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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및 관리의 '설계자'로 지목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며 취재진의 질문세례를 받고 있다. <뉴시스> |
박영수 특별검사의 박근혜 게이트 수사가 중대한 기로에 섰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된 상황에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구속영장 발부 여부에 앞으로 특검 수사의 성패가 달려있다.
블랙리스트 수사는 재벌들의 뇌물죄 수사와 함께 박 대통령을 겨냥한 박영수 특검의 ‘양대 칼날’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구속영장이 발부될 경우 대통령을 향한 수사는 급물살을 타게 되지만 반대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처럼 기각될 경우 박근혜 게이트 수사 자체가 좌초될 수도 있다.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은 20일 오전 10시경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해 기자들의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은 채 굳은 표정으로 법원 안으로 들어갔다.
특검은 정권에 비판적인 문화예술계 인사를 지원에서 배제할 의도로 작성된 블랙리스트가 민주주의 근간을 바닥에서부터 훼손하는 중대범죄로 보고 있다.
블랙리스트 작성이 헌법상 양심의 자유(헌법 19조) 및 언론.출판의 자유(21조), 학문과 예술의 자유(22조)를 심각하게 침해했다는 것이다.
특검은 그동안 수사과정에서 확보한 관련자 진술과 물증을 통해 두 사람의 혐의가 충분히 소명됐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특검은 청문회 태도 등을 봤을 때 두 사람이 증거인멸 우려가 높은 데다 박 대통령 수사를 위해서도 신병확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전 실장과 조 장관 측 변호인은 혐의가 충분히 소명되지 않았는데도 특검이 무리하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맞섰다.
김 전 실장은 블랙리스트를 놓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지만 특검은 혐의를 뒷받침하는 정황을 상당수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실장은 특검수사를 앞두고 증거인멸을 시도한 흔적도 있다.
특검이 지난해 12월 26일 김 전 실장 자택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CCTV 영상과 서류, 휴대전화 등은 상당량의 정보가 이미 삭제된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규철 특검보도 “압수수색 과정에서 일부 증거인멸을 한 정황이 포착됐다”고 말했다.
김 전 실장은 블랙리스트 작성에 비협조적인 문체부 관계자의 사표를 받으라고 지시한 혐의도 받는다.
조 장관은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재직하던 2014년 6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김 전 실장의 지시를 받아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정무수석실은 블랙리스트의 작성의 ‘진원지’로 꼽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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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
조 장관은 정무수석 시절 어버이연합 등 우익단체를 동원해 세월호 유족들에 대한 관제데모도 조직한 혐의도 받고 있다. 조 장관은 이들 단체가 시위에서 외칠 구호도 챙기고 정부 비판 세력에 대한 고소.고발까지 간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앞서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4명에 구속영장이 청구됐는데 법원은 이 중 3명에게 영장을 발부했다.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과 정관주 전 차관, 신동철 전 비서관은 구속된 반면 김상률 전 교육문화수석은 구속을 면했다.
특검은 박 대통령이 직접 두 사람을 통해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했을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특검이 블랙리스트 수사에 공을 들이는 것은 대통령 탄핵심판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수사를 통해 블랙리스트 작성에 박 대통령이 직접 개입한 게 사실로 드러날 경우 대통령이 헌법을 정면으로 위반한 사실이 증명되는 셈이다.
영장심사 결과는 이날 밤 늦게나 21일 자정께 나올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은 이날 서울구치소에서 수의로 옷을 갈아입고 구속 여부가 결정될 때까지 대기한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재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