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롯데쇼핑의 위상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롯데쇼핑을 둘러싼 상황을 감안하면 김상현 롯데그룹 유통군HQ(헤드쿼터) 총괄대표 겸 롯데쇼핑 대표이사 부회장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
[비즈니스포스트] 롯데쇼핑의 위상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유통업계의 맏형이라고 하기에는 성장률로나, 매출로나 영이 서지 않는 모양새다.
김상현 롯데그룹 유통군HQ(헤드쿼터) 총괄대표 겸 롯데쇼핑 대표이사 부회장이 올해는 롯데쇼핑의 자존심을 세울 수 있을지를 놓고 유통업계 관계자들의 시각이 갈린다.
14일 한국딜로이트그룹이 최근 4개년 동안 내놓은 ‘글로벌 유통업 강자’ 보고서를 종합하면 롯데쇼핑의 순위가 유독 눈에 띄게 하락했다.
롯데쇼핑은 2020년 보고서만 하더라도 글로벌 유통업 59위 기업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2021년 65위로 떨어진 뒤 2022년 76위, 2023년 91위로 순위가 계속 후퇴했다.
롯데쇼핑 입장에서는 이커머스를 통해 유통업계를 재편하고 있는 쿠팡(74위)에게 올해 순위 추월을 허용했다는 점이 뼈아픈 대목이다. 하지만 더욱 아픈 지점은 주요 경쟁사인 이마트와 견줄 때 롯데쇼핑의 설 자리가 더욱 좁아졌다는 점이다.
이마트는 한국딜로이트그룹의 올해 보고서에서 글로벌 유통업 60위에 올랐다. 지난해 순위와 비교하면 3계단 떨어진 것이지만 그 이전에는 2020년 70위, 2021년 62위, 2022년 57위 등으로 순위가 상승세를 보이고 있었다.
유통업계의 맏형이라는 얘기를 들었던 롯데쇼핑이 이제는 스스로 맏형이라는 얘기를 입에 올리기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물론 한국딜로이트그룹이 종합하는 유통기업 순위는 매출을 기준으로 한다는 점에서 순위만 가지고 롯데쇼핑의 위상 하락을 논하기 힘들다는 한계도 존재한다. 매출 이외에도 온오프라인을 통틀어 다지고 있는 네트워크나 오랜 사업 경험에서 나오는 노하우 등을 감안하면 여전히 롯데쇼핑의 영향력을 무시하기 힘든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딜로이트그룹의 유통기업 순위가 국내 주요 유통업계의 전반적 흐름과 경쟁 구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롯데쇼핑이 이 순위를 단순히 무시하기 힘든 것 역시 부정하기 힘들다.
절대적 수치에서도 롯데쇼핑의 하락세는 뚜렷하다.
글로벌 유통업 톱250에 이름 올린 국내 6개 기업 가운데 롯데쇼핑은 나홀로 2021 회계연도(2021년 7월1일~2022년 6월30일) 매출 증가율에서 마이너스 수치를 보였다.
물론 증권사 시각으로 바라보면 롯데쇼핑이 올해부터는 본격적 회복에 접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상장업체 분석기관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롯데쇼핑은 올해 연결기준으로 매출 15조7388억 원, 영업이익 5664억 원을 낼 것으로 전망된다. 2022년보다 매출은 1.7%, 영업이익은 46.7% 증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중장기적 경쟁력 관점에서 보면 여전히 롯데쇼핑의 변화가 더디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롯데쇼핑이 영국의 온라인 식료품 유통기업 오카도와 협력하기로 한 것은
김상현 부회장의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김 부회장은 리테일테크 기업으로도 유명한 오카도의 힘을 빌려 롯데쇼핑을 ‘그로서리 1번지’로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그려두고 있다.
하지만 두 회사의 협업 행보를 놓고 ‘너무 한가하다’는 평가가 유통업계 관계자들에게서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롯데쇼핑이 지난해 11월 오카도와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하면서 내걸었던 목표는 1조 원을 투자해 2030년까지 전국에 모두 6개의 물류센터를 만들고 2032년에 국내 온라인 그로서리 시장에서 매출 5조 원을 내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쿠팡과 네이버, 컬리, 오아시스 등이 물류 인프라 확대에 경쟁적으로 나서는 상황을 감안하면 롯데쇼핑의 계획이 너무 중장기적으로 설정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적지 않다.
김상현 부회장은 3월29일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내놓은 목표 역시 구체적이지 않다. 그는 당시 온라인 그로서리 사업에서 중장기적으로 시장 점유율 30%를 달성하겠다는 수치를 내보였다.
롯데쇼핑이 어떤 무기로 시장 수요를 흡수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전략 역시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아쉬운 대목으로 꼽힌다.
롯데쇼핑의 주요 사업부 가운데서도 핵심으로 꼽히는 롯데백화점의 성장세가 신세계백화점, 현대백화점과 같은 경쟁사와 비교해 낮다는 점도 김 부회장의 고민거리로 거론된다.
물론 김 부회장이 수장으로 취임한 뒤 롯데쇼핑 내부적으로 변화가 있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특히 지난해 상반기 롯데쇼핑의 실적이 크게 반등했을 때는 내부에서 ‘우리도 된다’라는 분위기가 돌기도 했다. 지속적인 경쟁력 하락에 사기가 떨어져 있던 직원들 사이에서 희망의 불씨가 되살아났다는 점에서는 김 부회장의 존재감을 무시하기 힘들다.
다만 중장기적 목표만큼이나 가시적 성과에 좀 더 집중해야 할 필요성도 있다는 것이 유통업계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김상현 부회장은 취임 이후 임직원들과 자주 소통하며 롯데쇼핑이 지향해야 할 점을 환기하는데 지속적으로 공을 들이고 있다.
롯데쇼핑에 따르면 김 부회장은 사내 임직원들과의 소통 프로그램인 ‘샘물(샘에게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을 통해 매달 2차례씩 간담회를 열고 있다.
그는 샘물에서 롯데쇼핑이 그로서리와 라이프스타일 중심으로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임직원들에게 같은 말을 반복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롯데쇼핑의 청사진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롯데쇼핑 관계자는 “김 부회장은 롯데쇼핑이 그동안 어려운 시기를 거치면서 경쟁력과 기초체력이 약해졌던 점을 인지하고 이를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며 “단기간에 성과가 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롯데마트와 롯데슈퍼의 통합 소싱 역량 강화 등을 통해 기초체력을 높이는데 주력하고 있으며 성과가 조금씩 나고 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 부회장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롯데쇼핑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힘을 대폭 실어주고 있는 인물이다.
김 부회장은 지난해 롯데쇼핑에서 보수로 13억7660만 원을 받았다. 급여 13억7500만 원에 기타 근로소득 160만 원이 더해진 수치다.
김 부회장 전임 대표인 강희태 전 롯데쇼핑 대표이사 부회장이 퇴임 직전인 2021년에 급여 8억7600만 원을 받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김 부회장에게 훨씬 많은 대우를 해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