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준 기자 hjkim@businesspost.co.kr2023-08-24 11: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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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서울 신림동 흉기 난동, 경기 분당 서현역 흉기 난동 등 치안을 위협하는 흉악 범죄가 연달아 일어나자 정부가 의무경찰 부활이라는 카드를 뽑아 들었다.
그러나 전방 사단마저 해체를 피하지 못할 정도로 입대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8천 명 규모를 떼어내 의무경찰을 만들게 되면 국방에 공백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 한덕수 국무총리가 8월2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의무경찰제도 부활 등 치안강화대책이 담긴 ‘이상 동기 범죄 재발 방지를 위한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은 24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국가는 국민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고 국민은 범죄의 불안에 떨지 않을 권리가 있다"며 "국민의 불안을 덜어내기 위한 의무경찰제 재도입을 망설이 이유가 없다"고 의무경찰 부활에 힘을 실었다.
전날(23일)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상 동기 범죄 재발 방지를 위한 담화문’을 발표하며 치안 강화 대책의 일환으로 의무경찰제도 부활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담화문 발표에 배석한 윤희근 경찰청장은 "이번엔 순차 모집을 통해 8천 명 정도 운영하는 방안을 국방부와 협의할 것"이라며 "7∼9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전방 부대가 해체될 정도로 부족한 병력을 의무경찰로 돌리게 되면 국방 공백 위기를 초래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 강원도 화천군에 위치한 27사단이 창설 69년 만에 해체됐으며 육군 제8군단도 올해 5월 해체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국방부는 7월8일 상비병력 규모·간부 비율·여군 간부 비율 등의 상세한 목표 수치를 삭제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 ‘국방개혁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현행 국방개혁에 관한 법률에서는 ‘국군의 상비병력 규모는 군구조의 개편과 연계하여 2020년까지 50만 명 수준을 목표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개정안에서는 이 내용이 ‘가용자원을 고려하여 안보위협에 대응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적정 수준을 유지하도록 한다’로 고쳐졌다.
현재 대한민국의 인구 감소를 감안했을 때 앞으로 50만 명 규모를 유지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읽힌다.
▲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6월12일 열린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앞서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6월12일 국회 본회의에서 열린 정치·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상비 병력 50만 명을 유지하기 위해선 매년 22만 명이 필요하다”며 “2032년 이후가 되면 22만 명 충원이 안 된다. 그래서 국방 예산 4.0 계획 하에 그때 인구절벽 병력자원 상황을 상정해 대비해 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본적으로 인구절벽으로 인해 군에 올 수 있는 가용 자원이 줄어든 것이 중요한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에서 진행한 연구도 국방 인력이 부족해질 것이란 전망을 뒷받침한다.
조관호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이 7월23일 발표한 ‘병역자원 감소 시대의 국방정책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대한민국 주민등록인구와 생존율 자료를 근거로 연도별 20세 남성 인구를 계산해본 결과 20세 남성 인구는 2036년부터 22만 명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42년엔 이것이 더욱 심각해져 20세 남성 인구는 12만 명까지 급격히 줄어든다.
같은 보고서에서 2022년 연말 병력이 48만 명이었다는 내용이 논란이 되자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이 7월25일 정례브리핑에서 “2022년 기준으로 병력은 50만 명을 유지하고 있다”며 해명에 나서는 해프닝도 있었다.
한국국방연구원은 2021년에도 ‘미래 국방환경과 병력운영’ 보고서를 통해 병역 대상 인구 절감을 경고한 바 있다.
이렇듯 병력 부족과 그로 인한 국방 공백 위기가 올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여당 내부에서조차 의무경찰 부활과 관련해 회의적 시선이 나오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경찰이 필요하면 정식으로 경찰을 더 충원해서 범죄예방을 해야지 의무경찰 재도입이 말이 되느냐”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인구절벽으로 군 병력이 부족해서 국군 50만 선이 무너졌고 전방을 지키던 사단들이 해체되고 있다”며 “총리라는 분이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함부로 말하는지 제발 생각 좀 하고 현실을 보고 대책을 내놓기 바란다”고 질타했다.
이언주 전 국민의힘 의원도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군대 가서 물에 빠져죽어도 지들은 책임 면하기 바쁘면서 이젠 흉악범죄도 우리 국민들, 젊은이들 몫인가”라며 “제발 사고 친 것들부터 수습하고 책임진 다음에 국민들을 징발하라”고 말했다.
군인권센터도 성명을 발표해 정부의 의경 재도입에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군인권센터는 23일 성명을 발표하며 “이미 일선 부대에는 병력이 부족해 편제도 제대로 채우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복무 기간도 그대로 현역 판정 기준도 그대로 두고 의무경찰을 무려 8천 명이나 뽑겠다니 사람을 어디서 빚어오지 않고서야 어떻게 현실 가능한 대책이라 할 수 있겠느냐”고 반발했다.
▲ 윤희근 경찰청장이 4월14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대한민국 의무경찰 1142기 합동 전역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무경찰을 경찰과 마찬가지인 강력사건 대응에 투입했을 때 발생할 부작용 또한 지적됐다.
군인권센터는 “의무 복무하러 온 병사들을 전문 역량이 필요한 영역에 투입했을 때 어떤 참사가 벌어지는지 해병대 채 상병 사건을 통해 똑똑히 봐놓고도 1년6개월 근무하는 의경을 치안 현장의 전면에 투입할 계획을 대책이랍시고 세우니 한심스러울 뿐”이라고 비판했다.
의무경찰제도는 병역 의무 기간 군 생활을 하는 대신에 경찰 치안 업무를 보조하는 제도로 지난 1982년 12월 신설됐으며 올해 4월 마지막 기수가 합동 전역식을 하면서 폐지됐다. 창설 이래 지금까지 49만 명의 병역 대상자가 의경으로 복무했다.
다만 관련 법적 근거인 의무경찰대법이 그대로 남아있는 상태라 별도의 법률 개정 없이 병역법의 전환복무 규정과 의무경찰대법에 따라 의무경찰대 설치와 의경 모집이 가능하다. 김홍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