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판은 두께 6mm 이상의 두꺼운 철판을 말하는데 선박용 철강재로 주로 쓰인다. 조선사의 선박 제조원가에서 후판 비중은 15~20%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큰데 현대중공업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후판 등 강판 유통가격은 톤당 78만2천 원이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원칙대로라면 철강회사와 조선사들의 올해 하반기 후판 가격 협상은 6월에 끝났어야 하지만 아직까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철강회사는 올해 하반기 조선사에 공급하는 후판 가격을 기존보다 톤당 5만 원 정도 인상하려는 것으로 파악되는데 이렇게 된다면 다섯 반기 연속으로 후판 가격이 오르게 된다. 포스코와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철강회사들은 조선사와 후판 가격을 반기에 한 번씩 협상하는데 2016년 하반기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선박용 후판 공급가격을 꾸준히 올려왔다.
철강회사들은 그동안 조선사들의 어려운 처지를 고려해 가격 인상을 자제해왔다며 후판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철강회사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상선 발주가 줄어들고 해양플랜트부문 등에서 조선3사가 수조 원 규모의 손실을 보자 2013년 이후부터 3년 정도 후판 가격을 동결했다.
2016년 하반기부터 후판 공급가격을 인상했지만 이 역시 비조선용 후판 가격 인상폭에는 훨씬 못 미친다는고 철강회사는 설명한다.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철강회사는 그동안 후판 원재료 가격이 올라 조선용 후판부문에서 손실을 봐왔는데 더 이상 이런 상황을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선3사로서는 후판 가격이 또다시 오르면 실적 회복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다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곽지훈 대신증권 연구원은 “조선3사의 실적 부진이 최대 2019년 4분기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며 “후판 가격이 2016년 상반기 바닥을 치고 지금까지 계속 오르고 있는 반면 선박 가격은 오름세가 더디기 때문”이라고 파악했다.
조선사들은 상황이 나아지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수주목표 달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대우조선해양을 뺀 대부분의 조선사는 올해도 영업적자가 예상된다며 후판 가격을 인상 요구를 들어주기 어렵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4분기에 이어 올해 2분기까지 세 분기 연속으로 영업손실을 봤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흑자기조를 이어가지만 지난해 상반기와 비교하면 영업이익이 크게 부진했을 것으로 파악된다.
선박 수주 가격이 여전히 회복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조선사들이 후판가격 인상에 난색을 표하는 이유다.
선박 가격을 지수화한 클락슨 신조선가지수는 2014년 말 138포인트에서 2017년 3월 121포인트까지 떨어졌다가 현재 6월에 128포인트로 오르면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조선3사가 주력하고 있는 LNG(액화천연가스)운반선과 초대형 컨테이너선 가격은 1년째 제자리걸음하고 있고 초대형 원유운반선 가격도 소폭 올랐을 뿐이다.
조선사들은 사업 특성상 현재 후판 가격도 수주가를 고려하면 비싸다고 주장한다. 선박을 수주해 인도하기까지 적게는 1년에서 길게는 3년 가까이 걸린다. 과거 낮은 가격에 수주했던 배를 지금 건조하기 때문에 지금도 수주 때 예상한 가격보다 비싼 후판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조선3사가 중국이나 일본 철강회사로부터 철강제품을 공급받기도 쉽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대형 조선사 관계자는 “조선3사가 후판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중국이나 일본 등으로부터 후판을 일부 수입하고 있지만 중국산 후판의 품질이 한국산 후판보다 나쁜 데다 지금은 가격도 중국산 후판이 더 비싸다”며 “일본 철강회사도 일본 조선소에도 납품해야하기 때문에 한국 조선사에 공급하는 후판물량을 갑자기 늘리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이라 조선3사는 철강회사를 향해 후판 인상시기를 조금만 더 늦춰줄 것을 간곡히 요청하고 있다.
조선3사가 가입되어 있는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는 16일 보도자료를 내고 “후판 가격 인상은 조선사들의 경영여건상 감내하기가 어려워 생존에 위협이 된다”며 “철강회사들의 상황은 이해가 되지만 조선사 경영이 회복돼 정상화할 때까지는 후판 가격 인상을 미뤄 함께 사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