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반도체 지원금을 놓고 삼성전자 TSMC 인텔 등이 파이 싸움을 벌이게 됐다. |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바이든 정부가 반도체 지원법 시행을 통해 제공하는 대규모 인센티브를 두고 삼성전자와 TSMC, 인텔을 비롯한 주요 기업이 본격적으로 ‘파이 싸움’을 벌이게 됐다.
인텔은 해외에 본사를 둔 기업이 세금으로 지원을 받는 일은 부적절하다고 주장하며 삼성전자와 TSMC를 겨냥한 여론전을 주도하고 있다.
24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인텔은 반도체 지원법과 관련해 미국 정부에 로비를 강화하면서 해외 기업들이 투자 보조금으로 큰 수혜를 입어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앞세우고 있다.
인텔 측은 최근에 정부 관계자들과 논의하는 자리에서 미국의 세금으로 이뤄진 반도체 핵심 기술 지식재산(IP)이 다른 국가로 빠져나가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정부 대관업무를 담당하는 앨런 톰슨 인텔 부사장은 “미국의 반도체 챔피언은 인텔”이라며 “우리의 지식재산은 미국에 머무르고 있으며 이는 매우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요소”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런 내용이 담긴 문서를 입수해 보도하며 반도체 지원법 시행을 앞두고 인텔을 비롯한 관련 기업들이 서로에게 칼날을 겨누는 치열한 경쟁에 돌입했다고 바라봤다.
인텔은 현재 미국 애리조나주와 오하이오주에 각각 200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공장단지를 건설하고 있다. 자연히 정부에서 보조금을 받아 투자 비용 부담을 낮추는 계획을 두고 있다.
주요 경쟁사인 TSMC는 애리조나주에 400억 달러의 시설 투자를 예고했고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테일러에 170억 달러를 들여 첨단 파운드리 생산공장을 신설하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이른 시일에 반도체 투자 보조금을 원하는 기업의 신청서를 받고 평가 절차를 거쳐 구체적 지원 대상과 규모를 결정한다.
인텔이 정부 지원금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기 위해 미국 기업이라는 특징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삼성전자와 TSMC에게 불리해질 수밖에 없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상무부도 인텔의 이런 주장에 어느 정도 동조하는 의견을 나타내고 있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은 현지시각으로 23일 미국 조지타운대학교에서 바이든 정부의 반도체 지원법과 이를 통해 기대하는 효과를 주제로 한 연설을 진행했다.
러몬도 장관은 반도체가 우주항공과 핵무기 등 첨단기술 및 국가 안보 분야에 근원이 되는 만큼 미국이 해당 기술 영역에서 리더십을 확보하는 일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이 첨단 반도체 생산 기술을 보유한 모든 기업의 연구개발 중심지로 거듭나도록 하겠다”며 “반도체 생산 물량 측면에서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러몬도 장관의 발언은 삼성전자와 TSMC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첨단 반도체 생산 분야에서 두 기업이 전 세계에 ‘양대산맥’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 정부의 반도체 지원법 시행에 깔린 의도는 삼성전자와 TSMC도 미국에 첨단 반도체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센터를 설립하도록 유도하겠다는 방침을 담고 있다.
반도체 지원법이 미국에서 단순히 반도체 생산을 늘리는 것뿐 아니라 핵심 기술자산을 미국에 남도록 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인텔의 주장과 일치하는 셈이다.
▲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이 현지시각으로 23일 미국 조지타운대학교에서 연설을 통해 반도체 지원법 시행이 미국 반도체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 AP > |
삼성전자와 TSMC도 앞으로 미국 반도체공장에 정부 지원금을 신청하는 과정에서 현지에 연구개발 거점을 설립하고 운영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TSMC는 미국에 반도체 시설 투자를 대폭 확대하면서도 미세공정 등 핵심 기술 개발은 모두 대만 내 연구개발단지에서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뚜렷하게 나타내고 있다.
미국 투자가 TSMC의 기술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대만 정치권의 반발을 고려한 것이다.
삼성전자도 미국 실리콘밸리에 연구소를 운영하면서 일부 반도체 관련 기술을 연구하고 있지만 첨단 미세공정과 같은 핵심 기술은 대부분 한국 내에서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미국 정부가 이러한 상황을 바꿔내겠다는 데 강한 의지를 보이는 데다 인텔도 여론전에 가세한 만큼 삼성전자와 TSMC의 연구센터 설립 여부가 앞으로 보조금 등 인센티브 규모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상무부는 반도체 지원 대상 기업을 선정하고 보조금 규모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경제적 측면과 지속가능성, 미국 기술 발전에 기여할 잠재력 등을 기준으로 심사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자연히 미국 정부의 의도에 맞춰 미국에서 핵심 반도체 기술을 연구하겠다는 계획을 내놓는 기업이 더 많은 보조금을 확보하기 유리한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와 TSMC가 반도체 핵심 기술을 각각 한국과 대만에 계속 유지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면 결과적으로 인텔이 여론전을 주도한 성과를 봐 더 많은 보조금을 확보할 공산이 크다.
뉴욕타임스는 “앞으로 상무부의 과제는 반도체 지원금을 어떤 기업에 집중적으로 제공해 실질적 효과를 거두는지가 될 것”이라며 “반도체기업들 사이 경쟁이 더욱 격화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김용원 기자