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승일 한국전력공사 사장(가운데)이 4월6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에서 열린 '전기·가스요금 민·당·정 간담회'에 참석해 박일준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오른쪽)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2023년도 2분기 전기요금이 인상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한국전력공사로서는 한숨을 돌리게 되는 상황이지만,
정승일 한전 사장은 거세지는 정치권의 압박에 한숨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5일 정치권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올해 2분기 전기요금 인상을 놓고 현재 국민의힘과 산업통상자원부 등 당정 협의가 막바지 단계에 들어섰다.
이르면 5월 둘쨋주쯤에는 2분기 전기요금 인상이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2분기 전기요금은 2분기가 시작되기 전인 3월 말에 결정돼야 하지만 현재 한 달 넘게 결정이 지연되고 있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일 MBN 프레스룸 라이브에 출연해 2분기 전기요금 결정 시기를 놓고 “에너지 공급의 자구 계획을 전제로 정부에서 조만간 전기요금 조정을 마무리할 생각”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인상폭은 kWh(킬로와트시)당 10원 안팎으로 결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실제 kWh당 10원 안팎의 전기요금 인상이 이뤄지면 한전으로서는 다소나마 재정 상황에 숨통이 트일 것으로 보인다.
정부나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으로서는 전기요금 인상이 정치적 부담은 크지만 국내 자본시장이나 한전의 재정적 상황이 한계상황에 몰려 있어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한전에 따르면 2026년까지 누적 적자 해소를 위해 올해 kWh당 51.6원의 인상이 필요하다. 올해 1분기에 전기요금이 kWh당 13.1원 인상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연내 매분기마다 kWh당 평균 12.8원 정도를 인상하면 한전의 요구치에 근접하게 된다.
한전은 원가보다 싼 전기요금 때문에 지난해 32조 원 규모의 막대한 영업손실을 본 데다 올해도 1분기에만 5조 원 이상의 영업손실을 봤을 것으로 예상될 정도로 재정난을 겪고 있다.
한전이 대규모 영업손실에 대응하기 위해 2022년에 37조2천억 원, 올해 들어서도 4월 말까지 9조 원 이상의 한전채를 발행하면서 국내 채권시장의 교란까지 문제가 되고 있다. 우량주로 꼽히는 한전채가 막대한 양이 시장에 풀리면서 시중의 자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4월11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뒤 기자간담회에서 “한전채가 앞으로도 계속 많은 물량이 발행되면 문제가 될 것이니 정부가 전기요금을 인상하면서 대응할 것으로 본다”고 발언했을 정도로 전기요금 인상은 미루기 어려운 한계 상황이다.
하지만 총선을 1년도 채 남겨 놓지 않은 현재 시점에서 국민의힘으로서는 여권을 향한 부정적 여론은 부담이 크다.
한국갤럽이 4월28일 내놓은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놓고 부정평가 63%, 긍정평가 30%로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보다 두 배 이상 높다. 정당지지도 역시 더불어민주당 37%, 국민의힘 32%로 조사됐다.
전기요금 결정은 현실적으로 여권이 좌우하고 있고 한전은 전기요금을 결정할 권한 없이 정부의 엄격한 관리, 감독을 받는 공기업이라는 점에서 국민의힘이 전기요금 문제와 관련해 정치적 책임에서 자유롭기는 어렵다.
하지만 국민의힘으로서는 전기요금 인상에 따른 정치적 부담이 큰 만큼 한전에 경영상 책임을 강조할 수밖에 없기도 하다. 정 사장의 퇴진을 향한 여당의 공세는 더욱 거세질 가능성이 커 보이는 이유다.
국민의힘에서는 정 사장에게 전기요금 인상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한전의 경영 혁신을 요구하며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원회 의장은 2일 원내대책회의에서 한전을 향해 “사장에 사퇴 요구까지 했으면 최소한 자구책부터 내놓아야 하는데 아무 대답이 없다”며 “그런 노력도 못하면 자리를 내놓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 사장이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된 사장이라는 점도 국민의힘이 공세 수위를 높이는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국민의힘에서는 공기업 사장들의 자진 사퇴를 주장해 왔다. 특히 원희룡 국토교통부장관은 국토부 산하 공기업 가운데 인천국제공항공사, 한국철도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를 직접 거명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기도 했다.
현재 국내 주요 공기업 수장 가운데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된 사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은 한전이 거의 유일하다.
박 의장은 4일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전 정권 때 임명된 기관장들을 향해 “정부 기관은 전 정권 충신들에게 영양분을 공급해 주는 숙주가 아니다”라며 “양심에 털 난 사람들 이제는 물러나야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전은 국내 최대 규모의 공기업인 만큼 사장 자리에 정치적 외풍이 강한 자리이기도 하다. 노무현 정부 때 임명된 이원걸 전 사장, 박근혜 정부 때 임명된 조환익 전 사장 등 각 정권의 마지막 한전 사장은 대체로 정권 교체 뒤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정 사장은 문재인 정부 때 산업부 차관을 지낸 관료 출신 인사다. 2021년 한전 사장에 임명될 당시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수소경제 활성화, 신재생에너지 등 주요 정책을 이끌었다는 점이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정 사장의 임기는 2024년 5월까지다.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