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이 2023년 7월8일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 방문해 미국과 중국 국기 사이를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바이든 정부가 중국산 전기차에 관세율을 대폭 높인 뒤 중국에서 보복관세 성격의 조치가 나오며 ‘무역 전쟁’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
미국은 유럽연합(EU)까지 대중국 전기차 견제 전선에 끌어들이려고 하지만 중국 역시 유럽산 자동차에 관세 인상을 예고해 유럽이 선택의 기로에 놓인 모양새다.
21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은 중국의 전기차 과잉 생산에 맞서기 위해 유럽이 미국과 협력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놨다.
이는 같은 날 독일 프랑크푸르트 경영대학원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수여받은 뒤 나온 발언이다. 중국 제조사들이 정부 지원에 힘입어 저가에 물량 공급을 늘리고 시장 점유율을 키우다 보니 미국과 유럽 자동차 기업들이 타격을 입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옐런 장관은 ”중국의 전기차 산업 정책은 남의 일이 아니다“라며 “미국과 유럽이 전략적으로 단합해 대응하지 않으면 양국 기업은 물론 전 세계 기업들의 생존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바이든 정부는 중국산 전기차에 기존 25% 였던 관세율을 100%로 크게 높이는 방안을 최근 발표했다. 이러한 기조에 유럽을 끌어들이려는 미국 정부의 의도가 장관의 발언을 통해 나온 것이다.
유럽연합(EU)도 중국 전기차에 대해 자체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중국산 전기차를 대상으로 한 불법 보조금 조사 결과에 따라 오는 7월 예비관세 부과 여부를 결정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유럽은 미국과 달리 강력한 규제를 내놓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유럽연합 회원국 사이에 입장 차이가 큰 데다 유럽 내 다수 자동차 제조사에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중국에 진출한 유럽 자동차 기업의 공장에서 생산돼 유럽으로 역수입되는 전기차 등이 직접적 영향권에 놓일 가능성이 있다.
독일 통신사 데페아(dpa)는 올라프 숄츠 총리 발언을 인용해 “중국에서 유럽으로 들여오는 전기차의 50%는 서구 브랜드 제품”이라고 짚었다.
▲ 6일 프랑스 파리를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함께 인발리데 호텔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 참석해 의장대 앞에 서 있다. <연합뉴스> |
유럽이 2035년부터 내연기관 신차 판매를 금지하고 전기차 비중을 확대겠다는 공격적인 목표를 세운 점도 대 대 중국 규제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힌다. 유럽에서 중국산 전기차 점유율이 상당해 이들 없이 목표를 달성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분석이 많다.
이런 점을 고려해 미국 정부가 유럽을 상대로 적극적으로 설득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는 “오는 6월13일 개최되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도 이 의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를 것”이라고 바라봤다.
중국 정부 차원의 무역보복 가능성 또한 미국보다 유럽에 훨씬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유럽연합 주재 중국상공회의소(CCCEU)는 “중국 정부에서 2.5ℓ 이상 엔진을 탑재한 수입 자동차에 일시적으로 25%의 관세율을 매기는 안을 고려중이다”라는 성명을 내놓았다. 이는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상 최대 관세율이다.
중국상공회의소 성명에는 미국과 유럽 자동차 제조업체가 영향권에 들 수 있다고 명시됐다. 두 나라 가운데 중국 사업 비율이 높은 쪽은 유럽 기업들이다.
중국 승용차협회(CPCA)에 따르면 2023년 중국 내 브랜드별 자동차 판매량 순위에서 독일 폴크스바겐이 중국 BYD를 이어 2위를 기록했다. 10위권에 든 기업 가운데 독일계만 3곳이며 미국 업체는 단 한 곳도 없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중국과 서구 국가들 사이 무역 긴장이 높아지고 있으며 향후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라며 “중국은 미국과 유럽 어느 쪽에도 물러나지 않겠다는 입장”이라고 평가했다.
결국 미국의 중국산 전기차 관세 인상으로 유럽연합까지 ‘전기차 무역전쟁’에 휘말리는 양상이 뚜렷해 지는 모양새다.
다만 유럽 입장에서도 저가의 중국산 전기차 유입은 중장기 관점에서 역내 자동차 기업들에 더 큰 타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유럽연합으로서는 쉽지 않은 선택을 해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