학이 전공이었던 방 주인 마크 저커버그는 페이스북 CEO가 됐다. 경제학과 학생이던 더스틴 모스코비츠는 페이스북의 첫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맡았다.
독창적 아이디어는 처음부터 완성된 형태로 나오지 않는다. 페이스북도 처음에 그저 하버드생들을 위한 온라인용 학생부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저커버그와 친구들의 작은 아이디어는 수많은 토론과 시행착오를 거쳤고 진화해 나갔다. 페이스북의 공개 프로필 작성, 친구목록 공개, 이메일 초대 등 핵심기능은 저커버그 혼자서 만든 게 아니다.
전공과 관심사, 취미도 제각각인 저커버그의 친구들이 없었다면 페이스북의 오늘은 없었을 것이다.
◆ 인문학적 통찰로 세상을 바꾼 글로벌 CEO들
산업의 중심이 기존 제조업 중심에서 정보화지식산업으로 넘어가면서 융합은 이제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필수요소다. 융합의 핵심은 무엇보다 사람을 통해 이뤄진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공학과 인문학적 통찰을 갖춘 스티브 잡스 같은 융합형 인재를 찾는 것은 물론, 다양한 학문적 기반과 소양을 갖춘 인재를 키우는 데도 시간과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주문한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두뇌들의 격전지인 미국의 실리콘밸리는 기업의 핵심 경쟁력이 다양성과 융합에 있다는 수많은 사례를 보여준다.
리드 호프먼 링크트인 CEO는 철학 전공자지만 사이트 메뉴 단 4개만으로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IT기업을 탄생시킨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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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드 호프먼 링크트인 대표 |
링크트인은 가입자가 2억2500만 명에 이르는 세계 최대 비즈니스 SNS서비스이며 2011년 뉴욕 증시에 상장돼 시가총액이 89억 달러에 이른다.
호프먼은 미국 스탠퍼드와 옥스퍼드대에서 인지과학과 철학을 전공하며 학자의 꿈을 키우다 IT기업가로 변신했다. 그가 인문학에서 통찰력을 키우지 못했다면 링크트인의 성공은 없었을 것이다.
링크트인이 2011년 공개한 아이폰용 애플리케이션의 메뉴는 단 4개였다. 단순하고 직관적인 서비스 디자인은 호프먼이 인지과학을 전공해 인간심리를 꿰뚫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식품업계의 ‘스티브 잡스’로 불리는 글로벌 기업 햄프턴크리크푸드의 조시 테트릭 대표는 아프리카를 떠돌다 식량문제에 관심을 품고 식물원료에서 인공달걀을 개발했다.
테트릭은 콜레스테롤과 조류인플루엔자에 대한 걱정을 없애기 위해 개발한 ‘닭 없는 달걀’, 그리고 달걀을 이용한 마요네즈로 설립 3년 만에 연매출 3천만 달러를 올리는 회사를 키워냈다.
이 회사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아시아 최고부자인 리카싱 청쿵그룹 회장 등 억만장자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
테트릭은 미국 코넬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했으며 미시간대 로스쿨을 다녔다. 그의 사업적 아이디어는 사회학 전공자로서 인류의 식량문제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했다. 그가 실험실이나 연구실에 갇혀 있기만 했다면 인공달걀 ‘비욘드 에그’는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달걀없는 마요네즈 ‘저스트 마요’의 상품화에 몰두하고 있다. 테트릭은 달걀 노른자 대신 식물 추출 단백질을 사용해 기존 마요네즈와 똑같은 마요네즈맛을 개발했고 콜레스테롤을 없앤 이 친환경제품은 출시 1년 만에 월마트, 테스코 등 대형 유통매장 진입에 성공했다.
실리콘밸리의 ‘괴짜’로 불리는 앨런 머스크 테슬라모터스 CEO의 학부 전공은 경영학과 물리학이었다.
소셜커머스 전문 글로벌기업 그루폰 창업자로 유명한 앤드류 메이슨은 노스웨스턴에서 음악을 전공했다.
◆ 이과 쏠림, 기업 경쟁력에 독이 될 수도
한국CXO연구소가 국내 1천대 기업 대표이사 111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이공계 출신이 506명으로 45.3%, 비이공계 출신이 554명으로 49.6%, 기타가 56명으로 5.0%였다.
아직은 근소하게 비이공계 출신이 많지만 비이공계의 대부분은 경영학(231명)과 경제학(78명) 전공자들이다. 인문학의 뼈대를 이루는 소위 ‘문사철’ 전공자는 영문학(15명)을 제외하면 찾아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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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최근 들어 기업들의 이공계 쏠림이 심해지면서 10~20년 뒤 주요기업들의 고위직에서 비이공계를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한 대기업 임원은 “경기가 안 좋아 채용인원이 줄어들고 있는데 인문계 출신은 입사한 뒤 용어도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다”며 “곧바로 쓸 수 없는 지원자는 부담스럽다”고 말한다.
하지만 제조업 기반의 국내 대기업 최고 의사결정권자들 가운데 인문학 전공자들도 적지 않다. 이는 최근 기업경영 전면에 부상하고 있는 재벌가 3세 경영인들이나 전문경영인들도 마찬가지다.
첨단 전자산업을 이끄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서울대에서 동양사학을 전공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대우조선해양 고재호 사장은 고려대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나 조선회사에 입사해 사장까지 올랐다. 권오갑 사장은 한국외대에서 포르투갈어를 전공했으나 현대중공업을 이끌고 있다.
한 기업 컨설팅 전문가는 “국가경쟁력을 위해 많은 이공계 우수인재를 양성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지나친 쏠림은 장기적으로 기업경쟁력을 약화할 것”이라며 “산업 융복합화와 맞물려 학문간 융합도 중요하게 보는 게 세계적 추세인 만큼 다양한 전공과 소양을 갖춘 인재들을 선발하고 재교육하는 데도 시간과 비용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유통업체로 미국에서 가장 많은 인원을 고용하고 있는 월마트는 최근 취업교육에 5년 동안 1억 달러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월마트는 “현재 취업교육 시스템은 고장난 상태”라며 앞으로 7개 비영리기관을 통해 직업훈련과 취업에 도움을 주는 각종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자격증을 수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