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정 사장은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과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잇달아 대우조선해양 노동조합(노조)에 경고발언을 한 뒤에 고민이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24일 서울 영등포구 KDB산업은행 본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우조선해양이 경영 정상화의 기반을 닦았다고 확신하기에는 이르다”며 “(노조가) 이성적으로 판단해 파업을 벌이지 않으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KDB산업은행은 올해 1분기 말 기준으로 대우조선해양 지분 55.7%를 보유하고 있는 최대주주다.
이에 앞서 최 위원장은 19일 노조의 파업 움직임에 “노조만 고통을 겪은 것처럼 약속을 번복하고 쟁의행위를 하는 것은 많은 이해관계자가 고통을 참아가며 (대우조선해양 지원에) 동참한 것을 무산시키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노조는 회사가 2017년에 이어 올해도 흑자를 낼 정도로 정상궤도에 들어서고 있는 만큼 기본급 4.11%를 인상해줘야 하며 노동강도에 따른 보상체계를 강화할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회사가 임금 동결에서 더 나아가 임금 10% 반납까지 주장하자 노조는 산별노조로 전환한 데 이어 파업 등을 벌일 수 있도록 모든 행정적 절차까지 마쳤다.
이 회장과 최 위원장의 발언은 표면적으로 노조를 겨냥한 것이지만 정 사장에게 노조에 양보해서는 안된다는 압박의 의미로도 풀이될 수 있다.
그러나 정 사장은 노조를 설득할 무기가 별로 없다.
대우조선해양은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 5조8천억 원 규모 자구계획안의 54% 정도를 이행했다. 2020년까지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은 만큼 정 사장이 기본급 인상 등을 요구하는 노조의 요구를 수용하기는 어렵다.
정 사장이 KDB산업은행 등 채권단을 설득하는 데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그동안 조심스럽게 제기됐지만 이동걸 회장과 최종구 위원장의 발언으로 이런 가능성은 완전히 차단된 셈이다.
노조도 정 사장의 입장을 이해하고 있는 듯 올해 임단협과 관련해 정 사장이나 사측이 아닌 KDB산업은행 등을 향한 비판에 힘을 쏟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이 회장이나 최 위원장의 발언은 KDB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개입해 노사관계를 악화하는 방향으로 압박을 가하는 것”이라며 “KDB산업은행 등이 노사의 자율적 임단협을 보장해 전문경영인을 향한 신뢰를 높일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 사장으로서는 노조가 여름휴가와 집행부 선거 등을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임단협에서 시간을 벌 수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우조선해양 노사는 올해 임단협 교섭을 여름휴가 이후에 마저 진행하기로 최근 결정을 내리고 교섭을 중단했다. 대우조선해양의 여름휴가는 7월30일부터 8월10일까지다.
여름휴가가 끝나고 한 달 정도 지나면 곧바로 노조가 선거 국면에 접어들게 된다. 대우조선해양 노조는 홍성태 17대 위원장의 임기가 9월 말에 끝나는 만큼 휴가 뒤 곧바로 위원장 선거 국면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10월 집행부 선거까지 현재 집행부의 교섭 동력이 약해질 수 있다.
그러나 새 노조 집행부의 성향에 따라 대우조선해양의 노사관계는 대결 양상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 사장에게 올해 임단협은 연말까지 끌고 가야 할 지난한 숙제가 될 수도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