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이호진 태광그룹 전 회장이 계열사를 동원해 협력업체에 자신이 운영하는 골프장의 회원권 매입을 강요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태광그룹 금융계열사인 흥국생명과 흥국화재는 과거에도 이 전 회장의 골프장과 관련된 문제로 금융당국으로부터 기관경고를 받았던 경험이 있어 이번 문제가 사실로 확인된다면 다시 한번 경영활동에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 이호진 태광그룹 전 회장(사진)이 계열사를 동원해 자신이 운영하는 골프장의 회원권 매입을 강요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어 흥국생명과 흥국화재 등 태광그룹 금융계열사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17일 시민단체 7곳은 서울중앙지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 전 회장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이들 시민단체는 태광그룹에서 2015년부터 경영기획실을 통해 전체 계열사의 하청 및 협력사에 거래계약 조건으로 이 전 회장의 개인회사인 휘슬링락CC 골프장의 회원권 매입을 강요해왔다고 주장했다.
시민단체에 따르면 전체 골프장 회원권 구좌 252개 가운데 79개가 협력사에서 구매한 것으로 모두 1011억 원 규모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시민단체는 기자회견문에서 “계열사들이
이호진 총수 일가에게 사익 편취의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고 말했다.
태광그룹은 시민단체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하고 있다.
골프장 회원권 구매금은 회원 탈퇴 때 고스란히 돌려받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강매가 아니라는 것이다.
태광그룹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다시 돌려줄 돈들이고 골프장 회원권을 구매하지 않은 회사들과도 계속 계약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피해자가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검찰의 수사 결과 계열사의 골프장 회원권 매입 강요 행위가 사실로 드러난다면 흥국생명과 흥국화재가 타격을 입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흥국생명과 흥국화재는 2018년과 2019년에도 휘슬링락CC 골프장에서 판매하는 김치를 시중에서 판매하는 가격보다 훨씬 고가에 구매해 임직원들에게 나눠줬다가 대주주를 부당 지원했다는 이유로 기관경고와 과징금 부과 등의 중징계를 받았다.
태광그룹은 이 전 회장이 이번 골프장 회원권 매입과 관련해 무관하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으나 김치 구입 건과 마찬가지로 사법당국에서는 이 전 회장의 영향력 행사를 인정할 가능성도 있다.
대법원은 올해 3월 휘슬링락CC가 계열사에 김치를 판매한 것과 관련해 이 전 회장이 관여했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 전 회장은 공정거래위원회에서 태광그룹 계열사가 휘슬링락CC로부터 김치를 고가에 구매한 것과 관련해 시정명령과 2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이 전 회장은 태광의 의사결정 과정에 지배적 역할을 하는 자다”며 “영향력을 이용해 다양한 방식으로 간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한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도 “이른바 일감 몰아주기 구조가 과거와 유사하다”며 “회원권 관련해서 계열사들이 당국의 징계를 받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 전 회장은 재계 총수 가운데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외부 노출을 꺼려 ‘은둔의 경영자’, ‘얼굴 없는 경영자’라는 수식어로 불린다.
하지만 그룹을 경영하는 측면에서는 공격적이고 강력한 추진력을 보여 섬유가 주력이던 태광그룹의 업종을 미디어와 금융, 석유화학, 서비스, 레저 등으로 확대해왔다.
이 전 회장은 1962년 부산에서 이임용 태광그룹 창업주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코넬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뉴욕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수료했다.
흥국생명 이사로 경영일선에 등장해 태광산업 사장을 거쳐 태광그룹 회장에 올랐다. 2011년 횡령·배임과 조세포탈 등 혐의로 구속기소됐고 2021년 만기출소했으나 아직 경영활동에 공식적으로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조승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