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재판부가 성폭력이 일어난 순간과 그 공간에서의 유형력(有形力, 형태를 띠고 있는 힘) 행사에만 초점을 맞춰 강간을 놓고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었던 상황을 폭넓게 살피는 최근 대법원 판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14일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열린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1심 무죄 선고에 관한 기자회견에서 팻말을 들고 있다.<연합뉴스>
공동대책위원회는 “검찰이 즉각 항소해야 한다”며 “항소심, 대법원까지 대응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혜정 한국 성폭력 상담소 부소장도 이번 판결을 놓고 “재판부의 논리는 피해자가 성인 여성으로 보이면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라며 “구체적 현실을 들여다보는 것이 사법부의 역할인데 사법부가 입법부로 책임을 미뤘다”고 말했다.
김씨의 변호를 맡은 정혜선 변호사는 “피해자의 진술이 법리나 원칙에 의심할 만한 요소가 없고 주요 증인들의 증언도 있는데 무죄 선고가 나온 것을 납득할 수 없다”며 “재판부가 피해자의 진술을 너무 쉽게 배척하고 성폭력 사건의 특성이나 이번 사건의 사회적 의미에 관한 이해 없이 판결을 내렸다”고 봤다.
이번 판결로 앞으로 여성들이 조직에서 겪는 성추행에 소극적으로 대처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번 판결이 성폭력을 인지하고 사회에 알리기까지 수백 번 고민을 반복할 피해자들에게 침묵을 강요하게 될 것”이라며 “재판부가 성폭력 사건의 강력한 증거인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부정하고 업무상 위력에 관한 판단을 엄격하고 좁게 해석했다”고 비판했다.
배복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대표도 “권세나 지위를 지닌 사람이 소위 말하는 갑횡포를 성적으로 휘두르는 것을 법원이 인정한 격”이라며 “이 판결을 기다린 많은 사람을 좌절시킨 꼴이고 미투 운동도 굉장히 위축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조병구)는 14일 안 전 지사의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혐의 등을 놓고 “이 사건은 정상적 판단력을 갖춘 성인남녀 사이의 일이고 저항을 곤란하게 하는 물리적 강제력이 행사된 구체적 증거가 보이지 않아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김지은씨는 입장문을 통해 "안희정씨의 범죄 행위를 법적으로 증명할 것"이라며 항소해 끝까지 싸우겠다는 뜻을 밝혔다. [비즈니스포스트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