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금융권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현대자동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을 놓고 ‘신의 한 수’, ‘정공법’이라는 평가도 나오지만 문재인 정부가 강조해온 금융과 산업의 분리 문제를 담지 않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현대차그룹은 지주회사체제가 아닌 지배회사 구조를 선택하면서 ‘대주주→지배회사→완성차→계열사’로 이어지는 수직적 사업구조 안에 금융계열사를 품에 안고 갈 수 있게 됐다.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가 되려면 총자산이 5천억 원을 초과하고 총자산 가운데 자회사의 지분가액이 자산 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50% 이상이어야 한다.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두기로 한 존속 현대모비스의 총자산 가운데 자회사 요건을 충족시키는 현대차의 지분가액은 22%로 지주회사 요건에 해당되지 않는다.
현대모비스가 발표한 IR자료에는 현대자동차 그룹이 완성차와 금융계열사 등 개별 사업군들의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지배구조를 짰다고 설명한다.
현대차그룹은 금융계열사들로 현대카드, 현대캐피탈, 현대차투자증권, 현대라이프생명 등을 두고 있다.
대기업이 계열사 금융회사를 사금고화는 것을 막기 위한 ‘금산분리 규제’는 ‘순환출자 해소’만큼이나 지배구조 개편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슈다.
현대차그룹이 내놓은 지배구조 개편안은 다른 대기업들이 순환출자를 해소하는 방안으로 ‘지주회사체제’를 선택하면서 금산분리 원칙도 지키게 된 것과 다르다.
롯데그룹은 지주회사체제를 선택했는데 공정거래법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금융계열사 지분을 2019년 10월까지 처리해야 하는 만큼 금융계열사를 매각하는 방안과 일본롯데에 넘기는 방안, 단순 금융지주사로 전환하는 방안 등 여러 시나리오를 두고 고심하고 있다.
롯데그룹은 롯데카드, 롯데캐피탈, 롯데손해보험 등을 금융계열사로 두고 있다.
송선재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현대차그룹은 지주회사로 전환했을 때 얻게 되는 혜택과 비용을 동시에 고려했을 때 실익이 크지 않다고 판단해 지주회사 전환을 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지주회사로 전환하면 대표적으로 그룹 내 금융계열사 지분매각 문제가 생기고 증손자회사 소유 규제 이슈도 생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이 보유하고 있는 금융계열사의 자산가액은 61조 원으로 전체 현대차그룹 자산의 32%를 차지하는 만큼 놓치기가 쉽지 않았을 수 있다.
더욱이 자동차 판매에서 금융이 차지하는 비중은 갈수록 커지고 있는 점도 감안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고객이 현대차나 기아차를 살 때 현대캐피탈이나 현대카드를 통해 구매를 한다. 현대캐피탈이 현대차와 기아차 등 자동차 금융을 통해 올리는 할부금융과 리스 비중은 2016년 말 기준으로 각각 92.7%, 70.2%로 집계됐다.
또 현대라이프생명은 퇴직연금 가운데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확정급여(DB) 퇴직연금 적립금액이 지난해 9월 기준 1조1767억 원으로 집계됐는데 이 가운데 계열사 물량이 무려 98.32%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차투자증권도 지난해 퇴직연금 적립금액 8조4945억 원 가운데 85%가 계열사 물량이다.
현대차그룹은 금융위원회가 추진하는 '금융그룹 통합감독 제도'의 대상이 됐는데 금융계열사들의 이런 내부거래 문제들이 앞으로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는 7월부터 금융계열사 자산규모가 5조 원 이상인 7개 그룹을 대상으로 금융그룹 통합감독을 시범운영한다.
금융위는 금융그룹 통합감독제도가 시행되면 그룹 계열사 사이의 내부거래 비중과 주요 내부거래 현황 등을 낱낱이 보고하도록 했다.
참여연대는 29일 논평을 내고 "현대차그룹의 순환출자를 어느정도 해소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도 "문어발식 다각화와 금산분리 문제를 비롯한 경제력 집중 억제를 위한 소유지배구조 개편문제는 담지 않았다는 점에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개혁에는 크게 미흡하다"고 말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이 이번에 내놓은 지배구조 개편안은 정부의 지배구조 개선 압박에 최소한 행동을 취한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