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의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정치권의 목소리는 높고도 깊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대선주자들이 한 목소리를 낸다. 국회에서도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강화하는 법안이 잇따라 발의되고 있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의 주무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도 현 규정을 엄격해 적용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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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
대기업들은 그동안 합병이나 지분매각 등으로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피해왔다. 그러나 이번 조기대선 국면에서 일감몰아주기의 반감이 그만큼 높다는 점을 실감한 만큼 대기업들은 대책마련을 놓고 부심할 수밖에 없게 됐다.
16일 국회에 따르면 20대 국회에서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모두 3건 발의돼 있다.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은 일감몰아주기 규제요건을 상장사와 비상장사 구분없이 지분 20%로 규정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규제에서 제외되는 사유를 효율성 증대, 보안성, 긴급성을 요하는 거래 등으로 명확히 규정했다.
김동철 국민의당 의원은 규제을 가하는 지분요건을 10%로 한층 더 강화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분요건의 경우 20%로 하되 간접지분율까지 포함하도록 해 규제대상을 대폭 늘리는 방안을 발의했다.
바른정당은 아직 일감몰아주기 관련 법안을 내놓지 않았으나 대선주자인 유승민 의원이 일감 몰아주기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유 의원은 총수일가 개인회사 설립을 금지하고 기존 개인회사의 그룹 내 내부거래를 제재하겠다는 가장 강화된 방안을 제시했다.
이런 여러 규제강화 방안 가운데 가장 온건한 채이배 의원안을 적용한다 해도 10대 그룹에서 현대차그룹의 이노션, SK그룹의 SKD&D, 롯데그룹의 롯데쇼핑·롯데제과, GS그룹의 GS건설, 한진그룹의 한진칼 등이 새롭게 일감몰아주기 규제대상에 오를 수 있다.
특히 이노션은 2015년 기준으로 내부거래 비중이 53.12%, 한진칼은 내부거래 비중 92.49%로 매우 높은 편이다.
이 회사들은 모두 오너일가의 그룹 지배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곳들이기 때문에 쉽게 지분구조를 바꿀 수 없다. 또 실적에도 그만큼 민감한 편이다. 이 때문에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피하는 노력도 간단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감몰아주기와 관련한 지분의 조건이 더욱 강화되는 김동철 의원안을 적용할 경우 더 많은 기업들이 곤란을 겪게 된다.
삼성그룹의 삼성SDS(총수일가 지분 17.01%), 현대차그룹의 현대엔지니어링(16.40%)·현대오토에버(19.46%), SK그룹의 SK케미칼(17.12%), LG그룹의 범한판토스(19.90%)·LG상사(11.93%), 롯데그룹의 롯데상사(17.37%)·롯데정보통신(24.77%)·롯데칠성음료(12.50%) 등이 총수지분 10% 이상으로 일감몰아주기 규제 기준인 내부거래 비중 12%를 넘는 곳들이다.
공정위는 올해 초 ‘총수일가 사익편취 금지 규정 가이드라인’을 발표해 일감 몰아주기 규제와 관련한 상세한 지침을 내렸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의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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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이배·김동철 국민의당 의원. |
공정위는 일감몰아주기가 연 200억 이상, 평균 매출의 12% 이상인 경우 경쟁제한성이 입증되지 않고도 법을 적용하겠다는 원칙을 분명히 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대기업집단 기준을 자산 10조 원으로 높였으나 일감 몰아주기 규제는 이전과 동일하게 5조 원 이상 기업에 적용하기로 했다.
공정위는 일감몰아주기 규제에서 제외되는 예외 사유도 효율성 증대, 보안성, 긴급성 등 구체적으로 정했다. 효율성 증대는 효과가 가까운 시일 내에 발생하는 것이 명백한 경우, 또 다른 회사와 거래로 달성하기 어려운 효율성만 인정된다.
보안성은 일정한 보안 장치를 마련해 정보 보안을 유지할 수 있는 경우는 인정되지 않는다. 긴급성 역시 납품 기일 준수 등 회사 내부의 사업상 필요는 예외사유로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현재 10대 그룹 가운데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적용받을 수 있는 계열사가 가장 많은 곳은 GS그룹이다.
GS그룹은 오너 일가가 100% 지분을 보유한 개인회사만 해도 보헌개발 삼정건업 승산 엔씨타스 프로케어 GS네오텍 등 6곳이나 있는데 이 가운데 보헌개발, 승산, 엔씨타스, GS네오텍은 일감 몰아주기 규제요건을 충족한다. 이 밖에도 GS, 옥산유통, GSITM, 켐텍인터내셔날 등 모두 8곳이 일감몰아주기 규제대상 계열사다.
두산그룹은 네오플럭스와 네오홀딩스, 두산 등 3곳으로 그 뒤를 따른다. 롯데그룹 한화그룹 한진그룹에서 각각 2곳, 삼성그룹 SK그룹 LG그룹에서 1곳이 일감몰아주기 규제대상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