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대영 전 삼성중공업 사장이 해양플랜트에 지나치게 힘을 주면서 삼성중공업의 적자행진이 시작됐다는 분석이 많다. <연합뉴스> |
[씨저널] 삼성중공업은 한국 조선업계에서 해양플랜트 분야의 강자로 명성이 높은 기업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위기의 깊은 상처가 존재한다.
특히
박대영 전 삼성중공업 사장이 해양플랜트에 집중하면서 그 선택이 삼성중공업에 독이 된 측면이 적지 않다.
박 전 사장은 왜 해양플랜트에 승부를 걸었을까.
◆ 해양플랜트에 올인한 시대적 흐름과 박대영의 경영 전략
박대영 전 사장이 삼성중공업 해양사업부문을 이끌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 초반부터다.
1977년 연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뒤 삼성중공업에 입사하여 잔뼈가 굵은 현장 전문가 출신으로, 그는 해양플랜트 분야에서 다년간의 경험과 기술 노하우를 갖추고 있었다.
삼성중공업 내에서도 현장 중심 경영으로 정평이 났었고, 2012년 대표이사 사장에 올라 회사 전반의 경영을 책임졌다.
박 전 사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조선업계는 전통적 주력 상품인 상선 분야가 급락하자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에 나서는 국면에서 해양플랜트, 특히 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생산설비(FLNG)를 중심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집중 육성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당시 해양 자원 개발에 대한 국제적 수요가 급증하는 시기였고, 조 단위의 고부가가치 사업이라는 점에서 매력적 선택지 중에 하나였다.
박 전 사장은 2013년 대전 카이스트 대강당에서 열린 삼성그룹 토크콘서트 현장에서 해양플랜트 사업이 삼성중공업의 미래를 결정할 핵심 축이라고 밝혔다.
그는 “육상유전의 고갈이 머지않았고 해양 개발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30여년 동안 노력해왔다”며 "해양사업은 한 마디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기 때문에 힘든 만큼 성취감이 클 것이다"고 말했다.
박 전 사장의 이러한 생각은 결국 삼성중공업의 해양플랜트 사업 비중을 2008년 32%에서 2012년에는 무려 88%까지 끌어올리는 결과를 낳았다.
◆ 기술력 미흡과 설계 오류, 예상치 못한 부실의 씨앗
그러나
박대영 전 사장의 해양플랜트 집중 전략이 성과를 내지 못한 결정적 원인으로는 불충분한 기술력과 경험 부족이 꼽힌다.
삼성중공업은 고도의 기획과 설계 능력이 요구되는 해양플랜트 사업에서 준비가 덜 된 채 대규모 프로젝트를 수주하면서 내부 리스크 관리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설계 변경과 공정 지연, 원가 상승이 빈번해 이익률은 예상보다 크게 떨어졌고, 저가 수주로 인한 장기적 적자가 누적되는 악순환에 빠진 것이다.
특히 2014년부터 국제 유가가 급락하기 시작하면서 해양플랜트 발주가 급감하고, 에너지 기업들의 프로젝트 취소 및 늦어진 납품 등이 겹쳐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2014년 국제유가 하락은 당시 미국의 셰일가스 혁명에 따른 원유공급의 과잉과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합의 실패라는 변수 때문이었지만 박 전 사장은 이런 변화를 따라잡지 못했다. 배럴당 100달러가 넘었던 국제유가는 급락해 20달러 대까지 곤두박질쳤다.
해양플랜트의 일반적 손익분기점은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기준으로 배럴당 60달러 이상이다.
국제유가 하락은 결국 삼성중공업이 수주했던 프로젝트들의 취소나 연기로 이어졌고 이 때문에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삼성중공업은 연속된 적자를 기록하는 처참한 상황을 맞게 된다.
특히 2016년의 경우, 호주 해양가스 생산설비와 나이지리아의 FPSO 프로젝트에서만 5천억 원 이상 충당금을 반영했고, 2015년 한 해 영업손실 규모는 1조5019억 원에 달했다. 이러한 손실은 회사의 재무 안정성을 위협하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박 전 사장이 집중했던 FLNG와 FPSO 등 고부가가치 해양플랜트 사업은 규모가 큰 만큼 실패하게 되면 손실 규모가 거대할 수밖에 없었다.
◆ 기업 내부와 업계의 반응, 그리고 박대영에 대한 평가
삼성중공업 내부와 조선업계에서는
박대영 전 사장의 경영 방식에 놓고 어떤 평가를 내릴까?
박 전 사장은 현장 경험과 기술 지식을 바탕으로 한 결정력과 추진력은 인정받았지만, 무리한 확장과 무비판적인 수주 확대가 결국 회사에 부담을 안겨주었다는 비판이 많다.
특히 그가 사장으로 취임한 후 해양플랜트 사업 비중이 급격히 증가한 반면, 수익성 확보 전략과 리스크 분산에는 한계가 있었다는 점이 부각된다.
박 전 사장은 실무 중심의 ‘현장 전문가’로서 진두지휘에 강점이 있었지만, 복잡한 글로벌 금융 환경과 변동성 큰 에너지 시장에서의 리스크 관리 경험 부족은 뼈아픈 약점으로 꼽힌다.
또한 조선업계에서는
박대영 전 사장이 현장 중심 경영을 고수하면서도 경영진단과 보수적 수주 전략 전환이 더뎠다는 점에 주목한다.
◆ 회복과 재도약을 향한 삼성중공업의 현재와 미래
2018년 이후 삼성중공업은 위기의 길목에서 다시 한 번 도약을 꾀하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해양플랜트 사업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기술력을 대폭 강화하고, 수익성 위주의 선별 수주 및 체계적 리스크 관리를 도입했다.
특히 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생산설비(FLNG) 분야에서 전 세계 발주된 7대 중 5대를 수주하는 독보적 지위를 확보하며 경쟁사 대비 초격차를 유지하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최성안 대표이사 부회장 체제로 전환한 후에는 전략적으로 사업을 재조정해 수익성 강화에 집중하고 있고 2023년부터 연속 흑자 전환에 성공하며 2024년에도 지속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고부가가치인 FLNG 외에도 LNG 운반선, 친환경 선박 등 시장의 요구에 부응하는 혁신 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며 미래 조선·해양 산업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하반기 파업, 생산 차질 위험, 글로벌 경기 변동성 등의 불확실성은 상존하고 있어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조장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