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재 기자 piekielny@businesspost.co.kr2025-05-08 11: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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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5월 말 금융통화위원회를 앞두고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고심이 더욱 깊어졌다. 미국이 전날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하면서다.
현재 한국 경제는 내수경기 부양을 위한 기준금리 인하가 필요한 상황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미국의 기준금리가 쉽사리 움직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미국과 크게 벌어진 기준금리 차가 이 총재의 통화정책 운용 과정의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4월17일 서울 중구 한은 본부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개회 선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7일(현지시각) 열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가 연 4.25~4.50%로 동결되면서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차이는 1.75%포인트로 유지됐다.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차는 지난해 최대로 벌어졌던 2.0%포인트보다는 작지만 현재도 크게 높은 수준으로 평가된다.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차가 벌어지면 높은 금리를 쫓는 외국인 자금의 이탈 압력으로 작용해 보통은 한국의 기준금리가 미국보다 높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미국이 물가를 잡기 위해 빅스텝(0.50%포인트 인상), 자이언트스텝(0.75%포인트 인상) 등을 통해 기준금리를 빠르게 올리면서 2022년 기준금리가 역전됐고 이후 차이가 벌어졌다.
이창용 총재가 29일 열리는 금통위에서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하 카드를 꺼내든다면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차이는 다시 2.0%포인트로 벌어진다.
미국이 이번 FOMC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렸다면 5월 인하에도 차이가 유지되겠지만 동결한 만큼 5월 인하로 차이 확대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문제는 연준이 6월 이후에도 기준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연준은 지난해 12월부터 이번까지 4차례 연속 FOMC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했는데 시장에서는 9월은 돼야 연준이 기준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김지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연준은 이번 FOMC에서 선제적 인하가 어려운 만큼 기다려야 한다는 입장을 반복적으로 피력하며 신중한 태도를 강조했다”며 “6월 FOMC에서도 동결을 예상하며 차기 인하는 9월에 시행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바라봤다.
9월 FOMC 전 이 총재는 5월29일, 7월10일, 8월28일 등 3차례 금통위를 열고 기준금리를 결정한다.
미국이 9월 기준금리를 내릴 것이라고 판단한다면 이 총재가 기준금리 인하 시기를 7월이나 8월로 미룰 가능성도 충분한 셈이다.
원/달러 환율과 국내 정치적 상황도 변수가 될 수 있다.
현재 원/달러 환율은 6개월 만에 1300원대로 내려오며 변동성이 커졌다.
기준금리는 외국인 자금 움직임에 영향을 미쳐 환율의 주요 변수로도 작용한다.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차가 더 벌어지면 외국인 자금 이탈로 이어져 원화 가치 대비 달러화 강세를 압박할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지금은 한국과 미국의 통상 협상에서 환율이 주요 의제로 올라 원/달러 환율 움직임에 민감할 때다.
트럼프 정부는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달러화 약세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기준금리 차 확대에 따라 달러화 강세 압박이 커진다면 미국에 원화가치 절상(원화가치 상승)을 더욱 강력히 요구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오른쪽)가 4월16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부 장관 최상목 탄핵소추사건 조사' 청문회에서 의원질의에 대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김병환 금융위원장,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 총재. <연합뉴스>
국내 정치적 상황 역시 이 총재가 5월 금통위에서 최대한 안정적 카드를 선택하도록 압박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은행법은 통화정책을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한국은행의 중립성’을 명시하지만 동시에 정부의 경제정책과 조화도 강조한다.
이 총재가 6월3일 대선을 일주일 앞두고 기준금리를 결정해야 하는 만큼 이전 금통위와 다르게 정치적 변수도 일정 부분 통화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셈이다.
이 총재는 6일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 참석을 위해 찾은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기자들과 만나 “(5월 말 금통위에서) 선거를 고려하지 말고 데이터만 보고 결정하자고 금통위원들과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이 역시도 대선을 코앞에 두고 열리는 금통위에 대한 이 총쟁의 부담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한국 경제는 올해 1% 내외의 저성장이 예상된다. 글로벌 주요 투자은행에 이어 5월 들어 한국금융연구원(0.8%), 현대경제연구원(0.7%) 등 국내 주요 연구기관도 올해 국내 경제성장률을 1% 미만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총재도 6일 기자들을 만나서도 저성장에 대응하기 위한 기준금리 인하의 필요성을 말했다. 다만 기준금리 인하 시기와 속도를 놓고는 말을 아꼈다.
이 총재는 “기준금리를 낮출 이유는 많다”며 “기준금리를 내리는 건 다 알고 있는데 얼마나 빠르게 내릴 거냐, 연속으로 미리 내려놓을 거냐, 아니면 보면서 내릴 거냐를 선택해야 하는데 데이터를 보고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