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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라카미 하루키. |
갓 구워 나온 빵을 기다리듯 따끈따끈한 새 책을 사려는 사람들로 서점 앞에 줄을 세우는 작가. 아이돌 음반도 아닌데 발매시각을 앞두고 카운트다운을 외치게 만드는 작가. 책에 쓰인 문장 한 줄로 온 나라에 역사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작가.
올해 68세인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힘이다. 하루키 현상은 일본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신작 ‘기사단장 죽이기’에서도 여전한 듯 보인다.
7일 출판업계에 따르면 하루키의 장편 기사단장 죽이기의 국내 판권을 따내기 위해 출판사들이 치열한 물밑경쟁을 벌이고 있다.
기사단장 죽이기는 하루키가 '1Q84'를 낸지 햇수로 7년 만에 선보인 장편소설이다. 24일 일본에서 발간돼 서점에 깔린 지 사흘 만에 48만여 부가 팔린 것으로 전해졌다. 출간과 동시에 일본 주요서점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것은 물론이다.
국내 출판계도 하루키 신작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이번 소설의 판권입찰은 3월 안에 이뤄질 것으로 알려졌는데 문학동네를 비롯한 내로라하는 국내 대형출판사들이 입찰경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하루키는 최근작이었던 1Q84를 비롯해 소설은 물론 에세이까지 국내 출간과 동시에 날개 돋힌 듯이 팔리곤 했다. 교보문고가 2005년부터 10년 동안 집계한 결과에서 최다 판매 작가는 하루키였다.
출판계 관계자들은 지금까지 국내에서 출판된 하루키의 책이 500만 부 이상 팔린 것으로 추산한다. 1Q84의 경우 첫 출간 당시에만 70만 부가 팔렸고 2013년에 나온 에세이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도 50만 부가 넘게 판매됐다.
하루키는 근래 들어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아직까지 수상한 적이 없다. 하지만 대중성에서만큼 독보적 위치를 차지한다.
국내 출판사들도 하루키 소설의 판권을 따내기 위해 과열경쟁이 반복됐는데 이번 소설의 경우 선인세만으로 20억 원을 넘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돈을 많이 써낸다고 해서 낙찰이 되는 것도 아니다. 출판사들이 선인세를 포함해 마케팅 계획 등 제안서를 내면 하루키가 직접 업체를 낙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사단장 죽이기는 초상화 화가인 주인공 ‘나’가 아내에게 갑작스럽게 이별을 통보받은 뒤 불가사의한 사건에 휘말리며 겪는 에피소드를 담았다. 하루키는 전작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신작에서도 특유의 감성적이면서도 재치있는 문체에 추리와 판타지, 성적 요소 등 대중적 서사기법을 적극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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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의 한 서점에서 2월24일 오전 0시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장편소설 '기사단장 죽이기' 발매행사가 열리고 있다. <뉴시스> |
아사히신문 등 일본언론에 따르면 하루키 신작이 첫 판매됐던 2월24일 도쿄 산세이도서점 본점 앞에는 책을 먼저 사려는 사람들이 오전 0시부터 줄을 섰다.
또 서점 오픈시각이 다가오자 카운트다운을 외치며 하루키의 신작을 쌓아올려 만든 2m높이를 감싼 검은색 덮개가 벗겨지자 함성과 박수가 터져나오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하루키는 와세다대학 문학부 연극과를 졸업하고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등단했다. 이후 ‘상실의 시대’ ‘해변의 카프카’ ‘1Q84’ ‘색채가 없는 다자키 스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 이르기까지 30년 넘게 활발히 작품활동을 하며 세계적 작가 반열에 올랐다.
이번 신작은 소설 속에 과거 난징 학살사건을 담아 사회적 논란에도 불을 지폈다. 주인공이 나누는 대화에 "일본군이 항복한 병사와 시민 10만~40만 명을 죽였다"는 내용을 놓고 일본에서 우익단체 등으로부터 집단적인 비난을 받은 것이다.
하루키는 '무국적 작가'란 평가를 받을 정도로 소설 속에 역사인식이나 현실관을 직접적으로 담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소설 바깥에서는 근래 들어 일본의 과거사 논란 등을 포함해 원전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이슈에 부쩍 목소리를 내는 일이 많아졌다. 이 때문에 일본 우익 보수주의자들은 하루키가 노벨상 수상을 노리고 있다는 비난도 내놓고 있다.
기사단장 죽이기의 국내 출간은 대략 여름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