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봄이 되면 '강원도 산불'이 연례행사가 되고 있다. 지구온난화 등의 여파로 건조한 날씨에 이어지면서 큰 산불이 연이어 났기 때문이다. 2024년에는 더 큰 산불이 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까지 나온다.
강원도 산불의 '주범'으로 소나무를 주목하는 목소리도 있다. 애먼 소나무를 탓할 일이 아니라 근본적 산불방지 대책과 과학적 조림정책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 2022년 3월5일 강원도 강릉시에서 발생한 강릉·동해 산불(옥계면산불)은 숲 4천㏊(4천만㎡)를 태운 뒤 4일 만에 겨우 진화됐다. <연합뉴스> |
30일 강원도 지역소식과 산림청 등에 따르면 2022년 강릉·동해 산불, 2023년 강릉 산불 피해지역에 여느 때처럼 소나무가 심어지고 있다.
2022년 3월 강릉·동해 산불로 4천㏊(4천만㎡)의 숲이 사라졌다. 2023년 4월 강릉산불도 379㏊의 숲을 불태워 대형산불(100㏊ 이상)로 분류된다. 애초 발화의 원인은 사람에게 있지만 소나무가 이를 대형산불로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나무는 춥고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란다. 이는 온갖 수난을 이겨낸 우리 민족과 닮아 민족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애국가에도 등장한다. 일부 소나무 품종은 염분이 많은 해안지역에서도 잘 자라 솔숲을 형성하고 관광객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선사한다.
하지만 소나무는 건기에 송진을 가득 품고 있어 '마른 장작'으로 돌변할 수 있다. 여가에 침엽수는 활엽수에 견줘 바람을 막지 못해 산불 확산 가능성을 높인다.
이에 소나무 위주의 현재 조림 정책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산림전문가들은 숲을 복원할 때 소나무 비율을 줄이고 대신 불에 강한 내화수종 비율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로 굴참나무, 느티나무, 떡갈나무, 물푸레나무 등의 상록활엽수가 내화수종으로 분류된다. 이들 나무는 줄기에 수분이 많아 불에 잘 타지 않으며 사계절 푸르고 넓적한 잎은 뜨거운 공기의 확산을 막아준다. 은행나무도 대표적 내화수종이다.
이 가운데 굴참나무는 도토리와 목재를 제공해 경제성이 높으면서도 추운 강원도 지역에서 잘 자라는 품종으로 주목을 받는다. 실제로 산림청이나 민간복구지원단이 피해지역에 소나무를 주로 심는 것과 달리 강릉시는 피해지역에 굴참나무를 주로 심고 있다.
조림정책과 산불대책 마련의 주체인 산림청에 더 많은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미국 산림청(USFS)은 숲과 숲 사이를 계획적으로 벌채하고 숲 구획 사이에 넓은 임도를 냄으로써 산불 확산을 줄이고 있다. 건기에는 산불감시탑을 운영하는 등 조기진화 시스템도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 산림청도 임도 확대를 예산당국 등에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남성현 산림청장은 지난 3월 대전·충청 산불 브리핑에서 임도 확보의 중요성을 두고 "2022년과 2023년 대형산불을 겪으면서 산불진화에는 임도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남 청장은 이어 "산불이 났을 때 임도가 있으면 진화인력과 장비가 현장에 쉽게 접근할 수 있어 조기 진화가 가능했지만 임도가 없는 지역은 인력 진입이 어려워 그만큼 산불 진화도 더딜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실제 국내 산림의 1헥타르당 임도는 3.97m에 불과하다. 한국처럼 험준한 지형인 오스트리아는 산불방지를 위해 1헥타르당 50m 수준의 임도를 확보하고 있다. 일본도 23.5m 수준이다.
사실 우리나라 고찰들은 일찌감치 이런 '과학적 산불대책'을 지켜오고 있다. 신라시대부터 화재피해를 많이 겪은 절들은 숲과 절터, 전각과 전각 사이에 공간을 둬 산불로부터 목재건축물을 지키는 지혜를 발휘해 왔다. 불에 강한 은행나무, 사철나무으로 내화띠숲을 조성했다.
이 밖에 사유림 비중이 66%로 높은 국내 산림현황을 고려해 산불방지대책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사유림 소유주들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편 산불사태의 근본적 원인 해소에 도전하는 나라들도 있다.
호주는 2019년부터 수 만㏊ 규모의 초대형 산불로 하늘이 온통 붉게 물드는 재앙을 목도해 왔다.
호주 국민 사이에 '산불은 단순히 불을 꺼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는 여론이 형성됐다. 기후변화를 되돌려야 살 수 있다는 공감대가 확산했다. 2022년 5월 자유당이 친환경정책 중심의 노동당에 정권을 내준 것도 이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조충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